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168

경주이씨의 14개 대파.목록

■경주 이씨의 14개 대파. 목록 경주 이씨의 시조(始祖)는 이자 알자 평자(李謁平)이시고, 기원전 117년 하늘에서 박바위(瓢巖)에 내리시어 알천(謁川)양산 촌장(村長)으로 처음으로 6촌의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주도하신 분이시다. 그 어른께서는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를 길러서 그가 13세가 되던 한선제오봉(漢宣帝五鳳)첫해(BC 57)갑자(甲子)에 왕으로 추대하고 4년간 임금을 대신하여 통치하신 신라 건국의 원훈이셨다. 경주이씨는 신라 건국후 100년이 지난 유리왕 9년(서기32)에 알천 양산촌(謁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개칭 하면서 이씨로 최초, 사성(賜性)을 받았고 법흥왕 23년에는 충헌공으로 시호를 받았으며, 무열왕 3년에는 은열왕에 추봉 되시었다. 뒤를 이어 신라 말에 진골로 소판 벼슬을 ..

경주이씨 실전세계고찰.

■ 경주이씨 실전세계 고찰(失傳世系 考察) 1.실전세계란? 우리 경주이씨의 시조는 양산 촌장이고, 휘는 알평(謁平)이요, 신라건국 당시 육촌장 회의를 주재하셨고, 유리왕 9년(서기32년)에 이씨(李氏)를 사성(賜姓) 받은 사실은 삼국사기(三國 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및 기타 여러 문헌에도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시조이후 원대손(遠代孫)의 소판공(蘇判公) 휘 거명(居明)까지, 대수(代數)는 물론 선대조(先代祖)의 휘자 (諱字)도 알 길이 없으니 이를 실전세계(失傳世系)라고 말한다. 2.오문(吾問)의 족보(族譜) 조선 중엽에 이르러 각 성씨들이 족보를 간행 하였는데, 우리 경주이씨도 1613 년경 광양현감 종언(宗彦) 선생께서 동종계(同宗契)를 창설하였는데, 백사(白沙)선생이 쓰신 서문만 전해 올 뿐이..

예조참의 이경선 선생 전사일기

■ 예조참의 이경선 선생 전사일기 (禮曹參議 李慶善 先生戰死日記) ------------------------------------------------------------------------------------------------------------------------------------- 공의 초명(初名)은 경징(慶徵)이요. 자(字)는 군선(君善), 호(號)는 남포(藍浦), 오촌공(梧村公) 대건(大建)의 손(孫)이요. 충익공 벽오시발(忠翼公 碧梧 時發)의 아들로 1600년(선조 33) 5월 초(初) 2일 태어나. 1636년(인조 14) 12월 27일 병자호란(丙子胡亂)시, 광주 검천 전투(廣州 儉川 戰鬪)에서 장열히 전사(戰死)하니 향년 37세였고, 정축(丁丑) 1637년(인조 15) 5..

경주이씨 판전공파 파조(派祖)의 벼슬에 대한 고찰(考察)

■경주이씨 판전공파 파조(派祖)의 벼슬에 대한 고찰(考察) 판전공(判典公)의 휘(諱)는 강으로 중시조(中始祖), 소판공(蘇判公)으로 부터 14세손(世孫)이요. 열헌공(悅軒公)의 둘째 아우이니 성암(誠庵), 동암(東庵), 송암(松岩)공의 숙부(叔父)로, 이암(怡菴), 익재(益齋), 국당(菊堂), 부정(副正), 상서(尙書)공 등의 종조부(從祖父)가 되신다. 공(公)의 형수인 김해 김씨는 성암공, 동암공, 송암공, 삼형제 등을 공부시켜 과거에 급제시킨 현모(賢母)로서 당시 고려는 물론 오늘날 우리 후손들 까지 모르는이 없을만큼 유명한 위인 할머니로서. 당시 익재공의 아버지 동암과, 국당공의 아버지 송암, 두형제분을 임금이 직접 치르는 친시(親試)에서 함께 급제 함으로서, 천장 급제라는 대호평을 받으며 금으로 ..

