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리지(地理志) 37

슈퍼문과 블루문 동시 관찰-35년만의 우주쇼.『 Martin( yconan)』

작성일 : 2018. 01. 31. 겨울이벤트>슈퍼문과 블루문 동시 관찰-35년만의 우주쇼. 평소 보던 달 보다 14% 더 커진 크기에 30%더 밝아진 "슈퍼문"도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35년만에 개기일식까지 이루어지는 날이 1월 31일 밤부터 밤하늘에서 펼쳐진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보도자료를 통해서 알려준 상세 내용은 아래 스케즐에 자세히 담아둔다. 슈퍼문+개기월식은 1월 31일 밤 5시 38분에 시작해서 밤 10시 29분 54초에 최대를 지나 자정을 지난 2월 1일 새벽 1시 10분에 월식이 종료된다. 1982년 이후 35년만의 우주쇼인데다, 시간대도 관찰하기 좋은 때이다. 하늘을 본지 얼마인가 싶을정도인 현대인의 삶속에 이런 밤하늘의 우주쇼를 이유로 하늘 한참 쳐다보며 잠시 생각속 잡음 줄..

남지읍 성사리 매전마을 유례

경남 창녕군 남지읍 성사리(成士里) 매전(梅田) 유례 1. 위치와 환경 성사 남쪽의 마을 매말리를 매전으로 한자를 쓴 행정리의 명칭이다. 관동리에서 1964년 3월 1일 분동되었다. 매전의「매]는 산의 옛말인 [뫼, 메]가 [梅]로 전사(轉寫)된 것으로 곧 뫼 마을, 산마을이란 뜻이다. [전(田)]이 신전리의 경우처럼 밭을 말하기보다는 마을을 뜻한다. 산의 옛말 뫼가 매(鷹), 마(馬), 마(麻), 미(彌), 매(買) 등으로 전사되어 옛 지명에서 산을 뜻하는 글자로 많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매전, 매말리는 [뫼마을] 곧 산마을이라 할 것이다. 2. 입향 성씨와 마을의 형성 1925년 8월, 관동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옮겨오기 시작하였는데 밀양박씨 박재근(朴在根 -박영익의 조부). 이종석(李鍾錫)..

쌍령산(雙嶺山)

■ 쌍령산(雙嶺山)은 성륜산(聖輪山) 2006년 08월 31일 (목) l 용인시민신문 webmaster@yongin21.co.kr 쌍령산은 오늘날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학일리와 안성시 고삼면 쌍지리 사이에 있는 산을 말한다. 높이가 해발 382미터이고 안성시 고삼면에 산 이름에서 유래된 쌍지리에 쌍령마을이라는 지명을 남기고 있다. 산봉우리 두 개가 마주하고 있다고 하여 쌍령산이라고 한다고 하며 본래 양지현 고동면(古東面)의 쌍령리에 있다고 『양지현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쌍령산의 본래 이름은 성륜산(聖輪山)이다. 성륜(聖輪)이란 '성스러운 바퀴'라는 뜻이니 이는 불교의 법륜(法輪)을 뜻하는 말이다. 법륜은 흔히 불교에서 '부처님의 교화(敎化)와 설법'을 가리켜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산과 바위를 부수고..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음양진풍수지리연구소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우리 일행은 선인부사 도강형을 답사하기 위해 천내리(川內里) 입구에 있는 제원교(濟原橋) 옆, 아래 주차장에 차(車)를 세우고 왕릉(王陵)의 예정지로 지정(指定)하여 용석(龍石)과 호석(虎石)을 세워둔 곳에서 내력(來歷)을 알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니 과연 동국(東國)의 제2지라 할 만큼의 국세(局勢)라고는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 형세(形勢)이니, 하물며 후학인(後學人)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20년 전에 둘러보았던 산(山)하고 지금의 산천(山川)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산(山)을 보고 다니는 사람은 그 산의 특징적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가 보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병오룡(丙午龍) 5得 2破,(5得 ..

