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중국사·일본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③

야촌(1) 2022. 12. 18. 15:21

중·일과 사대주의자가 만든 ‘기자조선’은 허구다

40여대 계승된 군주 이름과 천년 역사 기록 전무…중국의 조선 속국 주장 엉터리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6-07-03 09:30:21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및 NGO 환경교

    육연합 고문

 

중국의 모택동(毛澤東)은 젊은 청소년을 앞세워 소위 ‘문화혁명’을 호도했다. 광란의 참극을 연출해 우리한민족의 지도자와 역사서 등을 없애고 사서는 분서(焚書)했다. 그리고 ‘동북공정’을 한다며 우리역사를 자기들 구미에 맞게 꾸미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들의 역사교과서는 우리역사를 변조·조작·왜곡한다. 반성이 없는 교육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주장들은 고대부터 우리를 지배한 것 같이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다. 증명에 실패한다.

 

그들의 역사는 상고시대와 고대부터 허구의 역사로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남의 조상을 자기들의 조상이라 하고 남의 나라역사를 자기들의 역사라 한다고 자기조상이 되고 남의 나라를 역사를 자기들 역사라고 우긴다고 자기나라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이미 지도(地圖)와 지명(地名)을 다 바꾸고 지도를 새로 만들어 우리 땅이 고대부터 자신들의 조상 땅이라 우긴다. 하지만 이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 역사를 지우고 우리강역을 축소해 자기강역이라 말하나 이를 믿는 바보 역사학자는 사대주의자나 식민사관자 외에는 없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 고대역사서는 다 없애고 조선이라는 국명도 지우나 중국의 지리지(地理誌)이기 때문에 남은 산해경(山海經)은 우리 강역(疆域)이 동서가 2만 리요, 남북이 5만 리이고 인구는 1억8000만에 이른다고 했다.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우리 강역(疆域)은 ‘바이칼 호(湖)를 중심으로 시베리아대륙, 만주, 중국, 한반도, 일본열도에 이른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숨기려 애 쓴다.

 

일본도 자기들의 사서라는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내세워 역사를 말하나 일본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보다 100년이나 먼저 쓰여 졌고 야마다이국(邪馬臺國)논쟁을 일으킨 위지(魏志) 왜인 전(倭人傳)보다도 50년 앞서 쓰여진 ‘신황기(神皇紀)’가 20세기에 나오면서 일본학자들도 일본의 왜곡을 시인하고 있다.

 

오늘은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허구의 기자조선(箕子朝鮮)에 대하여 그 배경과 실체를 밝히려 한다.

 

기자조선은 허구의 역사다.

 

우리는 기자조선에 대한 역사를 아직도 가르치고 있다. 역사의 무지가 말이 아니다. 기자는 한 부족의 족장도 아니고 기자조선(箕子朝鮮)은 우리역사에 넣을 수 없는 허구임은 이미 밝힌바 있다. 무지한 식민사관자들의 논하기에 이를 명백히 밝히려 한다.

 

기자에 대하여 말한다면 기자는 은(殷)의 시조 성탕(成湯)의 16세 손으로서 동이족에 속한다. 서전(書傳) 홍범장(洪範章)에 기자가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주무왕(周武王)에게 전도하였으나 벼슬은 하지 않았다. (尙書今古文注䟽 卷二十五).

 

중국역사인 한서(漢書)에 ‘箕子去之朝鮮(師古曰 史記云 武王伐紂 封.箕子於朝鮮 與此不同’이라 하였다. 즉, 기자가 스스로 조선에 망명한 것이요, 주무왕(周武王)의 임몀을 받아 한민족(韓民族)을 지배한 일이 없다고 한 것이다.

 

주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를 임명하였다는 주장은 상서(尙書) 홍범장(洪範章) 주(註)에 ‘武王封箕子于朝鮮’이라는 문구를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원문을 다시 검토하면 봉(封)자는 위조인 것이다.

