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묘지명(墓誌銘)

가정 이곡 어머니 묘지명 병서

야촌(1) 2019. 11. 15. 23:31

대원 제봉 요양현군 고려 삼한국대부인 이씨 묘지명 병서

(大元 制封 遼陽縣君 高麗 三韓國大夫人 李氏 墓誌銘 幷序)

 

이제현(李齊賢) 찬(撰)

 

대부인(大夫人)의 성은 이(李)씨이니 흥례부(興禮府)가 본향이다. 증조부의 휘는 순광(淳匡)이니 사재주부(司宰注簿)이며, 조부의 휘는 우(祐)이며 부친의 휘는 춘년(椿年)이니 모두 벼슬을 하지 않았다.

 

15세 가 지나 한산이씨 정읍 감무(韓山李氏井邑監務) 휘 자성(自成)에게 시집가니 두 집이 원래부터 다른 성씨이요, 같은 이씨(李氏)는 아니다. 3남 1녀를 낳았다.

 

맏아들은 배(培)요, 둘째 아들은 일찍 죽었으며, 셋째 아들은 곡(穀)이다.

딸은 장씨(張氏)에게 출가했는데 부인보다 먼저 죽었다. 정읍부군(井邑府君)이 죽은 다음 40년간 과부로 절개를 지켰다.

 

자질이 영리 민첩하고 자상하면서도 엄하여, 두 아들의 과거공부를 힘써서 모두 출세하도록 하였다. 배(培)는 벼슬이 사복서 승(司僕署丞)이요, 곡은 국가시험 수재과(秀才科)에 오르고 또 황조 제과(皇朝制科)에 올랐으며, 지금 봉의대부(奉議大夫)로 정동행성(征東行省)의 낭중(郞中)이 되었고, 또 국상(國相)이 되었으며 한산군(韓山君)에 봉작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조정에서 정읍부군을 비서감 승(祕書監丞)으로 증직하고, 대부인은 현군(縣君)에 봉작하였으며, 나라에서는 명하여 삼한국 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봉하니 당세에서 영광으로 여겼다.

 

나이 83세로 지정(至正) 10년(충정왕 2년) 10월 임인 일에 세상을 마쳤는데, 그해 12월 병신 일에 한산(韓山) 둔덕에 장사지내었다. 명문에 이르기를,

몸가짐 절개 있고 / 持身有節
자식 교육 법도 있으니 / 訓子有則


선비로도 어려운 일 / 士也其難
어머니로서 능히 했네 / 惟母時克


몸이 높은 영화 누렸으니 / 身享尊榮
□이름을 이루었기 때문이네 / 由口名遂


유허(幽墟)에 글을 새겨 / 刻文幽墟
길이 후세에 보이노라 / 于求厥眎
하였다.

 

 

[原文]

大元制封遼陽縣君高麗三韓國大夫人李氏墓誌銘 有序

 

大夫人姓李氏。興禮府人。曾大父諱淳匡。司宰注簿。大父諱祐。父諱椿年。皆不仕。旣笄歸韓山李氏監井邑務諱自成。原兩家所以得氏。非一李也。生三男一女。長曰培。次夭。次曰穀。女適張氏。先沒。井邑府君卒。守寡四十年。明敏慈嚴。勉二子宦學。俾有立。培官司儀署丞。穀登國試秀才科。又登皇朝制科。今以奉議大夫爲郞中征東行省。又爲國相。爵韓山君。由是朝命贈井邑府君秘書監丞。大夫人封縣君。而國命封三韓國大夫人。當世榮之。年八十三。至正十年十月壬寅卒。其年十二月丙申葬韓原。銘曰。
 

持身有節。訓子有則。士也其難。惟母時克。身享尊榮。由▣名遂。刻文幽墟。于永厥眎。 

 

익재난고 > 益齋亂稿卷第七 / 碑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