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신라사(新羅史)

화랑세기(花郞世記) - 또 하나의 신라

야촌(1) 2017. 5. 1. 22:06

 ■ 화랑세기(花郞世記)-또 하나의 신라
                             

    한국 고대사의 뜨거운 감자, 화랑세기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

 

1989년, 역사에서 종적을 감췄던 한 권의 책이 홀연히 등장했다.

<화랑세기 필사본 발견>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또한 

<기존의 신라사를 다시 써야 할 획기적 사료>라는 제목으로 부산의 국제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전국적인 특종을 날린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수 회에 걸쳐 그 책을 번역하여 소개를 했는데 당시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전국의 사학계가 발칵 뒤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리고 뒤이어 1995년에 보다 자세한 필사본이 등장하여 세상을 또 한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로 김대문이 썼다는 화랑세기의 필사본이었다.

 

<화랑세기>가 등장하자 마자 기존의 고대사학계는 즉시 그 책이 위작이라고 발표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학계에서 이 책의 진위논란은 여전히 끝이 나지 않고 있다.

 

●도대체 화랑세기가 무엇이 길래 지금까지도 이토록 논란이 분분할까?

 

화랑세기는 신라시대때 살았던 화랑들 15명의 족보와 일상생활이 적혀있는 책이며, 그동안 역사에서 그 존재만 알려져 왔지 실체는 없던 책이었다. 저자는 신라시대 사람인 김대문이며 삼국사기 46권에도 그가 화랑세기를 저술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지금까지 책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그러면 이 화랑세기의 필사본이 등장하자 마자 고대사학자들이 위작(僞作)으로 몰아 붙이는 근거는 무엇일까?

위작론의 대표주자가 서울대의 노태돈(盧泰敦,1949년, 경남 창녕 출생) 교수다.

 

<위작론의 근거>
 그들의 주장은 미실이 지었다는 향가가 바로 박창화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이 하나이고, 또한 부하의 임신한 아내와 정을 통하는 마복자 풍습은 가족이라는 기본단위의 근간을 흔드는 풍습이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노태돈 교수 또한 인명표기에 문제가 있다는 설과 신라시대에 쓰이지 않은 용어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도 위작설의 근거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이외에도 몇 개가 더 있는 모양이나 대충 이 정도에서 소개를 그친다.

 

하지만 진서(眞書)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대표적으로 서강대 총장이신 이종욱(李鍾旭,11946년생 파주 출신) 교수가 있다」.

 

<진서론의 근거>
 화랑세기 필사본이 진서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194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향가(鄕歌)가 해독이 된 마당에 박창화가 1930년도에 향가를 지었다는 것은 말이 안되며, 또한 유교적인 관습에 익숙한 우리의 관점에서 마복자(摩腹子) 풍습을 못받아 들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포석정(鮑石亭)에 대해서도 우리는 임금이 신하들과 술잔을 띄우며 놀던 곳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화랑세기에는 사당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 그 부근에서 제사에 쓰이는 제기들이 발견됨으로써 화랑세기의 진서론에 큰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이 외에도 몇 개 더 있다.

 

이 책을 필사했다고 하는 남당(南堂) 박창화(朴昌和.1889 ~ 1962)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우리나라의 고대관련 서적들을 몰래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일본의 왕실도서관에서 10여년 정도를 근무했다고 알려진 재일 한국인이다. 그가 근무 중 진본에서 몰래 베껴 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진서론이 또 하나의 힘을 얻는 이유다.

 

그 밖에도 진서론(眞書論)에 힘을 실어주는 여러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등장보다도 뒤늦게 발굴된 금석문의 글들에서 화랑세기에 적혀있는 화랑과 비슷한 이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월성 부근을 발굴하다가 해자를 새롭게 발견하였는데 화랑세기에 보면 어느 화랑이 여자와 함께 성의 담을 넘어서 도망치다가 <구지>에 빠졌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또한 화랑세기에 나오는 관직명에 틀린 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강력한 증거이며, 포석정(鮑石亭)이 사당(祠堂)이었음을 설명하는 책도 화랑세기 밖에 없다(1999년 포석정 부근의 유적발굴에서 사당임을 증명하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이 밖에도 몇 개가 더 있지만 생략.