 

그 원문에는 분명히 ‘箕子 嘗言 商其淪喪 我罔爲臣僕 史記 亦載箕子 陳洪範之後 武王 封箕子于 朝鮮 而不臣也 蓋箕子 不可臣 武王 亦遂其志 而不臣也’라 하였다.

 

기자(箕子)가 ‘나는 은(殷)이 망한 후에 주무왕(周武王)이 임명을 받는 신복(臣僕)이 되지 아니하겠다.’고 말하였다. 사기(史記)에도 기자(箕子)가 천도(天道)인 홍범(洪範)을 설교 한 후에 주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고 임명하는 신복으로 대우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漢書 卷之二十八, 地理志 第八下)

 

기자(箕子)가 한민족의 지배자가 되었다면 한 부족의 족장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의 사회조직을 고찰하여 보면 그 당시는 부족시대로 많은 부족이 병립(竝立)한 시대이다.

 

부족시대는 씨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기자는 씨족적(氏族的)으로 기반이 없는 부족의 족장으로 추대 되지 못한다. 중국에서 동래(東來)하여 씨족적기반이 없는 기자(箕子)가 부족의 추장(酋長)으로 추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씨족의 수장이 아닌 기자는 한민족의 전체를 대표하는 지배자가 될 수 없다. 이는 사회조직에 의하여 기자가 한민족을 지배치 못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자조선(箕子朝鮮)은 무엇인가?

 

해동(海東繹史)에의 기록은 ‘기자(箕子)가 중국인 5천명을 거느리고 동래하였다’고 하였다. (海東繹史 第二, 箕子朝鮮). 당시는 공간지(空間地)에 중국인의 집단인 조선을 건설하고 그 지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허위조작을 잘하는 중국사가(中國)史家)와 한국의 사대사가(事大史家)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허위 선전하여 기자(箕子)가 한민족의지배자가 되었다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기자조선은 없다.

 

우리역사는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단군조선)에 이어 부여, 예맥,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 져야 하는데 우리역사를 전도(顚倒)시키는 왜곡역사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자리를 틀고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단기 1211년(서기전 1122), 은(殷)나라가 주(周)나라에게 망했다. 이 때 은(殷)나라사람 기자(箕子)가 “왕조궁터에 잡초가 무성타” 한탄하며 무리 다수를 거느리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그 이후 조선에서 기자의 소식은 없다. 은(殷)나라는 중국의 한 파이지만 종족 상으론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 주축이 된 나라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1천년 후 요동에 기준(箕準)이란 후손이 나타나고 기자조선이 있었던 것처럼 말 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자(箕子)는 있어도 기자가 왕이 된 기자조선(箕子朝鮮)이 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중국과 일본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말하며 40여대(餘代)계승 하였다고 말하나 40여대동안 많은 군주(君主)의 이름이 역사에 기록된 자가 한명도 없다.

 

또한 기자조선에 대한 역사적 사실기록이 전혀 없다. 기자가 왕조를 계승했다면 1천년 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기자(箕子)가 우리나라에 온 것은 사실이나 평양(平壤)에 와서 도읍하고 1천년을 내려 왔다는 것은 아무 근거 없는 당치않은 코미디 같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말이다.

 

기자가 은에서 낙심천만하여 도망하였는데 우리나라에 와서 왕조를 만들었거나 천년 후 요동의 준에게 기(箕)란 자(字)를 붙여 그 후손이라 한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 무리가 조선지역에 와서 산 것은 사실로 보이나, 중국인이 이를 이용하여 조선을 중국의 속국인양 해보려 주왕(周)王)이 기자(箕子)를 후일 조선왕이라 봉했다고 역사에 적었지만 왕(王)은커녕 변방의 관리조차 한 적이 없다.

