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신라사(新羅史) 34

김일제(金日磾)의 후손 알지(閼智) 탄생

김일제(金日磾, 기원전 134년~기원전 86년 음력 8월) 김일제의 후손 알지(閼智)의 탄생 [고대사]2014.08.13. 10:08 永平三年庚申[一云 中元六年 誤矣 中元盡二年而已] 八月四日 瓠公夜行月城西里 見大光明於始林中[一作鳩林] 有紫雲從天垂地 雲中有黃金櫃 掛於樹枝 光自櫃出 亦有白鷄鳴於樹下 以狀聞於王 駕幸其林 開櫃有童男 臥而卽起 如赫居世之故事故 因其言 以閼智名之 閼智卽鄕言小兒之稱也 抱載還闕 鳥獸相隨 喜躍蹌蹌 王擇吉日 冊位立太子 後讓故於婆娑 不卽王位 因金櫃而出 乃姓金氏 閼智生熱漢 漢生阿都 都生首留 留生郁部 部生俱道[一作仇刀] 道生未鄒 鄒卽王位 新羅金氏自閼智始 영평(永平) 3년 경신(서기 60년) [혹자는 중원(中元) 6년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중원은 모두 2년뿐이다.] 8월 4일 밤에, 호공(瓠..

화랑세기(花郞世記) - 또 하나의 신라

■ 화랑세기(花郞世記)-또 하나의 신라 한국 고대사의 뜨거운 감자, 화랑세기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 1989년, 역사에서 종적을 감췄던 한 권의 책이 홀연히 등장했다. 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또한 라는 제목으로 부산의 국제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전국적인 특종을 날린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수 회에 걸쳐 그 책을 번역하여 소개를 했는데 당시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전국의 사학계가 발칵 뒤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리고 뒤이어 1995년에 보다 자세한 필사본이 등장하여 세상을 또 한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로 김대문이 썼다는 화랑세기의 필사본이었다. 가 등장하자 마자 기존의 고대사학계는 즉시 그 책이 위작이라고 발표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학계..

사로6촌(斯盧六村)

■ 사로6촌(斯盧六村) 구 분 (區分) 알천양산촌 (閼川楊山村)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 자산진지촌 (觜山珍支村) 무산대수촌 (茂山大樹村)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 (明活山高耶村) 6부명 (6部名) 급량부 及梁部 사량부 沙梁部 본피부 本彼部 점량부 漸梁部 한지부 漢祗部 습비부 習比部 촌장 (村長) 알평 謁平 소벌도리 蘇伐都利 지백호 智伯虎 구례마 俱禮馬 지타 祗陀 호진 虎珍 강림지 (降臨地) 표암봉 瓢巖峰 형산 兄山 화산 花山 이산 伊山 명활산 明活山 금강산 金剛山 후손성씨 (後孫姓氏) 이씨 李氏 최씨· 소씨 崔氏 ·蘇氏 정씨 鄭氏 손씨 孫氏 배씨 裵氏 설씨 薛氏

첨성대의 구조와 내부 모습.

첨성대는 상하 2단의 정(井)자형 구조 ① 각단이 각각 306×32×32cm의 크기의 장대석 4개씩으로 정자형으로 이뤄졌다. ② 정자석 내부는 220×220×64cm의 공간을 이루고 하부는 목판을 깔았던 것으로 생각되며 그 서반 부는 개폐 가 가능 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부구조의 모습은 어떠할까? 위의 구조도에서 1번 부분, 밖에서 사다리로 오르면 출입구 부분이다 출입문(12단)까지는 자갈과 흙으로 채워져 있으며 윗부분은 자갈로 덮혀 있는 모습이다. ↑다음은 3번 부분, 즉 원주부분의 내벽 모습이다.다듬어져 있지 않다고 알려져 왔으나 크기가 일정하고 거친 면이 적은 것을 보아 약간은 다듬었음을 알수 있다. ↑쌓은 돌 틈 사이로 쐐기처럼 박은 작은 자갈들도 많이 보인다. ↑첨성대 내부에서 하늘쪽을 향해 쳐..

