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리지(地理志) 37

함양 서상 마을 유례

■추하(楸下. 楸川, 가르네) 깃대 봉에서 뻗어 내려 도내까지 흐르는 계곡이 추천인데, 가르내라 하여 이 마을 이름도 옛날에는 가르내라 하였다. 가르내의 윗마을을 추상이라 하고, 서쪽은 옥산, 남쪽은 봉정, 동쪽은 구평이고,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추상, 추하로 부르게 되었다. 두 마을이 가르내를 끼고 아래위에 나란히 있다. 북쪽으로는 금선(琴仙)들과 흙두드기들이 펼쳐져있고, 서남쪽으로는 소말 들이 널따랗게 뻗어내려 있다. 사방에 넓은 들을 끼고 들 가운데 시내를 따라 아담하게 자리잡은 곳으로 농경지가 많아 옛날부터 가르내는 살기 좋은 마을이다. 마을이 생긴 것은 갈뫼 마을 대로마을 등과 더불어 거의 같은 시대에 생겨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나, 그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고 따라서 마을을 개척한..

서울 서초구 관할 지명유례

서울 서초구 관할 지명유례 [서초동] 서초동은 옛날 이곳에 서리풀이 무성하여 붙여진 동명으로 일명 상초 리, 서리풀이라고도 칭하였다. 원래 이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서초리에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구역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당산마을 당산마을은 당골 마을과 마산마을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으로 당 꿀로도 불린다. 현재 남부터미널이 있는 남쪽 남부순환도로변에 10여 호의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옛날산제를 지냈던 당이 있었다. ●사도 감 마을 이 마을은 현재 영동중학교 일대를 말하는데 옛날 사또가 머물렀기 때문에 사도감이라고 불렸다. 이와 연관되어 양재역 부근에 사도감고개가 있었고 그밖에도 사도..

경상도(慶尙道)의 옛 지명

경상도(慶尙道)의 옛 지명 (1) 문경(聞慶) : 관문(冠文) 관산(冠山) 문희(聞喜) 호계(虎溪) 가은(加恩) 벌천(伐川) 병곡(柄谷) 견천(絹川) 고 곡(高谷) 마량(馬梁) 잉을항(仍乙項) (2) 풍기(豊基) : 기주(基州) 기목(基沐) 영정(永定) 안정(安定) 은풍(殷豊) (3) 함창(咸昌) : 고녕(古寧) 위녕(威寧) 고릉(古陵) 덕봉(德峯) 이안(利安) (4) 용궁(龍宮) : 축산(竺山) 원산(園山) 용주(龍州) 무송(茂松) 양정(陽井) 풍양(豊壤) 하남(河南) 평구(平坵) 곡 계(曲溪) (5) 순흥(順興) : 급대산(及代山) 급산(岌山) 흥주(興州) 순정(順政) 흥녕(興寧) (6) 영천(榮川) : 내녕(奈寧) 강주(剛州) 순안(順安) 영주(榮州) 구성(龜城) (7) 상주(尙州) : 상주(上州)..

백두산

■ 백두산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白頭山) 이라는 이름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 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 '흰 머리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 백두산을 장백산신으로 봉한 이후에 '장백산(長白山, 창바이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산의 고도(높이)는 2,750m(북측 측량)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전체 면적중 1/3은 중국의 영토에,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한다. 그리고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상징으로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식물원처럼 다양한 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두산에 오를려면, 제1코스는 안도현의 이도백하(북쪽 기슭)등산로이다. 이곳을 경유하면서 관광객들은 먼저 백두산에 관한 기초지식을 습득한 후 산..

