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 이재훈 435

영산김씨(永山金氏)/영동김씨(永同金氏)

■ 영산김씨연원(永山金氏淵源) 시조(始祖) 김영이(金令貽)는 신라 신문왕(神武王)의 넷째 아들 익광(益光)의 후손이다. 고려 때 전객시령(典客寺令)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길원(金吉元)이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워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영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영산은 충청북도 영동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영동김씨(永同金氏)라고도 한다. 김길원의 아들 종경(宗敬)은 고려 정종때 문과에 급제하고 우찬성 겸 판의금부사를 거쳐 도총관을 지냈다. 김종경의 손자 김수온(金守溫)은 세종과 세조때의 명신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세종때 ‘치평요람’ 과 ‘의방유취(醫方類聚)’의 편찬에 참여하고 ‘석가보’를 증수했다. 김수온은 문장이 뛰어나 당시 서거정, 강희맹과 어깨를 ..

비목-테너 박홍섭

비목(碑木) 한명희 작시·장일남 작곡-예술가곡. [구성 및 형식] 이 곡은 전체 16마디로 A(ab), B(cb')의 구조로 된 두도막 형식의 노래이다. 4분의 4박자로 전체적인 조성은 라장조이나 라장조의 나란한조인 나단조 음계가 번갈아 사용되었다. 곡 전체의 선율 중 가장 낮은 음으로 시작되며 악상기호 아주여리게(pp)로 시작되지만, 점차 상승하여 11, 12마디, ‘두고 온 하늘가’에서 선율 중 가장 높은 음과 악상기호 점점 세게(crescendo), 강하게(f), 음을 충분히(tenuto) 등을 사용하여 절정을 이룬다. 1절과 2절 공통으로 작사가의 직접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두 번째 도막 앞부분(9∼12마디)이 음악적으로 절정을 이루는 부분으로 작곡되었다. 조금 느리고 슬픈 듯이(Andantinol..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 기념물 지정고시-서울시

서울특별시고시 제2014 - 58호 를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조례」 제8조 규정에 따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고, 같은 조례 제11조 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사실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나다. 2014년 02월 20일 서울 특별시장 서울특별시 기념물 지정고시 1. 문화재 및 보호구역 지정 개요 ○지정종별 및 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5호 ○지정명칭 :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慶川君 李海龍 賜牌地 松禁碑) ○문화재 및 보호구역 지정대상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 대상 지번 지적(㎡) 지정 수량 및 면적( ㎡) 소유자명 지정 대상 지번 지적(㎡) 지정 수량 및 면적(㎡) 소유자명 송금비 1기 국 (산림청) 송금비가점하는 토지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산 25번지 1,175,719 0.2 국 (산림청) 토..

서얼금고법 폐지상소(庶孼禁錮法廢止上疏)

국역승정원일기>영조 즉위년 갑진(1724, 옹정2)> 12월 17일(병술). ■서얼을 금고(禁錮)하는 법을 폐지하여 재능에 따라 호조 낭청 등의 요직에 조용(調用)해 줄 것을 청하는 진 사(進士) 정진교(鄭震僑) 등의 상소(263명) 진사(進士) 정진교(鄭震僑), 생원(生員) 정최령(鄭最寧), 유학(幼學) 이정화(李正華)ㆍ어유호(魚有浩), 진사 이정언(李廷彦), 생원 이집일(李集一), 진사 송수옹(宋秀雍)ㆍ정린(鄭璘), 유학 이만년(李萬年), 진사 정진규(鄭震奎)ㆍ송필위(宋必煒), 업유(業儒) 윤치(尹治)ㆍ이항녕(李恒寧), 유학 심복래(沈復來)ㆍ민효백(閔孝百)ㆍ이헌신(李獻身)ㆍ이만(李墁)ㆍ유하상(柳夏相), 업유 이도흥(李道興), 유학 신소(申紹)ㆍ이서채(李瑞彩)ㆍ이서표(李瑞彪)ㆍ이의인(李宜人), 업유 윤..

