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168

월성군파 계대 천오주장의 오류

■월성군파 계대 천오(舛誤: 잘못) 주장의 오류(誤謬) 이 글은 2016년 12월 15일 경주이씨중앙화수회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월성군파(月城君派) 계대 천오 주장에 대한 전국 각 문중 대표자 공청회에서 발표된 글로서 경주이씨 종보 제191호(2007. 09. 14. 금요일) 7면 및 제192호(2007. 10. 15. 월요일) 경주이씨 본종 분파도 자료 오류에 대한 기사를 바로잡고자 기고(寄稿) 합니다. [서론] 옛 말에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희망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각 가정마다 족보가 있는 것은 나라에는 국사가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만약 국가에 사기(史記)가 없다면 어찌 민족의 역사를 알 것이며 가정마다 족보가 없다면 어찌 조상 대대로의 행적(行蹟)과 일가 간 위 아래의 파생 서열을 알 것이..

경주이씨 월성군(月城君) 봉군자(封君者)

1. 17世 국당공(菊堂公) 이천(李蒨) 국당공파 파조 2. " 공간공(恭簡公) 이성서(李成瑞) 3. 18世 문정공(文貞公) 이경중(李敬中) 국당공 이천의 장자 4. 19世 충열공(忠烈公) 이성림(李成林) 이암공 이관의 손자 5. 19世 월성군(月城君) 이전(李竱) 제정공 이달충의 차자 6. 19世 양평공(襄平公) 이철견(李鐵堅) 참판공 이연손의 차자 7. 20世 월성군(月城君) 이정견(李廷堅) 문정공 이경중의 손자 8. 21世 월성군(月城君) 이지수(李之秀) 월성군파 파조*미고증 9. 23世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란(李鸞) 국당공후 정순공파

계림세가(鷄林世家) - 이덕배(李德培)

제정집 제4권 [추록(追錄)] 《계림세가(鷄林世家)》- 이덕배(李德培) 撰 삼가 살펴보건대 고려 말 전성기에 인재가 성대하게 일어났으니, 공은 일세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이때에 빼어나게 생장하였다. 명망이 온 세상을 덮었고 감식안(鑑識眼)은 타고났으며 역사에 공을 드리워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니, 공이 덕(德)을 세운 것이 이와 같았다. 충효가 마음속에 가득하고 영특함과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나 쇠 종이나 옥경과 같이 영롱하게 울려서 널리 인구에 회자되었으니, 공이 훌륭한 말을 남긴 것이 이와 같았다. 덕을 지니고 있고 또 훌륭한 말씀이 있었으니, 지은 문장은 해와 별과 그 빛을 다투었다. 그런 까닭에 후학들은 산이나 북두성을 바라보듯 공을 우러르고, 후손들은 시귀(蓍龜)를 간직하듯 공의 문장을 보배로..

경주이씨 세덕지(慶州李氏世德誌-6권 3책)

↑고종년간 발행 훈련원도정 규승 발문/1928년 경주이씨종중 酉豊泉에서 석인본 간행. [내용] 1928년 慶州李氏宗中 酉豊泉에서 간행한 한지 석인본 [경주이씨세덕지(慶州李氏世德誌)] 6卷 3冊 완질본으로 권두에 '歲戊辰(1928)... 예손 규환 근서(裔孫 圭桓 謹序)', 권말에 '戊辰(1928)... 후손 규승 근발(後孫 圭昇 謹跋)'이 있다. 보존 상태 양호하다. 19.7(가로)×28.8cm(세로)

경주이씨금석록(慶州李氏金石錄)

■경주이씨금석록(慶州李氏金石錄) [ 기본정보] 분류 고서-사회-역사 | 사부-전기류 편자 이유원(李裕元, 1814-1888) 편집 판종 목활자본 발행사항 양주(楊州) : 가오곡(嘉梧谷), 1868년(고종 5) 형태사항 24卷10冊 : 分派圖 , 四周單邊 半郭 23.3 × 16.4 cm, 10行20字 註雙行, 上白魚尾 ; 31.5 X 20.0 cm ·주기사항 表題, 版心題: 金石錄編題面(藍色印刷): 慶州李氏金石錄(篆書)刊記: 戊辰(1868)孟夏嘉梧谷活印刊行關聯人物: 監印, [李]裕文. -- 書寫, [李]裕吉·[李]龍雨. -- 校正, [李]裕承序: 丁卯(1867)後孫裕元序, 東萊鄭元容序, 迎日鄭文升序跋: 益齋嗣孫[李]仁榮謹跋. -- 益齋公後孫[李]圭昌謹跋. -- 益齋公後孫[李]龍雨謹跋. -- 菊堂公後孫[李]..