 

그 무리 중,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사리를 먹다 굶어 죽었는데 기자(箕子)가 조선에 들어와서 단군을 밀어내고 임금이 될 리 없는 것이다. 당시의 조선은 광의적으로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이요 협의적으로는 중원대륙을 호령한 강대한 예맥조선이다.

 

남선(崔南善)선생은 그의 저서 ‘고사통(故事通)’에서 이 시기는 태양의 아들, 단군임금을 뜻하는 말인 기아지(해의 아기란 뜻)조선이었는데, 후일 기자조선으로 와전(訛傳)됐다고 했다.

 

최동 선생은 “태양의 아들, 속칭 해아기 시대란 말이 음변(音變)하여 기자(奇字)의 자(字)가 되었고 후일 기자(箕子)와 혼동 된 것”이라 했다. 그러나 고조선은 47대로 끝나는 것이어서 여기에 끼어 들 수 없다.

 

단국조선이 47가 물러난 뒤 단군 직계손이 아닌 준(準)을 기자손((箕子孫)이라 하려고 공연히 기자의 기성(箕姓)을 붙여 기자 후손이라며 기비, 기부, 기준이라고 하는 것조차 일정치 않다. 기자조선은 후술 하는 바와 같이 어디에도 그 실체가 없다.

 

사대주의자들이 만든 기자조선 이제는 지워야

 

기자(箕子)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분명치 않다. 이러한 기자를 중국역사에 한 줄 나왔다고 단기3435년 고려숙종 때(서기1102) 사대주의자들이 평양에 기자묘를 만들었다.

 

그 무덤에 무엇을 갔다 묻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대당들은 중국이래야 제일이니까 책략을 써서 평양에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고 그가 왕을 했다고 시늉을 한 것이다.

 

“기자가 와서 일깨워 줬다”면 중국이 좋아하니 그렇게 해서 기자조선이 있었다고 했을 뿐이다. 더 우스운 것은 기자가 중국문화를 전해 우리를 일깨워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정반대다. 그 당시 우리 동이족이 먼저 깼던 족속이었다. 요(堯)임금도 동이족이라는 설이 있으며, 요임금이 자기 아들 다 제쳐놓고 데려온 동이족 순(舜)임금이 중국에 치산치수와 나라 다스리는 것을 다 가르쳤다.

 

이 당시 부족국가의 수장은 다 동이족이었다. 이런대도 우리나라 사대주의자들이 기자가 왔다는 것을 이용해서 조선인들이 사대(事大)하니 중국에서는 자기들도 모르는 일이 있구나! 좋아서 살피러 와서 되물어 기자조선이 있었는지를 확인 하려 했다.

 

그러나 원래 없는 기자조선에 대한 것을 사대주의자들은 아무 근거도 대지 못 했다. 이에 중국사신은 헛물만 켜고 돌아갔다. 고려에서 대답 못 했다고 중국사서에 나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중국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위조한 것은 문서상으로 확연하다. “기자가 단군을 쳐들어오고, 1천년 지난 뒤 준(準)이란 단군임금에게 기자(箕子)를 달아 붙여 기자 손(孫)이라”고 한데서부터 역사를 뒤 집은 것이다.

 

이는 사대주의자들이 앞장서서 중국에 사대하는 것을 광영으로 알아, 없는 기자조선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사대주의를 틈타 주(周)나라는 역사를 통일하여야 한다는 전제 아래 왜곡을 했던 것이다.

 

중국은 고대사가 빈약한 나라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기자조선 왕조설을 굳히려 하나 기자조선은 실체가 없다. 우리학자들은 기자조선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사주를 받은 자들만이 가자조선을 거론하나 기자조선이 있었다면 그 실체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기자조선의 왕의 이름이나 역사사실이 전혀 없음은 기자조선이 허구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기자조선은 전혀 근거 없는 허구(虛構)의 역사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두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외 다수서책을 참조, 본문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출처]http://www.skyedaily.com/news/news-view.htm[?]ID=63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