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초평 경주이씨 종택

야촌(1) 2018. 5. 14. 11:51

초평 경주이씨 종택(宗宅)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의 경주이씨 가문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6만 군사를 거너리고 평양성을 탈환 후 여세를 몰아 벽제관 전투(碧蹄館戰鬪=礪石嶺여석령 : 일명 숫돌고개로 오늘날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일대)를 벌였으나 패배하였는데 제장들이 지관 두사충(杜思忠)이 진을 잘못 쳐서 명군이 왜군에게 패하게 되었다고 그 책임을 물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이시발「1569년(선조 2)~1626년(인조 4)」이 건의하여 목숨을 구하였다고 한다.

 

이에 두사충이 은혜를 갑기위해 이 집터를 잡아 주었다고 하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집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고 전해진다. 이 가옥이 위치한 곳은 17세기 경주이씨 종택 이 있던 곳으로 본래의 가옥은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배치된 튼ㅁ자형의 배치 구성이었다고 한다.

 

용정리 경주이씨 종택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25년경에 다른 사람에게 매매되었으며 1988년경 개축하면서 많이 축소되고 변형되었다. 현재 용정리 경주이씨 종택은 일자형의 평면 구성으로 서쪽에서 부터 방.부엌.방.방.등으로 이루어 정면5칸 측면1칸 규모 이다.

 

높다란 자연석 기단위에 방형으로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 주초 석을 놓고 방형으로 다듬은 각주를 세웠는데 기둥의 상태로 보아 개축 당시 부속건물의 기둥을 옮겨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붕가구는 1고주 5량 가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전면 툇간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뒤쪽에는 굴뚝이 설치되어 있다. <끝>

 

[각주]

(碧蹄館) : 경기도 고양시 벽제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의 객관(客館).

 

 

 

 

↑사진디지털진천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