금산 부사도강형(錦山 浮楂渡江形)

양박사 2010.02.27. ■금산 부사도강형(錦山 浮楂渡江形 ) ●출발 부사도강형(浮楂渡江形)은 만산도의 결록에도 언급되고 있고 또 東方 第二地라고 評價되고 있는 대혈( 大 穴)이여서 世人들의 관심이 크다. 그동안 國內의 수많은 風水人들이 이곳을 찾을 려고 다녀갔지만 천장비비(天藏地秘-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깊이 묻혀 있음)여서 "결록에는 있지만 사실은 없다", "결록이 틀렸다"는 등 모두 虛事였다. 그러나 故 張益鎬 先師는 1983년 6월 이곳을 답산(踏山)하고 유산록(遊山錄)을 통해 부사도강형(浮楂渡江形)과 차혈(次穴)을 記錄해 놓았으며 浮楂渡江形은 아직 그대로 健在하고 主人을 기다리고 있다. 筆者는 2009년 1월 10일 만산도와 張 先師의 記錄을 바탕으로 錦山郡 濟原面 川內里에 있는 "仙人이 뗏목..

운림리, 용평리 유례

운림리, 용평리 유례(오늘날 함양군 함양읍 소재) 1.운림리의 유래 옛날에 함양군의 부내면 또는 원수면의 마을로 1980년 대까지만 해도 상동이라고 부르던 것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때라 중동과 상동을 합해 상리라 하였으며 1957년 읍으로 승격하면서 상동이라 했다가 1988년 다시 운림리로 고쳐부르게 되었다. 함양읍성의 관아가 관변마을에 있었는데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불타고 난뒤 문필봉 아래 지금의 운림리로 옮겼다. 마을의 형성은 그 때부터라고 짐작된다. 동헌과 객사 학사루가 있었는데 객사는 근년에 철거하고 학사루는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운림 1리 2리 3리로 나누어져 있다. 읍성지는 고려 말에 이곳으로 옮겼는데 둘레가 2,200미터로 토성을 쌓았다. 동문을 제운루(齊雲樓) 남문을 망악루(望岳..

오산(蜈山) 마을 설화

■오산(蜈山) 마을 설화 행정소재지명 : 전남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오산마을 오산(蜈山)마을은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경주이씨(慶州李氏) 청호공 이희(李暿)의 손자요. 제학공(提學公) 문환(文換)의 6형제 중 차자(次子)인 현감(縣監) 이흔(李昕)이 성균관대사성에 있다가 1500년경에 도갑사 부근으로 낙향(落鄕)하여 은거(隱居)하다가 현재의 오산마을인 죽림동(竹林洞)에 터를 잡고 죽림당(竹林堂)의 서당(書堂)을 세워 문하생(文下生)을 양성(養成)하였으며 죽림당을 죽림정(竹林亭)으로 개명(改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산마을은 성묘산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에 지네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지네 오(蜈)자를 써서 오산(蜈山)이라 하였고, 오산마을 골짜기의 후미진 곳이 무릎을 꾸부리는 안쪽 같다하여 오금실..

팔도 명칭의 유례

팔도 명칭의 유래와 사용시기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8도의 지방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만들어진 이름들이다. 그러나 그 지역의 범위까지 확정된 것은 조선 태종 - 세종 때, 서북방면과 동북방면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 - 두만강 일대를 우리 강토로 회복한 이후부터이며 그 시기는 대략 1500년대 초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00道」라고 할 때의 ‘도(道)’는 “00방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서 원래는 조선시대 역을 관장하는 찰방의 관직 앞에 붙어있었던 명칭과 비슷한데, 조선시대의 광역지방명칭으로 이런 체제를 따르게 된 것 같다. 가. 경기도(京畿道) : ‘경기’란 ‘서울을 둘러싼 그 문지방’이라는 뜻이다. 곧 도읍지의 주변지역을 말한다. ‘경기’라는 이름은 1018년(고려 현종 ..

양평군 용문면의 마을 유례

■ 양평군 용문면의 마을 유례 ●상금곡리 ◈금당실 ◇금당곡 (金塘谷) 혹은 금곡(金谷)이라고도 한다. 甘泉 문씨가 이곳을 개척하였다 하는데 그의 사위인 朴從鱗과 邊應寧이 정착하여 지형을 피니 蓮花浮水形이라 하여 연못을 상징해서 金塘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름난 풍수 南師古가 말하기를 이 마을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음이 아쉽다고 하여 그 뒤부터 "금당맛질 반서울"이란 말이 생겼다고 하나 또한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곳 중의 하나로 정감록에는 "금당실은 우리나라 十勝之地의 하나로 兵火가 들지 못한다"고 해 임진왜란 때 온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용문면의 요지가 돼 면사무소와 파출소, 우체국, 초.중학교, 농협 등 기관들이 터를 잡고 있다. 용문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