자라를 먹지않는 집.

■자라를 먹지않는 집 고려말 정승을 지내신 문충공 익재(益齋) 이제현의 7세손 공린(齊賢-達尊-德林-伸-繼蕃-尹仁-公麟)은 일찍이 사육신 박팽년(朴彭年)의 둘째 따님에게 장가 드셨는데 당시 청빈(淸貧)하기로 소문난 관찰사(觀察史) 윤인공(尹仁公)집에서 혼수 예물을 대광주리 하나에 면포 2단을 보냈다 한다. 이에 장모께서 예단이 이렇게 소흘함은 대가(大家)의 법도가 아니라며 크게 노하여 남편인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공에게 파혼을 청했는데 취금헌 박공(朴公)은 사람만 좋으면 됬지 다른 무엇이 필요 한가며 아내 얘기를 물리치곤 혼사를 치뤘다 한다. 그런데 공린(公麟)깨서 장가든 첫날밤, 큰 자라가 나타나 "내 아들 8 형제를 살려 달라고 애원하니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공(公)은 하도 꿈이 기..

경주이씨 항렬 오행문.

경주이씨 항렬자는 오행을 기본으로 하여 金 水 木 火 土 를 반복하여 적용한다. 또 현제 대중적인 항렬을 고찰하면 오행 중에서도 쌍오행 이라하여 경주이씨 선조들의 뛰어난 능력을 알수있다. 쌍오행의 적용은 우리나라에서 경주이문(慶州李門)만이 유일하다. 즉, 영화영(榮)자는 불화가 둘이니 쌍화(雙火)이고, 홀규(圭)자는 흙토가 둘이니 쌍토(雙土)가 된다. 쇠북종(鐘)은 쇠금과 무거울중으로 쇠와 무거운것은 동일한 것으로 쌍금이다. 비우(雨)는 글자안에 물수자가있어니 비와 물은 갇은 뜻이므로 쌍수(雙水)가 된다. 서로상(相)자는 댓구의 뜻으로 서로 너와 나라는 뜻으로 풀이되 쌍목(雙木)이고, 밝을희(熙)자는 밝다는 뜻과 부수 네점의 연화는 불과 밝음이 둘이니 쌍화(雙火)다.

이회영 일가의 오블레스 노블리주

다시 쓰는 독립운동列傳] Ⅳ-2. 우당 이회영 일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향신문] 2005-03-07 18:03] ↑6형제가 만주로 망명을 떠나기 전 지도를 펴놓고 망명 계획을 세우던 모습을 묘사한 그림으로 우당 기념관에 전시되 있다. 한국의‘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백사 이항복의 11대 후손인 우당 이회영(1867~1932) 집안을 빼놓을 수 없다. 8대를 이어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였던 이 집안 6형제는 나라가 망하자 1910년 12월 혹한에 59명의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현재 시가로 따지면 6백억원에 이르는 3만섬의 재산을 처분하고 나서 였다. 국내에서의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이역땅에서 펼친 우당 일가의 치열한 독립운동 뒤엔 아나키스트적 삶을 살았으면서도 지도층..

칭찬과 비난

■ 칭찬과 비난 지은이 : 이시발[李時發, 1569(선조 2) - 1626(인조 4)] 나의 문하에 장생(張 生)이란 자가 있는데 하루는 두려운 듯이 와서 말하기를“”저는 스스로 몸가짐을 언제나 조심 하였고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싫어하는 짓은 한 적이 없었으므로 마을에서 모두 훌륭하다고 칭찬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甲)이란 자만은 유독 날 헐뜯고 미워하기를 마지않으니 제가 감히 그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하기에 내가 말하였다. “” 내가 자네에게 말해줄 것이 있으니 앉게나. 자네는 어찌하여 그 사람을 원망 하는가? 그는 자네를 헐뜯는 것이 아니라 바로 칭찬하는 것이요. 자네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일세. 자네 스스로 보기에 자네가 몸가짐에 있어서 그 도리를 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