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국사(國史)

8.15해방 사진 모음

야촌(1) 2011. 7. 20. 16:45

 

 

위 사진은 59년 전 8월 15일 조국이 일제로 부터 해방돼 서울 시민들이 남산 국기 게양대에

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

 

이 사진은 촬영한 사람이 누구인지, 태극기를 게양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돼지 않는

정부 자료 사진입니다. 해방 한달쯤 뒤 국민학교가 개교해 첫수업을 하는 장면,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색 사진으로 알려진 해방 1주년 기념행사 사진 등 귀중한 사료도 포함돼 있습

니다.

 

사진은 이형모 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촬영한 사람이 확인돼지 않은 자료들입

니다. 또 사진에 대한 해설도 불충분 합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1945년 광복을 환호하는 모습

 

조국의 해방을 환호하는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의 인파 모습.


만나는 이 마다 서로 부둥켜 안고 목이 터져라 해방 만세를 외치면서 밤이 되어도 흩어질 줄

을 몰랐다.

 

시민환영 받는 몽양 여운형 선생

1945년 8월 16일 휘문고 교정에서 연설하기에 앞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몽양(앞쪽 가운데)

 

1945년 8월 15일 美, 英, 佛, 蘇 등 전승국 언론들과 미국에서 발간 되던 독립신문은 일제(日帝)

부터의 한국 해방을 테러와 억압에 대한 승리`로 보도하면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한 분석기사까지 

곁들였다.

 

임정귀국 축하행진 모습

 

임시정부의 귀국을 맞아 서울시내 곳곳엔 환영아치가 세워졌고 학생들의 축하 시가행진도 잇달으

면서 임정에 대한 국민적 여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갔다.

 

8.15 조국해방은 옥중 독립투사들에게 더욱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사진은 서울 서대형무소에서

풀려 나와 해방 만세를 외치는 출옥 애국인사들과 이를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1945년 8월 15일)

 

해안경비대의 해방경축행진

 

창설 당시 3백 명에 불과했던 경비대가 대원 1000여명의 해안경비대로 발전 해방1주년 경축

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1946년 8월 15일) 

전국에 메아리친 해방의 기쁨

 

조국해방은 방방곡곡 어디라 할 것 없이 기쁨과 감격의 물결을 이루게 했다. 

사진은 1945년 8월16일 전남 광양읍 목성리에서 주민들이 해방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는 모습이다.(李坰謨씨 제공)

 

해방 후 국민학교 첫 개교

 

해방 약 한달 뒤인 1945년 9월 24일 전국에서 초등학교 교육이 일제히 시작되어 빼앗

던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는 감격을 맛보았다. 사진은 첫 수업 모습이다.

 

조국으로 돌아온 임정요인들....

 

왼쪽 세 번째가 법무 위원이었던 이시영선생, 다음이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 외무부장 조소앙, 

내무부장 신익희의 순이다.

 

36년 만에 광복을 맞은 임시정부의 김구주석이 감격어린 표정으로 귀국동포의 뜨거운 영접을 받았

다.

 

해방 직후의 시골 국민학교 교실 모습


진흙 화로둘레에 배치한 간이 책상에 옹기종이 모여앉아 진지한 얼굴로 되찾은 우리글을 익히고

있다.  사진은 강원도의 한 산골학교 교실입니다..

 

해방경축 종합경기대회 

1945년 10월 27일에 열린 이 대회는 해방 후의 첫 전국체전으로 태극기를 든 손기정씨가 감격에 

벅차 눈물을 닦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경을 떠나는 김구 일행. 왼쪽으로부터 이청천 장군, 

안미생(김구선생의 자부), 김구, 그리고 그 뒤에 윤경빈이다.

 

 ↑임시정부 귀국환영 꽃전차

 

↑총독부 광장의 게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있다.(1945년 9월 9일)

 

몽양 여운형(呂運亨) 1945년 8월 16일 해방직후, 휘 문 학교에서 해방의 기쁨을 전하는 여운형. 

 

몽양 여운형(呂運亨) / 1945년 8월 16일 해방직후 휘문고 보 교정에서 연설하는 몽양 여운형. 

 

조선총독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항복한 직후인 1945년 9월 9일 오후 철수하고 있는 일본군 모습.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전남 광양 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군민들

 (1945년 8월 15일) 

 

↑전남 광주에서의 8.15 해방경축퍼레이드

 

일왕(日王) 히로히토가 1945년 8월 15일 정오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미영중소 연합군에게 항복을

발표하자 서울광화문 네거리로 나와 환호하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 

 

무조건 항복한다는 일왕의 육성방송을 듣고 있는 서울의 일본인들(1945년 8월 15일)

 

[출처] 인터넷 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