북천일록(北遷日錄)-정충신(鄭忠臣) 著

본 책은 昭和12年(1937) 노루지에 목판본으로 인출한 1책이다. 원래 1686년(숙종 12)에 증손 세구(世龜)가 교정하고, 북청부사 정내상(鄭來祥)과 함경도관찰사 이수언(李秀彦)이 간행한 책으로 1617년(광해군 9) 11월 1일부터 1618년 8월 7일까지의 상세한 일기를 이항복을 수행하였던 정충신(鄭忠信)이 기록하였다. 이항복이 배소(配所)에서 죽자 정충신이 그 유해를 모셔 안장하였는데, 그 내력과 함께 끝에는 광해군이 폐모하려 할 때 이항복이 헌의(獻議)한 수초(手草)도 함께 수록하였다. 책머리에 1686년에 쓴 남구만(南九萬)의 서문이 있고, 책끝에는 이세구의 〈각북천일록발(刻北遷日錄跋)〉과 1686년에 이민서(李敏敍)가 쓴 발문이 있다. 20.4×30.7 cm ----------------..

정만록(征蠻錄)

↑사진출처>인터넷/2권 2책(완결본) ■ 정만록(征蠻錄) 정만록의 저자 이탁영(李擢英)은 경상순찰사였던 김수(金睟의 수하(手下)에 있다가 임진왜란 당시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1538~1593)의 막하(幕下) 진중(陣中)에서 영리(營吏)로 있었고, 또한 유성룡(柳成龍)의 휘하에 있으면서 여러 전술을 건의하여 승리에 공헌한 바가 많았다고 하는데 이 때 진중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임진변생후일록(壬辰變生後日錄)이란 제목(題目)의 일기형식으로 초(草)하여 두었던것을 선조 34년(1601)에 경상감사(慶尙監司) 이시발(李時發)이 도내(道內)의 사적을 채집하게 하였을 때 이 일록을 재정리하여 제출하게 되었고, 이를 선조(宣祖)가 어람(御覽)한 후 정만록(征蠻錄)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이 일록(日錄)은 이와 같이 선..

북악(北岳) 이해룡(李海龍)

이향견문록(226) 서화편(2) 북악(北岳) 이해룡(李海龍)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은 유재건(劉在建,1793~1880)이 쓴 인물행적기로, 총 10권으로 권1~3, 권4~6, 권7~10의 3책으로, 나누어져 있다. 간행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책머리에 조희룡(趙熙龍)이 1862년에 쓴 서문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이전에 쓴 것으로 보인다. ‘이향(里鄕)’이란 ‘여항(呂港)’이나 ‘여리(呂里)’와 같이 평범하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이 내용에는 대부분 향리에 묻혀있는 하층계급 출신 가운데 뛰어난 인물의 행적을 기록했다. 이책을 쓰기위해 인용한 책은 52종에 이르고, 수록된 인물은 308명에 이른다. 《이향견문록의례》와 목차, 인용 서목 순으로 되어 있고, 권1~3에는 학행·충효·..

李海龍千字書

■李海龍千字書 東溪集卷之七/박태순(朴泰淳)저/1736년(영조 12)간행題李海龍千字書李主簿海龍。以善書著於宣廟朝。甞西隨儐使。東渡日本。稱華國手。與韓石峯濩齊名。韓書病於爲戈。見李所書。輒懣然。沙峴。將建楊蒼嶼碑。華人擇東國善書者。終以命李。韓至失涕云。余甞從其曾孫後勣。求觀其遺跡。兵亂後散軼。只有千字文一冊。初頗謹正。後轉縱肆。盖一筆所揮也。石峯亦甞奉敎書千字文。盡其精力。以今比觀。家鷄埜。雖未易別其貴賤。然玉環飛燕。固不可異其愛憎。若仍至湮沒則甚可惜也。遂俾其玄孫春發搨摹。而付諸剞劂以壽之。李自號北岳。其裔孫頗多。能世其箕裘。今於斯役。盡誠奔走。不辭勞苦。亦可嘉也已。並爲之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