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묘지명(墓誌銘) 76

묘지명이란?

■ 묘지명(墓誌銘) 지(誌)는 기록한다[記]는 뜻이고 명(銘)이란 이름 하는 것[名]을 말한다. 옛사람에게 덕이 있거나 선이 있거나 공렬이 있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만한 경우에는 그가 죽고 난 뒤에 후세 사람이 그를 위해 기물(器物)을 만들고 거기에다 명을 새겨서 영원히 전해지게 하였다. 이를테면 채중랑(蔡中郞)의 문집(文集)에 수록되어 있는 주공숙(朱公叔)의 정명(鼎銘)이 그것이다. 한(漢)나라 두자하(杜子夏)에 이르러 처음으로 글을 새겨 묘소의 곁에다 묻음으로써 드디어 묘지(墓誌)가 있게 되었는데, 후세 사람이 이것을 따랐다. 대개 장례를 치를 때에 그 사람의 세계(世系), 이름과 자, 벼슬, 살았던 마을, 행적과 치적, 살고 간 나이, 죽은 날, 장사한 날과 그의 자손들의 대략을 기술하여 돌에다 새..

사도세자 묘지문(思悼世子墓誌文) - 아버지 영조

작성일 : 2012. 12. 11(화) ■영조 임금이 쓴 사도세자 묘지문 御製誌文 有明朝鮮國思悼世子墓誌(어제 묘지문 유명 조선국 사도세자 묘지) 御製誌文 有明朝鮮國思悼世子墓誌 思悼世子諱愃字允寬臨御十一年歲 乙卯正月二十一日誕生卽暎嬪所誕 也生而穎悟及其長也文理亦通其有 朝鮮庶幾之望嗚呼不學聖人反學太 甲慾敗縱敗之事嗚呼訓諭自省編心 鑑便作言敎狎昵群小將至國亡噫自 古無道之君何限而於世子時若此者 予所未聞其本生於豐豫不能攝心流 於狂也夙夜所望若太甲之悔悟終至 於萬古所無之事使白首之父作萬古 所無之事乎嗚呼所惜者其姿所歎者 述編嗚呼是誰之愆卽予不能敎導之 致於爾何有嗚呼十三日之事豈予樂 爲豈予樂爲爾若早歸豈有此諡講書 院多日相守者何爲 宗社也爲斯民 也思之及此良欲無聞逮至九日聞不 諱之報爾何心使七十其父遭此境乎 至此不忍呼寫歲玄黓敦牂月夏五閏 而卽二十一日也乃復舊號特..

한음 이덕형 묘지명(漢陰李德馨墓誌銘)

■ 한음 이덕형 묘지명(漢陰李德馨墓誌銘) - 백사 이항복 효충분의병기익사분충병의결기형난공신(效忠奮義炳幾翼社奮忠秉義決幾亨難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춘추관홍문관예문관관상감사 세자사(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春秋館弘文館藝文館觀象監事世子師)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 이공(李公)의 묘지 - 백사 이항복 만력(萬曆) 계축년(癸丑年,1613 광해군 5) 10월에 명보(明甫)가 용진(龍津)의 강가에서 작고하였는데, 부음이 전해지자 상(上)이 몹시 슬퍼하면서 명하여 관작을 복구시켰다. 그러자 어진 사대부들이 모두 말하기를, “나라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였고, 심지어 이서(吏胥), 군민(軍民), 상려(商旅), 노유(老幼)들까지도 외롭고 아득하여 의지할 곳이 없게 여기면서 각각 화재(貨財)..

가정 이곡 어머니 묘지명 병서

대원 제봉 요양현군 고려 삼한국대부인 이씨 묘지명 병서 (大元 制封 遼陽縣君 高麗 三韓國大夫人 李氏 墓誌銘 幷序) 이제현(李齊賢) 찬(撰) 대부인(大夫人)의 성은 이(李)씨이니 흥례부(興禮府)가 본향이다. 증조부의 휘는 순광(淳匡)이니 사재주부(司宰注簿)이며, 조부의 휘는 우(祐)이며 부친의 휘는 춘년(椿年)이니 모두 벼슬을 하지 않았다. 15세 가 지나 한산이씨 정읍 감무(韓山李氏井邑監務) 휘 자성(自成)에게 시집가니 두 집이 원래부터 다른 성씨이요, 같은 이씨(李氏)는 아니다. 3남 1녀를 낳았다. 맏아들은 배(培)요, 둘째 아들은 일찍 죽었으며, 셋째 아들은 곡(穀)이다. 딸은 장씨(張氏)에게 출가했는데 부인보다 먼저 죽었다. 정읍부군(井邑府君)이 죽은 다음 40년간 과부로 절개를 지켰다. 자질이 ..

한수 묘지명(韓脩 墓誌銘)

■ 한수 묘지명(韓脩 墓誌銘) 한 문경공 묘지명 병서(韓文敬公墓誌銘 幷序) 이색(李穡) 찬(撰) 내 나이 16ㆍ7세에 시승(詩僧)을 따라 놀기를 좋아하여, 한 번은 묘련사(妙蓮寺)에 이르러서 선비와 중들이 섞여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연구(聯句)의 시를 지었는데, 그때에 문경공(文敬公)이 아직 12ㆍ3세의 동자로서 매양 척척 대구(對句)가 되는 연구시(詩)를 불러서 좌중의 여러 사람들이 모두 경탄하였으며, 비록 문묵(文墨)에 늙은 자라도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감히 같은 서열에 낄 생각을 못하므로 나는 벌써 마음속으로 보통 사람과는 달리 알고 있었다. 정해년(丁亥年=1347년 충목왕 3)에 나의 선군(先君)이 지공거(知貢擧)로서 과거를 관장하였는데, 문경공(文敬公)이 과연 높은 성적으로 급제하였으니, 그때..

