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이경선 충신 정려문 편액

야촌(1) 2020. 3. 9. 06:19

1730년 왕이내린 충신 정려문 편액

 

▲필자 보존 선조 유물

 

[편액 원문]

충신 증 통정대부 예조참의 행 통훈대부 행 남포현감 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 이경선 지문 /숭정기원 후 재경술

10월 일 명 정려

 

[인물요약]

예조참의 이경선(禮曹參議 李慶善 : 1600 ~ 1636)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아명(兒名)은 경민(慶敏), 초명(初名)은 경징(慶徵), 자(字)는 군선(君善), 휘(諱)는 경선(慶善). 호(號)는 남포(藍浦), 경자(庚子) 1600년(선조 33) 5월 2일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충익공 벽오 이시발(忠翼公 碧梧 李時發)이고 어머니는 신사임당의 손녀로 덕수이씨 옥산(玉山) 우(瑀)의 딸이며, 배위(配位)는 영의정(領議政) 추탄 오윤겸(楸灘 吳允謙)의 딸이다.

 

공은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고, 음직으로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의 벼슬을 시작으로 저작(著作), 박사(博士)를 거쳐 1633년(인조 11) 계유 식년시의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역임하였다.

 

그 후 1636년(인조 14) 1월에 남포현감(藍浦縣監) 겸 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洪州鎭管兵馬節制都尉)에 제수되고, 그해 12월 14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충청도 근왕병 2,572명의 참모관으로 출전, 경기도 광주(廣州) 검천(儉川) 고개(오늘날 경부고속도로 죽전휴게소 지역) 전투에서 청나라 태종의 매부인 양 굴리(揚古利) 장수의 12만 대군과 최후의 순간까지 격렬히 싸우다. 12월 27일 향년 37세로 장렬히 전사했다.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 5월에 통정대부 예조참의(通政大夫 禮曺參議)에 증직되고, 1730년(영조 6) 9월에 왕명이 내려지고 10월에 정려 편액을 하사 받아 11월에 후손들이 세거하는 용인 공세리(龍仁 貢稅里)에 충신정려를 세웠다.

묘소에는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찬한 묘표가 효종 9년(1658) 7월에 세워졌다.

 

충신정려는 왜정 때, 일본이 조선인의 정신문화 말살 정책에 따라 편액만 남기고 소실되고 없던 것을, 2005년 11월 진천군(김경회 군수)에서 공의 산소 아래 새로이 건립하였다. <끝>

 

글 : 이재훈

 

 

 ↑충신정려문 편액 

 

 

↑예조참의 이경선 선생 충신정려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