■ 역사 886

조선의 교육제도

■조선의 교육제도 조선시대에는 관료로서 출세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무조건 과거에 합격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자연히 교육도 과거의 준비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또한 고려 말기의 고시과목이자 조선건국의 근본이념으로 채택된 유학(儒學)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유일한 도구로서 양반계급이 감독하였다. 따라서 교육의 수혜자도 대부분 양반의 자제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개 어릴 적 서당에서 유학의 초보적인 지식을 배우고 15~16세 이전에 서울은 학당, 즉 4학(四學)에, 지방은 향교(鄕校)에 들어가서 공부하여 몇 년 뒤에 과거의 소과(小科)에 응시, 여기에 합격하면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는 자격을 얻었다. 당시 서울에 있는 성균관과 학당(學堂=四學)은 중앙정부에 직속되고 향교는 각 주현(州縣)에서 관..

1910년대 해외 독립운동

[Posted on 5월 22, 2016 by gominheyo] 1910년대 해외 독립운동(만주, 북간도, 북만주, 서간도, 러시아, 중국, 미주, 일본) 1)만주지역 일제의 식민지화 정책이 가시화되는 을사늑약 이후부터 국내에서 활동하던 항일운동자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의 독립운동기지 경영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한인의 이주가 뒤따라야 하였고, 국내로부터 많은 자금이 공급되어야만 하였다. 아나가 그러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강력한 항일단체도 필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외운동은 인적·물적 공급원이 국내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운동범위가 대국적으로 보면 국내 독립운동의 연장이라 할 수 있었다. 2)북간도지역 국외독립운동기지로 가장 먼저 시도된 곳은 북간도였다. 북간도 지역은 서간도를 포함하여..

조선조 각왕 재임기간

■조선조 각왕 재임기간 No 왕조 수(壽) 재위 11 왕조 수(壽) 재위 No 왕조 수(壽) 재위 01 태조 74세 6년 11 중종 57세 38년 21 영조 83세 52년 02 정종 63세 2 12 인종 31세 1 22 정조 49세 24 03 태종 56세 18 13 명종 34세 22 23 순조 45세 34 04 세종 54세 32 14 선조 57세 41 24 헌종 23세 15 05 문종 39세 2 15 광해군 67세 15 25 철종 33세 14 06 단종 17세 3 16 인조 55세 26 26 고종 68세 44 07 세조 52세 13 17 효종 41세 10 27 순종 53세 3 08 예종 20세 1 18 현종 34세 15 09 성종 38세 25 19 숙종 60세 46 10 연산군 31세 12 20 경종 3..

건국훈장 대통령장(複章) 추서자

신한촌, 초대성균관관장, 헤이그특사, 李相卨 건국훈장 대통령장(複章) 추서자 강기동(姜基東) 1884 ~ 1911 강무경(姜武景) 1878 ~ 1909 권동진(權東鎭) 1861 ~ 1947 권병덕(權秉悳) 1867 ∼1944. 김경천(金景天) 1888 ~ 1938 김동삼(金東三) 1878 ~ 1937 김상옥(金相玉) 1890 ~ 1923 김성수(金性洙) 1891 ~ 1955 김순애(金淳愛) 1889 ~ 1976 김완규(金完圭) 1876 ~ 1949 김익상(金益相) 1895 ~ 1925 김지섭(金祉燮) 1884 ~ 1928 나석주(羅錫疇) 1892 ~ 1926 나용환(羅龍煥) 1864 ~ 1936 남상덕(南相悳) 1881 ~ 1907 남자현(南慈賢) 1872 ~ 1933 노백린(盧伯麟) 1874 ~ 192..

화약의 제조와 독약을 화살에 바르는 방법을-선조 28년(1595,을미)

작성일 : 2016. 05. 26 선조 60권, 28년(1595 을미 - 명 만력(萬曆) 23년) 2월 17일 경신 3번째기사 ■ 화약의 제조와 독약을 화살에 바르는 방법을 중국인에게 배울 것을 전교하다. - 선조 28년(1595 을미) "진 유격이 적어준 선후책은 중국의 기계(器械)·병선(兵船)의 제도 및 조련법(操鍊法)을 주청(奏請)해서 전습(傳習)하도록 권한 것이니, 우리나라를 위한 그의 염려가 매우 지극하다. 병기(兵器)와 진법(陣法)은 배울 만한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바닷가의 짠흙을 달여서 화약을 만드는 것과 화살에 독약을 바르는 방법이다. 대개 화약이 흔하면 화공(火攻)하는 온갖 기술이 모두 여기에서 나올 것이고, 독약을 화살에 바른다면 우리나라는 활쏘기가 장기이니 맞은 ..