서울문화유산 송파지역 탐방

나홀로 서울 문화유산 송파지역 탐방 일시 : 2011.11.06(일), 12:00 ~ 17:00 ↑삼전도비(사적 제101호)를 원래의 위치를 고증해서 작년에 이곳 석촌 호수로 옮기고 보호각도 설치했다. ↑석촌호수 전경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출입문이 사방에 먼들어저 있어서 출입이 편리하다. ↑명칭이「석총동 백제 초기 적석총」에서『서울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로 변경(2011. 07)되었습니다. ↑석촌동 고분들은 백제 초기에 만들어진 무덤으로서 일제 때 처음 조사되었다고 한다. ↑석촌동 제3호 고분은 기원전·후부터 나타나는 고구려 무덤 형식의 기단식 돌무지 무덤(기단식 적석총)이다. ↑방이동 고분군 중, 유일하게 묘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고분은 보수를 하는지 사방을 천막으로 가리워저 있다..

경인 아라 뱃길

■ 경인 아라 뱃길 ↑인천 경인항 상공에서 내려다 본 경인 아라 뱃길. [연합뉴스] 2011년 10월 19일 오전 아라는 순우리말로 바다의 옛말이다. 배가 다닐 주운수로(舟運路)가 김포 방향으로 뻗어 있다. 인천시 서구 오류동의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앞바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영종대교에서 인천북항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대형 준설선과 바지선들이 굉음을 울리며 준설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물이 빠져나가는 썰물 때에도 배가 서해 먼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인천·김포터미널을 통합 운영하는 경인항 운영센터 옥상에 올랐다. 동쪽으로는 아라뱃길의 주운(舟運)수로가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수자원공사 경인항건설단의 노희수 부장은 “구조물 공사는 거의 마..

오부방리(五部坊里)

■ 오부(五部) 고구려(高句麗), 고려(高麗), 조선(朝鮮) 때 수도(首都)를 전(前), 후(後), 좌(左), 우(右), 중(中) 따위로 나눈 다 섯 개의 행정(行政) 구역(區域)를 말함 1.고구려를 형성한 다섯 집단.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2.고구려 때, 수도(首都)를 다섯 부로 나눈 행정 구역을 말하는 것으로 다섯의 부족 사회가 변화한 것으로 계루부를 내부(內部) 또는 황부(黃部), 소노부를 서부(西部) 또는 우부(右部), 절노부를 북부(北部) 또는 후부(後部), 순노 부를 동부(東部) 또는 좌부(左部), 관노부를 남부(南部) 또는 전부(前部)라 하였음. 3.백제는 수도를 다섯부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상부(上部). 전부(前部). 중부(中部). 하부(下部). 후부(後部..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合佳里(Hapga-ri)

■ 합가리(合佳里, Hapga-ri) (상가곡 또는 안개실, 웃개실) 산골짜기에 위치한 농촌이다. 자연마을로는 상가곡, 하가곡, 용당골, 도르뱅이가 있다. 상가곡은 경상남도 합천으로 넘어가는 지릿재 바로 아래 있는 마을로 개애실 마을의 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하가곡은 개애실 마을 아래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용당골은 국도변 남쪽의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서 용이 솟아 승천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마을에는 아직도 용이 승천한 웅덩이에 물이 고여있다. 도르뱅이는 중간 국도변을 따라 돌아가는 길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돌아 들어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에는 서너채의 주막과 농가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이주하였다. 이재훈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

■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 대구광역시 만촌동 영남 제일 관문 앞에 있는 조선시대의 영영축성비(대구광역시 기념물 제4호)는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민응수(閔應洙)가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대구읍성을 쌓은 뒤, 그 규모와 공사과정을 기록하여 1737년(영조 13) 2월에 세운 것이다. 비문에 따르면, 공사기간은 1736년 1월부터 시작하여 6개월 정도 걸렸으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이른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총 2,124보(步) 성 위에서 몸을 숨기고 적에게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한 담인 여첩(女堞)이 819첩, 성 높이는 서남이 18척, 남북이 17척, 뒤 축대의 넓이가 7보, 높이가 3급(級)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구읍성은 원래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이 때 비로소 돌로 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