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문집.고서.문헌 154

잠계 선생문집 - 이전인 저

■ 잠계선생문집(潛溪先生文集) ◈저자 : 이전인(李全仁) ◈ 판 종 : 木版本 ◈ 크 기 : 195mm(가로) x 285mm(세로) ◈ 권차 및 발행사항 : 崇禎紀元後四丁未(1847) 六月 章山書院 開刊의 간기가 있음. 상, 하 2책으로 구성되어 있 다. ◈ 내용 이전인(李全仁) 선생은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의 서자(庶子)로, 자는 경부(敬夫), 호는 잠계(潛溪), 본관은 여강(驪江)으로. 어려서부터 기질이 온아(溫雅)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잠시도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받들 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잠계(無潛溪) 무회재(無晦齋) 즉 잠계가 없으면 회재가 없었다. 할 정도로 평생 아버지의 학문과 행적을 선양하는데 온 힘을 다하였다. 상책(上冊)은 이전인선생의 유고로 구성되어 있고, 하책(下冊)은 관..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 - 李全仁 編

■ 이전인(李全仁) 여과아자야(汝果我子也) : 너는 과연 내 아들이니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은 젊은 시절에 정을 둔 기생(妓生)이 있었다. 그녀가 임신(姙娠)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지사 『知事: 知中樞府事 등 정2품부터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종3품까지의 벼슬』로 있던 조윤손(曺潤孫)이 그녀를 보고 마음에 들어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해산달이 되어 아들을 낳자, 조윤손은 이름을 '옥결(玉缺)'이라 지었고, 장성(長成)하자 후사(後嗣)로 삼고 집과 논밭, 노비(奴婢)들을 문서(文書)로 작성하여 주었다. 이언적이 조윤손에게 장난삼아 말했다. "첩(妾)이야 공이 마음대로 가지지만, 아들놈은 어째서 돌려보내지 않습니까?" 조윤손은 그저 한 차례 웃을 뿐이었다. 조윤손이 죽자 조옥결(曺玉缺)은 장례를 치르..

박선생유고(朴先生遺稿)

■ 박선생유고(朴先生遺稿) 저자 : 박팽년(朴彭年) 조선 초기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1417년(태종 17) ~ 1456년(세조 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50년경에 7대손 박숭고(朴崇古)에 의하여 수습ㆍ편집되었고,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3권 3책 중 제1권 1책으로 합집(合集)되어 1658년 외손(外孫) 이경억(李慶億)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본 문집에는 시(詩) 29수와 문(文) 42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제목 아래 《동문선(東文選)》ㆍ《대동시림(大東詩林)》ㆍ《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추강기사(秋江記事)》 등 인용 서명과 창작 배경, 수습 경위 등을 소주(小註)로 밝히고 있다. 산문류(散文類)는 부(賦), 전(箋), 잠(箴), 송(頌)과 문(文)으로 분류하여 편차하였다..

흥양이씨 가첩 발문(興陽李氏家牒跋文)

■ 상주 청리(尙州靑里)의 흥양이씨가첩 발문(興陽李氏家牒跋文)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 찬(撰) 나의 벗인 이준(李埈)이 자기 선대(先代)들의 계통을 죽 늘어 쓰기를 마치 사마천(司馬遷)의 세가(世家)의 예와 같이 하였는데, 더욱더 상세하게 쓰고는 이름을 붙이기를《흥양이씨가첩》이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한 집안의 역사책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남겨 주기 위한 것이다. 다 완성하고는 나에게 보였는데, 내가 그것을 받아 다 읽어 본 뒤에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아, 우리 동방에는 문헌(文獻)이 부족하여 후인들에게 가르침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의 좋은 계책과 아름다운 행실을 한 사람이 있어도 대부분 민몰되어 전하지 않는다. 에 몇 세대만 지나가고 나면 그 자손들조차도 이미 아는 사람이 없게 된다. ..

국보급 삼국유사 왕력편 조선초기 판본공개

국보급 삼국유사 왕력편 조선초기 판본 공개 「故 손보기 소장본 연세대기증..새로운 사실 많이 보충」 ↑손보기교수가 연세대에 기증한 삼국유사 삼국사기와 더불어 한국고대사 양대 문헌으로 평가되는 삼국유사의 여러 판본 중에서도 지금까지 발견된 것보다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조선시대 초기 판본이 공개됐다.더구나 이번에 공개된 삼국유사 중에는 글자가 탈락하거나 잘못된 곳이 많아 한국고대사학계에서 특히 애간장을 태운 대목이 많은 왕력편(王曆篇. 역대 왕조별 왕의 족보)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기존에 잘못 알려지거나 알 수 없던 사실을 수정하고 보충해 준다는 점에서 이 자료는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된다.연세대는 구석기 고고학자 겸 서지학자로 이 대학 사학과에 오래 봉직하면서 대학박물관장을 역임한 고(故) 손보기(1..

