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 2038

용재 이종준선생 유고

초간 : 1824년(순조 24) 재간 : 1911년 필자 소장본 - 1911년[재간본] 간행 [판사항] 목판본(木版本)/三刊 [책의성걱] 시문집(詩文集) [저자사항] 이종준(李宗準). 이홍준(李弘準) 형제. 경주이씨 27世 월성군파(月城君派) [간행인] 후손 이도형(李道炯). 이재윤(李在胤) [발행사항] 경북 [간행연도] 1911년 [크기] 20.4cm(가로) X 28.7cm(세로) [편찬 및 간행] 저자의 문집은 후손 이창욱(李昌郁)이 흩어진 유문(遺文)을 모으고 저자의 동생 이홍준(李弘準)의 「눌재유고(訥齋遺稿)」를 부집(附集)하여 1책으로 만든 뒤, 권사협(權思浹)ㆍ이야순(李野淳)의 교정과 편차를 거쳐 1824년에 간행하였다.《초간본》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한국정신문화원..

경주이씨 동종계 서문

경주이씨 동종계 서문(慶州李氏同宗禊序文) 白沙 李恒福 요(堯) 임금 때에 옥사(獄事) 다스리는 관리를 이관(理官)이라 하였는데, 직무를 잘 수행한 이가 있어 관(官)으로 성(姓)을 삼아 주었던바, 소리가 서로 가까움을 인하여 마침내 이씨(李氏)가 되었다고도 하고, 또 주(周) 나라 말기에 수장사(守臧史) 노담(老聃)이 모태(母胎)에서 70년을 있다가 막 태어나면서 손가락으로 오얏나무 이(李)를 가리켰으므로 또한 성을 이(李)라고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너무 요원한 일이라, 아득하여 이 두 가지 설(說)을 자세히 구명하기가 어렵다. 이로부터 이후로 뿌리가 배양되고 가지가 창달하여 가지와 잎이 멀리 퍼졌다. 그리하여 우리 동방(東方)에 이르러서는 실로 우리 조(祖)가 사는 곳에 촌락(村落)을 이루어 뭇 사람..

수락영당 사진 모음

2007.07.18. 수락영당(水落影堂)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가양2길 144(가양리 44-4) 2019.07.29. 15 1870년 수락영당 영정 : 희원 이한철 작품 ▲ [충북·세종=청주일보]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가양리에서 마을주민 및 경주이씨 문중이 모여 춘계 제향을 봉행했다. / 서정욱 기자 : 승인 2019.04.20 05:35 ○ 수락영당(水落影堂) 종 목 : 청주시 향토유형유적 제14호 봉안신위 : 계림부원군 문충공 문하시중 익재 이제현(李齊賢 , 1278~1367년)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지 정 일 : 2015. 04. 17 소 재 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가양2길 144 (가양리 44-1) 시 대 : 조선시대 ​ 수락영당은 조선 광무 2년(1898)에 진천(鎭..

표박기(飄泊記) - 39世 이상정(李相定)

독립운동가 이상정이 10여년 동안 쓴 글을 엮은 ‘표박기(飄泊記)’ 독립운동가 이상정이 1923년 망명 당시부터 1933년까지 10여년 동안 쓴 글을 엮은 ‘표박기(飄泊記, 떠돌아다니며 쓴 기록)이다. “이속에 타는 불 저님은 모르고” 나라 잃은 슬픔 담은 ‘망명가’ 중국 봉천행 기차 안에서 작성 타국으로 떠나는 심정 드러내 부모·고향 그리워한 ‘망향가’ 망명 초기 정착 과정서 쓴 듯 고국으로 돌아갈 날 기다리며 “날아가는 기럭아 너는 알리라” 자유로운 기러기를 부러워해 소남이일우기념사업회가 28일 영남일보에 최초로 공개한 원본자료에서는 이상정 장군의 중국 망명 때의 삶과 함께 나라를 잃은 슬픔과 독립을 향한 그의 결의를 엿볼 수 있다. 또 친아버지 이상으로 여겼던 큰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애틋한 심정이..

이하곤-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글(饒白髮文).

한국문집총간 191집《두타초(頭陀草)》책16, 잡저(雜著),〈요백발문(饒白髮文)〉 요백발문(見我白髮) - 이하곤(李夏坤) (글의 요점은 요즘 말로 발상의 전환을 잘 표현한 글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늙어버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늙어 감을 안타까워하며 흰 머리를 뽑으려 들고, 뽑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아예 검게 물들인다. 그런데 18세기의 문인 이하곤(李夏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일찍 노쇠하여 서른 대여섯부터 머리에 한 가닥 두 가닥 흰 머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딸아이가 이것을 볼 때마다 싫어하면서 족집게로 뽑았는데, 나는 막지 않았다. 이제 흰 머리가 거의 절반이 되었는데도 족집게로 뽑는 일을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어느덧 내 나..

이경선 충신 정려문 편액

1730년 왕이내린 충신 정려문 편액 ▲필자 보존 선조 유물 [편액 원문] 충신 증 통정대부 예조참의 행 통훈대부 행 남포현감 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 이경선 지문 /숭정기원 후 재경술 10월 일 명 정려 [인물요약] 예조참의 이경선(禮曹參議 李慶善 : 1600 ~ 1636)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아명(兒名)은 경민(慶敏), 초명(初名)은 경징(慶徵), 자(字)는 군선(君善), 휘(諱)는 경선(慶善). 호(號)는 남포(藍浦), 경자(庚子) 1600년(선조 33) 5월 2일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충익공 벽오 이시발(忠翼公 碧梧 李時發)이고 어머니는 신사임당의 손녀로 덕수이씨 옥산(玉山) 우(瑀)의 딸이며, 배위(配位)는 영의정(領議政) 추탄 오윤겸(楸灘 吳允謙)의 딸이다. 공은 16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