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리지(地理志) 37

대구부수성비(大邱府修城碑)

■ 대구부 수성비(大邱府修城碑) [지정종목] 시도형문화재 [지정번호] 대구유형문화재 제5호 [지정번호] 1979년 1월 25일 [소재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산 83-5 [시대] 조선 [종류 및 분류] 석비 [크기] 높이 191Cm, 폭 73Cm, 두께 45Cm ↑대구부수성비(大邱府修城碑) 1979년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비신(碑身)은 청색 화강암으로 높이 191㎝, 폭 73㎝, 두께 45㎝이다. 비석덮개는 황백색 화강암인데 팔작지붕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비석 받침은 황백색 화강암으로 직사각형이다. 이 비는 1869년(고종 6) 8월에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 도호부사로 부임한 김세호(金世鎬)가 영남 감영의 성을 수축한 뒤 수성(修城)의 사적(事蹟)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수성..

경주 동천동을 찾아서

경주신문 뉴스특집 마을을 찾아서 동천동(東川洞) 2008년 05월 30일(금) 18:29 [(주)경주신문사] 신라건국과 시조왕 박혁거세 추대의 산실 왕이 먹은 샘 ‘동천(東泉)’ → ‘동천(東川)’ 동천동은 신라의 북악으로 불리는 금강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신라건국과 박혁거세의 추대를 위해 여섯마을촌장(六村長)이 모였던 알천거랑(지금의 북천) 가가 바로 이곳이요. 신라 법흥왕 때 불교공인의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성사의 순교 때 잘린 머리가 날아가 떨어졌던 금강산과 그곳에 이차돈을 추모해 지었다는 자추사(지금의 백율사)도 이곳에 있다. 신라건국과 시조왕 박혁거세를 탄생시켰던 유서 깊은 땅이요. 불교의 공인과 번성을 이끌었던 성스러운 땅이기도 하다. 지금은 택지개발과 경주시청이전 등으로 급속히 도시화가 ..

고령군(高靈郡)

■고령군(高靈郡)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郡)으로. 동쪽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서쪽과 남쪽은 경상남도 합천군, 북쪽은 성주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10′∼128°29′, 북위 35°37′∼35°51′에 위치하며, 면적 383.97㎢, 인구 34,522 명(2004 12월말년)이다. 1개 읍 7개 면 96개 리(里)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717-703)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왕릉로 55 (지산리 190번지)이다. 고령군(자연환경) 소백산맥의 일맥인 가야산이 군의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나와 문수산(文壽山, 484m)· 미숭산(美崇山, 734m) 등의 산지를 이루고, 그 곁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뻗어 있는 귀산(耳山, 311m)이 있으며 고령읍의 주산(主山)을 이룬다. 그리고 가야산..

조선시대 군기시(무기의 제조 보관) 유적 발견

■ 조선시대 무기제조-보관시설인 군기시(軍器寺) 유적 발견 2009년 11월 30일 서울 시내 한복판인 서울 시청 신축청사 공사장에서 조선시대 군기시(軍器寺) 터의 일부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굴되었군요. 동래성 해자 발굴에 이어 2년만에 조선시대 군사사 관련 유적 중 특A급 유적이 발굴된 셈입니다. ◇밑그림 저작권자-지적도/문화재청/한강문화재연구원 ◇점선 표시-번동아제 ◆ 청색-서울시청 건물지 ◆ 붉은색-1912년 지적도상 국유지(추청 군기시 터) ◆ 노란색-이번 발굴지역 1) 군기시 유적 위치에 대한 검토 군기시(軍器寺)는 조선시대에 무기를 제조하고 보관하던 관서입니다. 활이나 칼 같은 냉병기부터 화약무기, 갑옷 제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무기류를 제조했던 곳이 바로 군기시입니다. 조선시대 각종 기록을..

고령군 쌍림면 합가2리 마을유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2리(慶尙北道 高靈郡 雙林面 合伽二里) 마을유례. 행정명인 고령군 쌍림면 합가2리는 웃 개애실, 또는 안 개애실(內伽谷), 또는 상가곡(上伽谷)이라고도 부르는데 경상남도 합천으로 넘어가는 지릿재 바로 아랫마을을 말한다. 개애실(가가곡 : 佳呵谷)이란 유례는 조선 중엽 김송암(金松岩)이란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개애실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웃개애실, 또는 상가곡, 개애실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안개실이라 불리워 졌다 한다. 그러나 필자가 어린 시절 상마에서 고려시대의 기와 파편을 목격한 것으로 봐서는 오랜 옛날 이곳에 큰 절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고증할 길은 없다. 아마 절가(伽) 자(字)의 사용도 그래서 유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선인부사 도강형(仙人浮莎渡江形)

■ 동양의 제2혈지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3리) 407-5의 일용골 뒷산을 말하는 곳인데, 천내강을 굽어보고 있는 자리다. 이곳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구릉으로서, 산의 정상 높이가 해발 약 150m 정도 밖에 안된다. 이곳 입지는 용화리에서 흘러내려 오던 물줄기가 이곳 일용골 구릉을 S자 형태로 휘어돌아 충북 영동군 양산면 쪽으로 빠져 나가고, 북서쪽으로는 금산읍에서 흘러나오는 봉황천이 천내강과 합류하는 곳이다. 그리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5호로 지정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12기가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고인돌을 팔선바위라 하여 신성시 하고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은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莎渡江形)으로 동양(東洋)의 두번째 가는 혈지(穴地)로 유명해서, 풍수가들의 발걸음이 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