난초집(蘭樵集)-李正斗(朝鮮) 著

■ 蘭樵遺稿./ 李正斗(朝鮮) 著 [생졸년] 1824년 8월 28일(순조 24) ∼1865년 3월 29일(고종 2) / 향년 42세 [권수] 卷1-2 單 권/ 木活字本 [간행년도] 1906(光武 10) [跋] 上章攝提格(庚寅, 1890)義禁府都事達城徐贊奎書 [序] 柔兆敦장(丙午, 1906)皐月淸溪鄭載圭謹書 [크기] 20.5cm(가로) x 30cm(세로) ------------------------------------------------------------------------------------------------------------------------------------ 조선 후기의 유학자. 자는 경칠(景七), 호는 난초(蘭樵). 본관은 합천(陜川)이다. 증조부는 이수증(李壽增), 조부는..

함주지 서문(咸州誌序文) - 함안군지

함주지(咸州志, 경남함안군지)는 우리나라 군지(郡志)로서는 가장 오래돤 관지(官誌)로서, 1995년 1월 15일 함안문화원에서(咸安文化院)에서 간행한 국역 함주지(國譯 咸州誌)를 필자가 소장하고 있으나 구미 향토사학자만농(晩濃) 이택용(李澤容-韓山 李山海先生 後孫)선생의 국역(國譯)이 더 합당한것으로 여겨져 이곳에 소개 올립니다. ■ 함주지(咸州誌, : 경남함안군지)에 대한 서문 우리나라 군지(郡誌)로서는 가장 오래돤 관지(官誌)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내가 병으로 기력이 쇠하여 서울로 올라가 벼슬살이를 하지 못함으로써 성은(聖恩)을 저버리고 집안에 들어앉아 두려운 가슴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성상께서 관용을 베풀어 제수하는 명이 자주 내려오고 또 이어 경남 함안(咸安)의 수령으로 제수..

청천집(靑泉集) - 申維翰 著

● 신유한(申維翰) 조선 후기의 문인 신유한(申維翰)의 시문집으로,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간행연대는 미상이다. 권두에 이미(李瀰)의 서문이 있다. 권1·2는 시 413수, 권3은 부(賦) 4편, 서(書) 31편, 권4는 서(序) 17편, 기(記) 18편, 권5는 기 8편, 발(跋) 4편, 전(傳) 1편, 찬(贊) 1편, 비명(碑銘) 2편, 제문 14편, 권6은 애사 3편, 잡저 1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미(李瀰)는 서문에서 신유한의 문장에 대하여 시는 명(明)나라의 이반룡(李攀龍)을 배웠다., 부(賦)는 노남(盧枏)을 스승으로 하였다. 그리고 ≪초사 楚辭≫를 수만 번 읽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청천집》의<제촉석루 題矗石樓>는 촉석루를 읊은 것이다. “진양성외수동류(晉陽城外水東流)”로 시작하고 있..

청천 신유한선생 세가(靑泉 申維翰先生 世家)

■ 청천 신유한선생세가(靑泉 申維翰先生世家) 靑泉申先生。禮州人也。諱維翰。字周伯。其先出自平山高麗太師壯節公諱崇謙之裔。有文貞公諱贒。以德行勳業。封寧海。子孫遂貫焉。寧海卽故禮州。世有聞人。自文貞四傳至芸。文科兵曹參議。逮中葉諱應龍。隱德不仕。以學行聞。是生諱龜年。號滄海釣叟。以孝聞。官至南原府使。年十二。廬墓終制。及兄義士公戰亡。遂不就徵。終身不與宴飮。盖以耻不得同死國事也。是爲先生之高曾祖。龜年生省吾。進士。號竹溪。以文章名。省吾生泰始,泰來。幷以文章載南州人物誌。而是乃先生之祖若考與本生考也。泰始號密窩。泰來號凝齋。南州士以竹溪三父子。比之三蘇。稱之以密城三家也。先生生于是家。其傳授濡染。固有異於人者。况天挺地毓。得千古鴻朗之會者乎。本生妣金海金氏。三足堂大有之後。宣務郞碩玄之女。淑德貞行。罕見於女史。而博通經禮。閨壼之內。儼成一家柯則。以肅廟辛酉四月十五日。生先生于密城竹..

흥선대원군의 한글편지

■ 흥선대원군의 한글편지 ↑흥선대원군,이 며느리 명성황후에게 보낸 한글편지"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그동안 망극한 일을 어찌 만 리 밖 책상 앞에서 쓰는 간단한 글월로 말하겠습니까. (중략) 다시 뵙지도 못하고 (내가 살아 있을) 세상이 오래지 아니하겠으니, 지필을 대하여 한심합니다. 내내 태평이 지내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구한말 비운의 정치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1882년에 쓴 한글 편지 중 일부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흥선대원군은 이 편지를 쓸 당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중국 톈진(天津)에서 유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힘들고 고독했을 유폐 생활, 흥선대원군은 누구에게 편지를 썼을까. 편지 수신자에 대한 힌트는 편지 봉투에 있다. 편지 봉투에는 '뎐 마누라 젼(前)'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