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경남 사천의 경주이씨

야촌(1) 2018. 10. 14. 22:31

■ 학행(學行) 둔와공(遯窩公) 이시준(李時葰)
 
경주이씨로 자는 태화(太和), 호는 둔암(遯菴)으로 한당공(閑堂公) 곤(鯤)의 고손이고 홍점(弘漸)의 아들이다. 족형(族兄) 벽오 이시발(碧梧 李時發)이 영백(嶺伯=감사)으로 본도에 부임하자 함께 따라가 사천에서 정거(定居)하였다. 

 

일찍이 벽오(碧梧)에게 수학(修學)하여 문장과 풍아(風雅)가 드러나 학행(學行)으로 명성이 높았다.
명리(名利)를 쫓지 않고 오로지 잠심경학(潛心經學=어떤 일에 마음을 두어 깊이 생각하는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것)하고 유행(儒行=유학에 기반을 둔 행위)에 독실하니 사람들이 모두 낙하처사(洛下處士)라 하였다.

진사 김상명(金尙命)의 따님을 아내로 맞았다.

 

[주해]
◇풍아(風雅) - 풍류와 문아(文雅=시)를 아울러 이르는 말. 시(詩)’를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시를 일

   컫는다.
 

31세(世) 영곤(瑩坤)은 호가 송고(松臯)인데 학행이 있었고,다시 진주 정촌 예하(禮下)를 거쳐 37세(世) 종순(鍾淳)이 곤양 묵곡으로 이거하니 총 10여 호이나, 경향각지에 이거하고 곤양에는 1호가 살고 있다.

 

38세손 봉련(鳳連)은 초등학교장을 역임하였고, 삼윤(三允), 오룡(五龍)은 교직에서 정년퇴직하였다.

문중대표는 39세손 향관(香寬)인데, 사천축산업협동조합 지소장에 보직되어 있으며, 종손은 39세손 상영(相永)이다. 상구(相求)는 수의학 박사이고, 향철(香哲)은 경제학 박사이다.

 

■ 유행(儒行) 동천공(東泉公) 찬영(燦榮)- (경남 사천시)


경주이씨로 자는 사영(士英)이고 호 동천(東泉)이다.
청백리(淸白吏) 정보(廷喇)의 후손이다. 
 
예학(禮學-예절에 관한 학문)에 식견이 높고 명석하였으며 양친(兩親)의 뜻을 받들어 사친
(事親-어버이를 섬김)에 지효(至孝-더할 나위 없는 효도)하였다.

그 일이 경주이씨 세덕지(世德誌-전해오는 가문의 미덕을 적은 책) 및 보감(寶鑑-본보기가
될 만한 일들을 엮은 책)에 세전(世傳-여러 대를 전해 내려옴)한다.

■ 문행(文行) 수암공(秀岩公) 인민(仁敏)- (경남 사천시)

경주이씨로 자는 원여(元汝)이며 호는 수암(秀岩)이다.
문효공(文孝公) 국당(菊堂)의 후손이고 통정(通政) 동신(東臣)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정훈(庭訓-가정의 교훈)을 받고 글방을 떠나지 않았다.
문학으로 올바른 행의(行義)와 덕행(德行)으로 견중(見重-남에게 소중하게 여겨짐)하며 사류
(士類)하였다. 유고(遺稿)가 있다

◇사류(士類) - 학문을 연구하고 덕을 닦는 선비의 무리. 여기서는 사귐을 뜻한다
◇유고(遺稿) - 죽은 사람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 남긴 글

 

■문행(文行) 만포공(晩圃公) 종매(鐘袒)- (경남 사천시)

경주이씨로 자는 효인(孝仁)이고 호는 만포(晩圃)이다.
효자 성춘(成春)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이다.

타고난 자질이 순박하고 진실하였으며 가학(家學-집안 대대로 전하여 오는 학문. 집에서 배운 글)을 승습(承襲-학풍이나 아버지의 봉작 따위를 이어 받음)하여 자질(子侄-아들과 조카)을 훈도(訓導)하고 예설(禮說-예절에 관한 학설)에 관한 많은 책을 섭렵(涉獵-많은 책을 널리 읽는 것)하였다.

아들 진우(晋雨)는 아버지의 좋은 교훈에 따라 문학을 일찍 조성(早成-빨리 이룸)하였다. 
 
■문행(文行) 온와공(溫窩公) 종완(鍾琓) - (경남 사천시)

인근에서 문행(文行-학문이 뛰어나고 행실이 바름)으로 이름이 났다.
자는 경숙(敬淑)이고 호는 온와(溫窩)이다. 경주이씨 유행 시준(時渫)의 후손이다.
타고난 바탕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다.

집안의 족형 만포(萬圃)와 함께 경의(經義-경서經書)를 강론하면서 주야로 탑상(榻床)을 마주하였다.(종일 독서를 주로 하였다)

 

◇탑상(榻床)-교의(交椅-의자)ㆍ와상(臥床), 마루 따위를 통틀어 일컬음 
 
■ 선행 독지(善行篤志) 이선득(李先得)- (경남 사천시)

경주이씨로 자는 순보(順甫)이며 청백리 정보(廷喇)의 후손이다.
벼슬은 특수한 양반층의 자손들이 분 번 숙위(分番宿衛-나누어서 지킴)하는 오위(五衛)의 충좌위(忠佐衛)에 소속된 충의위(忠義衛)를 지냈다. 순효지행(純孝至行- 지극한 효성을 행동으로 다함)하여 향당(鄕黨)의 모범이 되었다.

이 사실이 이씨 세덕지(李氏世德誌) 및 세전보감(世傳寶鑑)에 올라 있다.

◇향당(鄕黨) - 자기가 태어났거나 사는 시골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 예전에는 500집이‘당’이 되고 1만 2

                     500집이‘향’이 되었다.

 

■ 효부 경주 이씨(孝婦慶州李氏) - (경남 사천시)

 

경주 이씨 참봉(參奉) 문준(文俊)의 따님이며 경주인 김영우(金榮友)의 처다.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유순하였다. 

시부모(媤父母)에게 뛰어난 효행(孝行)으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웃 사람들이 칭송하니 포상(褒賞)이 있었다.

 

■ 처사경주이공효행비(處士慶州李公孝行碑) - (경남 사천시 용현면)

 

경남 사천시 용현면 용정마을 입구에 위치한 경주 이씨 성춘(成春)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이있고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휘(諱)는 성춘(成春)이요, 자(字)는 사겸(士謙)으로 영조 30년 갑술년(1754) 12월 21일에 태어나 순조 30년 경인년(1830) 12월 29일 77세로 별세하였다.

 

부친이 질환이 있어 낮에는 의원과 약을 구하려 다니고 밤에는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드려 그 정성을 다하는데 하루 밤에는 노인이 나타나 부친의 병세를 살펴보고 환약(丸藥) 두 알을 주어 이 약으로 봉진(奉進 ; 하루도 쉬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병을 돌 봄)하니 병이 완쾌 되었다.

 

후에 노환(老患)으로 죽음에 이르자 손가락의 피를 입에 넣으므로 수일을 소생(蘇生-다시 살아남)하다가 돌아갔다. 명혈(名穴)에다 묘소를 정하여 효를 다하였다.]◇명혈(名穴) - 풍수 지리에서 땅의 정기가 모여 묏자리로서 아주 좋은 자리를 이르는 말

 

참고문헌 : 사천시사(泗川市史)-전3권/2003 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