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일본사(日本史)

아베 신조(아베 전 총리) 가계도

야촌(1) 2022. 12. 19. 10:53

작성일 : 2021. 2. 6.  22:27

 

■ 아베 신조(安倍晋三)

     약칭으로 아베 총리로 부른다.

 

아베 신조(1954년 9월 21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그는 야마구치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 고조부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의 정치인이였다, 총리를 지낸 외할아버지와 외종조부(외할아버지의 형제)도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야마구치현(구 쵸슈번)은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가장 중요한 두 번(쵸슈번, 사츠마번(현 가고시마현))중 하나로,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이후 일본의 근대사를 좌지우지한 현이다.

쵸슈번 출신으로 메이지 시대 정치를 좌지우지한 인물중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로, 아베 신조의 친가쪽 고조부 오오시마 요시마사와 외가쪽 사토 노부히로는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스승(요시다 쇼인) 밑에서 공부를 했다.

 

이와 같이 야마구치현의 정치가문 출신인 아베 신조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중의원 의원이자 제90대. 제96대. 제97대 제98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으로 제21대 자유민주당 총재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디플레이션(Deflation : 물가가 떨어지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 해결을 위해 집권하면서부터 이베 노믹스로 불리는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로 인해 일본 증시에 활력이 붙고 일본 대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증가 등의 효과를 거둔 한편,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재정 부채 증가 등 부작용도 겪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미일 동맹을 최우선시하는 등 대미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 전 후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2017년 11월 1일 제98대 총리로 취임하여 재직중 지병인 위궤양 대장염으로 2021년 9월 30일 임기만료를 앞두고 2020년 8월 28일 전격 사임했다.

 

 

↑아베신조 가계도 : ⓒ안계환의 문명연구소

 

●아버지

이름 :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생졸년 : 1924년~1991년(향년 68향년 63세)세)

경력 : 1958년 중의원, 1974년 농림대신, 1977년 내각관방장관, 1979년 통상산업대신, 1982년 외무대신.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초상

 

기자로 활동하다 1956년 외무성에 들어가 비서관이 되었고, 1년 후인 1957년부터 총리실 비서가 되어, 당시 총리가 된 장인 기시 노부스케를 보좌했다. 1958년에는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총리였던 장인의 후광을 업고 당선되었다.

1967년 11월에 농림정무차관, 1974년에 미키 다케오 내각의 농림대신, 1977년 후쿠다 다케오 내각의 내각관방장관으로 활동하였다. 1979년~1981년에 자민당 정조회장, 스즈키 젠코 내각의 통상산업대신,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역임했다.

차기 총리대신으로 꼽혔으나 1990년 갑작스런 췌장암 진단을 받고, 1991년 사망했다.

 

●할아버지

◇이름 : 아베 간(安倍寬)

◇생졸년 : 1884년 ~ 1946년(향년 63세)

◇경력 : 1937년 중의원 역임.

 

 

아베 간(安倍寬) 초상

 

야마구치현의 대지주 출신으로, 이를 기반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현재의 아베 신조와는 정치관이 다른 반전 평화주의자였으며, 이는 아들인 아베 신타로에게까지 이어진다.

 

아베 신조의 극우 성향은 외가인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무척 청렴하였다고 하며, 기시 노부스케가 사위감으로 아베 신타로를 소개받았을때, '아베 간의 아들이라면 걱정할게 없지'라고 했다고 한다.

 

●고조부

 

◇성명 : 오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생졸년 : 1850년~1926년(壽77세)

◇경력 : 초슈 사무라이, 육군대장, 제3사단장, 자작

               1894년 청일전쟁의 도화선 역할.

 

 

오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초상

 

​8,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에 상륙하여, 경복궁을 점령하였다.

고종을 협박하여 청나라와의 모든 조약을 독단으로 파기하고, 일본군이 청나라 북양군을 조선에서 몰아내도록 허가하여 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청일전쟁의 공으로 남작 작위를 받아 화족이 되었고, 이후에 자작 작위를 받았다.

 

 

기록은 찾지 못했으나, 위의 사진으로 보아 '대훈위 이화대수장' 훈장을 대한제국으로 부터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외가]

 

●외조부(外祖父)

이름 :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생졸년 : 1896년~1987년(壽92세)

경력 : 야마구치현 출생으로 1941년 도조 히데키 내각 상공부대신, 제56대, 57대 총리를 지냈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초상

 

사토 가문의 데릴사위였던 친아버지의 본가인 기시 가문에 양자로 보내졌고, 양아버지의 친딸이자 자신의 사촌인 기시 료코와 결혼했다. 1936년에 만주국 정부의 산업부 차관이 되어 산업계를 지배하였고, 이때 관동군 참모장이었던 도조 히데키를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1940년 귀국하였고, 1941년 도조 히데키가 총리가 되면서 도조 내각에 상공대신으로 취임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구속수사를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기시 노부스케와 도조 히데키

 

●외 증조부(外曾祖父)

◇이름 :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생졸년 : 1901년~1975년

◇경력 : 제61대, 62대, 63대 총리

               1974년 노벨평화상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초상

 

젊은 시절에는 주로 철도국이나 운수통신성 등 교통 부문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직 추방 없이 중의원에 무난하게 당선되었고, 이후 먼 친척(고모의 사돈)인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눈에 들어 관방상을 맡으면서 인생의 전성기가 열렸다. 형인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를 할 때는 대장상을 맡았다.

 

 

↑기시 노부스케와 사토 에이사쿠

 

1964년 총리에 취임하였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협상하여 1972년 오키나와를 돌려받았다.

이때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라는 비핵 3원칙을 대대적으로 선언했고, 이 공로를 인정 받아 197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총리 재임기간은 역대 총리중 3위로, 재임기간 1위는 외종손인 아베 신조이다.

 

[출처] 아베 신조 가계도|작성자 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