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168

일본천리대소장 익재 이제현 선생 진영

↑일본 천리대소장 익재 이제현『1287년(충렬왕 14)∼1367년(공민왕 16)』 선생 진영 ↑일본 천리대학 소장 「조반 부인상(趙胖夫人像,?~1433)」/ 경주인 20世 직장 이양오(李養吾)의 딸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여인 화상은 그려지지 않아 오늘날 전해지는 것이 귀합니다. 왕후의 화상도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위 두 분의 화상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국보급 인물 화첩은 왜정시대 일본이 모두 강탈해 가서 국내에 전해지는 화상의 대부분은 원본을 그대로 옮겨 그린 이모본(移模本) 들입니다. 조선 개국공신 2등인 배 천인(白川人) 복흥군(復興君) 조반[趙胖,1341년(충혜왕 복위 2)∼1401년(태종 1)]의 배위(配位)로 아버지는 사온서 직장(司醞署 直長) 휘 양오(諱 養吾)의 딸입니다.부인(婦人)은 남편..

경남 사천의 경주이씨

■ 학행(學行) 둔와공(遯窩公) 이시준(李時葰) 경주이씨로 자는 태화(太和), 호는 둔암(遯菴)으로 한당공(閑堂公) 곤(鯤)의 고손이고 홍점(弘漸)의 아들이다. 족형(族兄) 벽오 이시발(碧梧 李時發)이 영백(嶺伯=감사)으로 본도에 부임하자 함께 따라가 사천에서 정거(定居)하였다. 일찍이 벽오(碧梧)에게 수학(修學)하여 문장과 풍아(風雅)가 드러나 학행(學行)으로 명성이 높았다. 명리(名利)를 쫓지 않고 오로지 잠심경학(潛心經學=어떤 일에 마음을 두어 깊이 생각하는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것)하고 유행(儒行=유학에 기반을 둔 행위)에 독실하니 사람들이 모두 낙하처사(洛下處士)라 하였다. 진사 김상명(金尙命)의 따님을 아내로 맞았다. [주해] ◇풍아(風雅) - 풍류와 문아(文雅=시)를 아울러 이르는 말. 시(詩..

조선통신사 수행 화원(朝鮮通信使 隨行 畵員)

■조선통신사 수행 화원(朝鮮通信使 隨行 畵員) ◈수행화원은 일본 측의 요청에 의해 동행하게 되었으며, 선발 기준은 명확한 것이 없고 도화서 화원들이라는 점이 특징 이다. ◈임무는 쓰시마(大馬)에서 에도(江戶)까지 이르는 여정에서 접하는 일본 풍경을 스케치하고 기록한다. 또한 조선 정사 의 요청에 의해 일본 지도를 모사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서화(書畵) 구청(求請)에 응해 휘호(揮毫)와 석화(席畵)로 그려준다. 휘호(揮毫)는 붓을 휘둘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요구하는 대로 즉석에서 그려주는 그림을 석화(席畵) 라고 한다. ◈화원들이 문화사절단의 역할로 일본에 많은 시 서화(詩 書畵)를 남겼으며, 중국 남종화풍을 그려서 일본의 남종화가 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차시 使行 간지 실시연도 ..

경주이씨 시조 이알평은 스키타이(Scythia) 족

출처 : 분자 인류학 논단 경주이씨 시조 알평도 스키타이안.....스키타이((Scythia) 역사 스키타이(Scythia) 족을 현대학자들은 사카(Saka)족이라고도 한다.경주이씨 시조 알평(謁平)도 스키타이(Scythia)족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남성유전자 중에는 중앙아시아의 유전자인 N1a2a-M128이 있다. 성산이씨도... 야쿠트((Yakut) 족의 88.4%가 N-type 이라는데 하위그룹은 모르겠고. 야쿠트는 나라 이름이 사하(sacha) 공화국이다. 스키타이가 중앙아시아에서 살다가 월지(月支) 족에 떠밀려서 페르시아와 파키스탄 영역에 세운 나라가 Sakastan이다. 그 외 이르쿠츠크(Irkutsk) 토플라인 59.4%, 나가스탄Nganasans 92.1%, 네네트(Nenets) 97.3%, ..