김묘 처 민씨 묘지명(金昴妻閔氏墓誌銘)

김묘 처 민씨 묘지명(金昴妻閔氏墓誌銘) ◇시대 : 고려 ◇연대 : 1379년(우왕 5년) ◇찬자 : 이색(李穡) [개관] 묘지명은 이색(李穡)의 문집인『목은문고(牧隱文藁)』권19와『동문선(東文選)』권128에 실려 있으며, 1379년(우왕5)에 이색이 작성하였다. 묘지명의 주인공 민씨(閔氏: 1324~1379)는 김묘(金昴)의 처이다. 여흥군부인(驪興郡夫人)에 봉해졌다. 증조부는 종유(宗儒),조부는 적(頔),아버지는 사평(思平)이다. 외조(外祖)는 김윤(金倫)이다. 아들이3명으로, 장남은구용(九容), 차남은 제안(齊顔), 구덕(九德)이다. 딸은 9명이다. 각각 김사안(金士安), 이창로(李彰路), 최유경(崔有慶), 허호(許顥), 허의(許誼), 이존사(李存斯), 김첨(金瞻)에게출가했다. 나머지둘은 아직 출가하..

處士 李東英 墓誌銘[載寧李氏]

李處士墓誌銘(載寧人) 公諱東英字乃玉姓李氏。其先出自東京沙梁部。鼻祖謁平之後。系頗散佚。中世有諱翮。錫封移籍。遂爲載寧人。傳至上將軍諱小鳳。尙高麗恭愍王女。生司宰令諱日善。日善有四男。持平申,參議戌,生員丑,進士午。俱以文行著名 國初。自生員公又四傳。有司諫諱仁華,監正諱增春,副司果諱枝楊,通政諱核。是爲公高曾以下四世。妣密陽朴氏。典籍仁宅之女也。公以天啓庚申。生於密陽華嶽山下九壯村。自在髫齔。篤於孝敬。志色趍承。動合子弟職。性又聦穎。文理夙詣。鄕先生水月堂李某見而奇之曰此子德性。未可以才華論。携歸家塾。居數歲行益惇識益博。同學者莫之與比。一日叩以詩書奧義。應口對無礙。仍亂抽架上他書試之。無不貫穿通曉。發難常出人意表。李公歎曰爾乃我師表也。纔踰弱冠。連捷鄕解。而匪其所好也。及孤露遂廢擧業。扁其堂曰靜養。圖書滿架。梅菊暎階。日嘯詠其間。寡言語愼起居。唯與宗人李恒齋嵩逸及蔡玉山耉。講討經..

윤행임 선생 묘지명(尹行恁先生墓誌銘)

증 영의정 행 이조판서 윤공[행임] 묘지명 병서 贈 領議政 行 吏曹判書 尹公[行恁] 墓誌銘 竝書 박규수(朴珪壽) 찬(撰) 정종 문성 무열 성인 장효대왕(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 정조)께서 승하하신 이듬해 신유년(1801)에 이조 판서 석재(碩齋) 윤공(尹公)이 조정에 머무르는 것이 편치 못하여 호남 관찰사로 나가게 되었다. 얼마 후 더욱 맹렬한 화를 만나 유배지 신지도(薪智島)에서 돌아가셨다. 61년이 흐른 신유년(1861)에 공의 아들인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로 치사한 봉조하공(奉朝賀公)이 흰 옷과 흰 띠로 처음 돌아가셨을 때와 같은 슬픔을 머금고서, 공의 언행과 조정에 벼슬하던 본말을 기록하여 나에게 묘지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나는 사양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나는 보잘것없는 후생으로 선배들..

이현일 선생 묘지명

■갈암 이공 묘지명(葛庵李公墓誌銘) 권두경 찬(權斗經 撰) 대총재(大冢宰=이조판서) 갈암(葛庵) 이 선생(李先生)이 후학을 버리고 돌아가신 지 16년 되던 해에 셋째 아들 처사(處士) 재(栽)가 그 아들 인환(寅煥)에게 가전(家傳)과 행장(行狀)을 지녀 보내면서 두경(斗經)에게 명하기를, “선군자(先君子)께서 시대를 잘못 만나 폐고(廢錮)되신 채로 돌아가신 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나 유당(幽堂 묘(墓)의 명(銘)은 아직 위촉한 바가 없었으니, 이는 기다리는 바가 있어서였다. 지난해에 성상께서 죄가 없음을 살피고 관작(官爵)과 품질(品秩)을 회복시키도록 명하셨으나, 곧 당인(黨人)들에게 저지당하였다. 지상(地上)의 신원(伸冤)이 이렇듯 기약하기 어려우니, 다만 지하에서나마 신원될 수 있도록 묘지..

조위 묘지명(趙瑋 墓誌銘) /이곡 찬

[인물 간략소개] ● 조위(趙瑋) [시대] 고려 말 [생졸년] 1287(충렬왕 13)∼1348(충목왕 4). [본관] 평양(平壤) [출생지] 평양(平壤) [대표관직]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고려 후기의 문신. 자는 계보(季寶)이며 평양부(平壤府) 상원 출신이다. 충렬왕 때 자의 도첨의사사(咨議都僉議司事)를 지낸 조인규(趙仁規)의 막내아들이다. 어머니는 사재경(司宰卿)으로 치사(致仕)한 조온려(趙溫呂)의 딸이다. 배위(配位)는 관군만호(管軍萬戶) 나유(羅裕)의 딸로, 통의군부인(通義郡夫人)에 봉해졌으며 아들이 하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