연암 박지원선생 묘(燕巖 朴趾源先生墓),

■연암 박지원 묘(燕巖 朴趾源 墓), 1737년「영조 13) 3월 5일(음력 2월 5일)∼1805년(순조 5). 12월 10일(음력 10월 20일)」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또는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필균(弼均)이고, 아버지는 사유(師愈)이며, 어머니는 함평 이씨(咸平李氏) 창원(昌遠)의 딸이다. 황해북도 개성시 은덕동의 황토고개 남쪽 기슭에 있는 그의 무덤이다. 일제의 탄압말살정책으로 그의 무덤도 행처를 모르다가 1959년에 묘지명이 발견되어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2011년도에 북측에서 다시 조성되었다.

금천 도산서원(金川道山書院)

■ 금천 도산서원(金川道山書院) [존치기간] 1662년(현종 3)~1868년(고종 5) [소 재 지] 오늘날 황해북도 장풍군 십탄리 서원촌(오늘날 익재공 신도비 위의 산기슭) . [연 혁] 황해도(현재의 황해북도) 금천군에 있던 서원. 1662년(현종 3) 지방유림의 공의로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이색의 차자인 인재 이종학「麟齋 李鍾學,1361(공민왕 10)~1392(태조 1)」·낙정 조석윤「樂靜 趙錫胤, 1605(선조 38)~1654(효종 5)」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86년(숙종 12)에 ‘道山(도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선현배향(先賢配享)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후 문헌 고증으로 ..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작성일 : 2014. 01. 01 ▲그림1 아래 반원형으로 움푹 패인 명동(鳴洞)은 종소리가 울리도록 하는 공명동 역할을 한다. ▲그림 3> 성덕대왕신종의 맥놀이 현상 ⓒ한국과학창의재단 / 작가 김화연 1.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현대기술로서도 소리를 재현할 수 없는 장중하면서도 맑은 소리가 난다. 특히 유난히 길고 특별한 소리의 여운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히 천상의 울림이라 할 만 하다. 이 특별한 소리는 유리잔이나 종 같이 속이 빈 둥근 몸체를 두드릴 때 나타나는 ‘맥놀이 현상’ 때문이다. 맥놀이란? 두 음파가 서로 간섭을 일으켜 진폭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을 말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래의 소리(진동)와 반대편에 부딪혀 되돌..

해인사 중건상량문(伽倻山海印寺重建上樑文)

가야산 해인사 중건상량문(伽倻山海印寺重建上樑文) 그윽이 헤아리건대 대운(大雲)이 널리 덮임에 화택(火宅)이 서늘한 데로 돌아오고 법월(法月)이 겹바퀴가 되매 보찰(寶刹)은 상서가 솟았도다. 삼독(三毒)을 없애고 삼계(三界)를 뛰어나니 다시 환희의 하늘을 보고 십덕(十德)을 나타내고 십문(十門)을 증명하니 길이 견뢰의 땅에 정했구려. 붉은 불똥은 양구(陽九)의 액을 그치고 금속(金粟)은 대천(大千)의 빛을 더하도다. 대개 들으니 하나의 대사(大事)의 인연이 묘용(妙用)을 허공(虛空)에 나타내는 것은 법해(法海)의 서로 이음이요, 만 가지 행실의 공덕이 진체(眞諦)를 진찰(塵刹)에 관통하는 것은 밀인(密印)의 서로 전함이라 하였소. 이런 고로 전도(顚倒)나 감증(減增)이 없었는데, 어찌 작지(作止)와 임멸(..

이승직(李繩直) - 월성군파

■20世 이승직(李繩直) 1378년(우왕 4)~1431(세종 13),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 경주(慶州). 이조판서(吏曹判書) 만실(蔓實)의 아들로 송도(松都)에서 출생했다. 생원(生員)ㆍ진사시(進士試) 합격하여 태종(太宗) 때에 순금사호군(巡禁司護軍)ㆍ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하고, 세종(世宗) 때에 양주부사(楊州府使)ㆍ공조(工曹)ㆍ형조참의(刑曹參議)ㆍ경상감사(慶尙監司)ㆍ대사헌(大司憲)을 역임했다. 재임시 청렴하고 밝은 정사를 펴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뽑히었다. 경기도 포천(抱川)에 살다가 만년에 처향(妻鄕 : 栢竹堂 裵尙志의 사위임)을 따라 서후(西後) 금계리(金溪里)로 옮겨와 살았다. [참고문헌] 永嘉誌ㆍ慶州李氏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