경주이씨 선조 배향록

■ 경주이씨 선조 배향록 구분 성명 호 소재지 표암재 이알평 표암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이상재 이준 삼효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양호정사 이거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도원정사 이말동 도원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 석림정사 이경욱 석촌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도통사 이진 동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향현사 이유택 유곡 충청남도 금산군 충현사 이존오 석탄 충청남도 공주시 백록사 이종준 용재 경상북도 안동시 어은사(漁隱祠) 이천 국당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어은리 원모재 이천 국당 파주시 맥금동 상골 단구서원 이천 국당 경상북도 경주시 성곡서원 이천 국당 전라북도 임실군 세덕사 이천 국당 전라남도 고흥군 경덕사 이천 국당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면 운곡사 이천 국당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

초평 경주이씨 종택

초평 경주이씨 종택(宗宅)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의 경주이씨 가문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6만 군사를 거너리고 평양성을 탈환 후 여세를 몰아 벽제관 전투(碧蹄館戰鬪=礪石嶺여석령 : 일명 숫돌고개로 오늘날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일대)를 벌였으나 패배하였는데 제장들이 지관 두사충(杜思忠)이 진을 잘못 쳐서 명군이 왜군에게 패하게 되었다고 그 책임을 물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이시발「1569년(선조 2)~1626년(인조 4)」이 건의하여 목숨을 구하였다고 한다. 이에 두사충이 은혜를 갑기위해 이 집터를 잡아 주었다고 하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집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고 전해진다. 이 가옥이 위치한 곳은 17세기 경주이씨 종택..

이하곤(李夏坤)의 낙향

이하곤(李夏坤) 오래 전부터 진천 낙향을 갈망하다, [충북일보]조혁연 대기자 2014.09.16. 17:08:27 이하곤의 진천 낙향은 스승 김창협에 대한 변무소(옹호하는 소) 사건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이와 관련 실록에는 두 유형의 내용이 기술돼 있다. "전 부솔 이하곤은 명가의 자제로서 언론과 행동을 더욱 스스로 조심해야 할 것인데, 흉당(凶黨)과 일을 같이할 수 없음과 외척과 연명(聯名)할 수 없음을 생각하지 않고 남의 잘못된 생각을 받아들여 사론에 속아 따랐으니, 사부의 수치가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 "- 당시 정원 조지빈(趙趾彬)이 아뢰는 말이다. 인용문의 포인트는 '외척과 연명할 수 없음을 생각하지 않고'라는 문장에 있다. 당시 소론의 영수 최석정(崔錫..

체원의 저술

■ 체원의 저술 체원(體元)이 지은 4종의 주석서는 ① 『백화도량발원문약해(白花道場發願文略解)』, ② 『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華嚴經觀自在菩薩所說法文別行疏)』, ③ 『화엄경관음지식품(華嚴經觀音知識品)』, ④ 『삼십팔분공덕소경(三十八分功德疏經)』이다. ①은 1328년(충숙왕 15) 10월 해인사에서 ③·④는 1331년에 저술된 것이 확인되며 ②는 ①보다 먼저 저술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이들 4종의 저술은 모두 해인사 사간본(寺 刊本)으로 남아 있다. 특히 ①은 의상(義湘,625~702)이 찬술한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을 약해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 가치를 지니고 있다. 4종 저술에 나타난 특징을 종합해 보면, 14세기 전반기의 해인사를 중심한 화엄사상계가 관..

이유인(李有仁)을 칭찬한 후미에 제하다-김종직

■이 이천을 칭찬한 유서의 후미에 제하다[題李利川褒美諭書後(제이이천포미유서후)] 내가 《한서(漢書)》와 《후한서(後漢書)》를 읽고서 한선제(漢宣帝)와 후한 장제(後漢章帝)의 백성 걱정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좋게 여겼다. 백성 걱정하는 마음이 간절하였기 때문에 훌륭한 지방관(地方官)을 대우한 것이 더욱 정성스러웠던 것이다. 유민(流民)들을 위로하여 돌아오게 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관내후(關內侯)의 작(爵)을 하사받은 사람은 교동상(膠東相) 왕성(王成)이고, 이민(吏民)들이 이구동성으로 정사가 번거롭지 않다고 함으로써 천자(天子)의 정성스러운 조서(詔書)를 받은 사람은 양성령(襄城令) 유방(劉方)이었다. 그런데 뒤에 논하는 자가 비록 유민 8만여 구를 거짓으로 증가시킨 숫자라 하여 왕성을 책망하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