조선 이전시대의 왕릉

조선 이전(以前) 시대의왕릉(북한 지역 제외) 현황 시대 지역 문화재 문화재명 소재지 비고 고구려 중국 집안 - 광개토대왕릉 (廣開土大王陵) 중국 길림성 집안현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재위 391∼413) - 장수왕릉(長壽王陵) 중국 길림성 집안현 고구려 20대 장수왕(재위 413∼491). 백제 충남 공주 사적 13호 공주 송산리 고분군 공주시 금성동 산5-1 백제 25대 무령왕릉을 포함한 웅진 백제시대 왕들의 무덤(6기는 추정)이 모여있는 곳 충남 부여 사적 14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15 7기의 왕실 무덤군 전북 익산 사적 87호 익산 쌍릉(益山 雙陵) 익산시 석왕동 산55 백제 30대 무왕과 왕비인 선화공주의 무덤일 것으로 짐작 신라 경북 경주 사적 172호 신라 오릉(五陵..

남지읍 성사리 매전마을 유례

경남 창녕군 남지읍 성사리(成士里) 매전(梅田) 유례 1. 위치와 환경 성사 남쪽의 마을 매말리를 매전으로 한자를 쓴 행정리의 명칭이다. 관동리에서 1964년 3월 1일 분동되었다. 매전의「매]는 산의 옛말인 [뫼, 메]가 [梅]로 전사(轉寫)된 것으로 곧 뫼 마을, 산마을이란 뜻이다. [전(田)]이 신전리의 경우처럼 밭을 말하기보다는 마을을 뜻한다. 산의 옛말 뫼가 매(鷹), 마(馬), 마(麻), 미(彌), 매(買) 등으로 전사되어 옛 지명에서 산을 뜻하는 글자로 많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매전, 매말리는 [뫼마을] 곧 산마을이라 할 것이다. 2. 입향 성씨와 마을의 형성 1925년 8월, 관동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옮겨오기 시작하였는데 밀양박씨 박재근(朴在根 -박영익의 조부). 이종석(李鍾錫)..

쌍령산(雙嶺山)

■ 쌍령산(雙嶺山)은 성륜산(聖輪山) 2006년 08월 31일 (목) l 용인시민신문 webmaster@yongin21.co.kr 쌍령산은 오늘날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학일리와 안성시 고삼면 쌍지리 사이에 있는 산을 말한다. 높이가 해발 382미터이고 안성시 고삼면에 산 이름에서 유래된 쌍지리에 쌍령마을이라는 지명을 남기고 있다. 산봉우리 두 개가 마주하고 있다고 하여 쌍령산이라고 한다고 하며 본래 양지현 고동면(古東面)의 쌍령리에 있다고 『양지현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쌍령산의 본래 이름은 성륜산(聖輪山)이다. 성륜(聖輪)이란 '성스러운 바퀴'라는 뜻이니 이는 불교의 법륜(法輪)을 뜻하는 말이다. 법륜은 흔히 불교에서 '부처님의 교화(敎化)와 설법'을 가리켜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산과 바위를 부수고..

잃어버린 발해사를 찾아

잃어버린 발해사를 찾아(10) 두 번째 수도 - 중경현덕부 농업 생산의 기반, 비옥한 땅을 찾아서 해란강변 위치 기후도 따뜻, 고구려 계승상징 유물 출토 日·신라·당과 대외 교통로, 武治에서 文治로 개혁의 땅 중국과 러시아의 발해 유적이 있는 곳의 근대적 특징은 대개가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간도지방으로서 독립운동의 본거지였으며 고구려·발해사와 함께한 유적지로서 한국의 탐방객들이 매년 수없이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연변에서 버스로 남서쪽으로 30분 정도를 달리면 해란강이 눈에 들어오고 용정시(龍井市)를 지난다. 발해 유적 답사자들은 먼저 화룡에 가서 발해 서고성(西古城)과 정효공주묘 등을 들렀다가 오후에 연길로 돌아가면서 들르곤 하는 곳이 용정이다. 이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