신라의 골품제

■ 신라 골품제와 관등 ◇성골(聖骨)-왕족-부 모 모두 왕족으로 왕이 될 자격으로 최고 신분. 진덕여왕으로 끝남. ◇골(眞骨)-부모 중에 한쪽만 왕족, 무열왕부터 경순왕 까지, 1~5관등 복색(服色)은 자색(紫色). ◇육두품(六頭品)-17관등에서 6~9관등 아찬(阿湌)까지만 임명된다, 복색은 비색(翡色-다홍). ◇오두품(五頭品)-17관등에서 10~11관등 대나마(大奈麻)까지만 임명된다, 복색은 청색(靑色). ◇사두품(四頭品)-17관등에서 12~17관등 대사(大舍)까지만 임명된다. 복색은 황색(黃色). ※17관등은 3대 유리왕(儒理王)이 관을 설치하고 17관등을 두었다. 1.이벌찬(伊伐湌) 2.이척찬(伊尺湌), 3.잡찬(迊湌), 4.파진찬(波珍湌), 5.대아찬(大阿湌) 6.아찬(阿湌), 7.일길찬(一吉湌)..

중국 지안 고구려비로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 지안 고구려비로 동북공정 ※동북공정이란? 중국은 현재 중국의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또한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동북공정에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고조선·고구려·발해 모두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고구려이다. 이 연구를 통해 중국은 고구려를 고대중국의 지방민족정권으로 주장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1983년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역사지리연구중심이 설립된 이후 1998년 중국 지린성 퉁화사범대학 고구려연구소가 '고구려 학술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2004년 동북공정 사무처가 인터넷에 연구내용을 공개하면서 한국-중국간 외교문제로 비화되었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

금관의 장식품은 무엇을 뜻할까?

금관의 장식품은 무엇을 뜻할까? 금관을 비롯한 황금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곳은 신라 1000년 역사 중에서도 김알지의 후예들인 김씨 마립간들이 통치하던 5~6세기의 적석목곽분이다. 형태는 크게 외관과 내관으로 구분하는데, 외관은 신비로울만치 화려하다. 한자 ‘산’(山)자(‘出’자라고도 함) 3~4개를 위에서 아래로 붙여놓고(세움장식) 그 좌우에 사슴뿔 모양의 장식가지를 세워 ‘산’자와 함께 금관의 골격을 이룬다. 거기에 곡옥(곱은옥)이나 영락(瓔珞, 달개장식), 새의 날개 같은 장식이 달려 있어 생동감이 넘친다. 이러한 형태의 관을 수지녹각형관(樹枝角形冠)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주변 지역에서는 유사품을 찾아볼 수 없다. 금관의 무게를 따져보면 1Kg이 넘는다. 평상시에 이런 금관을 쓰고 다닐 수 있었..

당간 지주(幢竿支柱)

■ 당간 지주(幢竿支柱) 옛날 사찰에서 법회 따위의의식이있을때 쓰는 기(旗)를달아세우는장대인당간(幢竿)을지탱하기위하여세운두개의기둥을 말한다. 사찰의 주요 석조물의 하나인 당간지주는 고려시대까지 성행한 후에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불교가 위축되면서 새롭게 건립되지 않았던 이유 등으로 학문적 관심을 많이 끌지 못 했으며 또 불상이나 불탑과 같이 주요한 예배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사찰에는 당간과 당간지주가 크게 성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당간지주의 성행은 한국 고대 불교문화만이 갖는 독특한 전통과 사상적인 배경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지주는 삼국통일 이후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을 중심으로 건립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

'신라왕릉 연구' 발간-이근직 교수

이근직 교수 유저 '신라왕릉 연구' 발간 "신라왕릉 중 진짜는 7기뿐..김유신묘는 경덕왕릉“ [연합뉴스]김태식 l 2012/02/20 14:31:59 [taeshik@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현재의 김유신묘는 제35대 경덕왕릉이며, 서악고분군 앞쪽 김인문묘야말로 실제의 김유신묘다.""오릉(五陵)은 박혁거세 무덤이 아니라 실은 5세기 이후의 적석목곽분이며 제4대 탈해왕릉·제6대 지마왕릉·제8대 아달라왕릉은 통일신라시대 횡혈식석실분이고, 제13대 미추왕릉은 5세기 이후의 적석목곽분, 제17대 나물왕릉은 7세기 무렵 횡혈식석실분이며 이들은 왕릉이 아니다."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담은 신라왕릉 연구서가 출간됐다. 생전에 학술강연회 등을 통해 이런 주장을 펼쳤다가 신라왕성 후손 문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