 

어쨌거나 화랑세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진짜임을 시사하는 새로운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화랑세기가 위서(魏書)라고 주장하는 기성 사학자들의 입을 확실히 닫게 하기 위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향후 새롭게 발굴되는 유적들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필사본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한 회의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화랑세기 필사본 발견 이후의 역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문제는(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화랑세기가 진본일 경우,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온 신라사가 거의 엉터리라고 말해도 반박을 못할 만큼 가히 메가톤급의 경악할만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간 동성애가 이미 신라시대에 유행했고, 한 사람에 대한 두 개의 이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있던 용수(龍樹)와 용춘(龍春)이 사실은 두 사람이며, 일부일처제가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았다는 것과 진평왕(眞平王, ? ~ 632년, 재위 579년~632년)의 경우 정실왕비가 두 명이었다는 것(후궁이 아니다) 등등...이 외에도 이 밑으로 백 줄은 빼곡히 써야 할 만큼 새로운 사실들이 무지하게 많다.

 

당연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의 신라사는 대대적인 수술을 아니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여져야 한다.

나는 사학자가 아니니 이쯤에서 화랑세기 필사본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독후감으로 넘어 가자.

 

김태식(연합뉴스 기자) 씨가 지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는 <화랑세기> 자체의 번역물이 아니라 <화랑세기>

가 왜 신라 사람 김대문(金大問)의 작품일 수밖에 없는지를 고고학, 민속학, 기타 여러 측면에서 검토하고 연구한 일종의 해설서이다.

 

실례로 한국사학계가 거의 신주단지 모시듯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의 비교는 물론이고, 현대에 들어와서 발굴된 유물 기타 최근까지 밝혀진 여러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비교하여 조목조목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책을 읽은 분은 알겠지만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은 저자가 이 책에서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자료와 사실들은 가히 경탄스러울 정도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나 저자는 이 책에서 화랑세기의 필사본에 대해 철저한 자료조사와 연구결과 진서임을 확신해 마지 않고 있다. 아니, 나아가 오히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왜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삼국유사(三國遺事)를 가짜라 하지 않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려의 눈으로 바라본 신라밖에 없다.
신라는 신라의 텍스트(Text =본문이나 원문)로 읽어야 한다.

 

나는 화랑세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독자이다.

세 가지는 이유를 댈 수 있다.

 

첫째, 위에서 열거한 증거들이 그 첫째이며,

둘째, 미실(美實)이 지었다는 향가(鄕歌)는 노태돈 교수의 주장처럼 결코 박창화(朴昌和)의 창작 물이 될 수 없다는 것(우리는 1940년대 들어서야 겨우 향가를 해독하는 수준에 머물렀는데 그보다 이른 시기에 어떻게 아마추어 한학자에 불과했던 박창화같은 사람이 향가를 해독도 아닌 창작을 할 수 있었겠느냐 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화랑세기가 진서임을 시사하는 간접적인 증거들이 여러 건 나왔지만 가짜임을 시사 하는 부정적인 증거들은 단 하나도 없다 라는 것이다. 있다면 마복자 같은 가족의 근간을 흔드는 풍습이 신라시대에 있었을 수가 없다는 주류 사학자들의 유교적,기독교적 닫힌 마인드뿐이다.

 

신라시대는 유교와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시대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종욱 교수의 말처럼 기성 사학자들은 그들만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 줄기차게 위서임을 주장하고 있다.

 

[굴뚝 토끼님 의견]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는 학계에서 일종의 보류 상태로 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현존하는 문헌이 원본이 아니라 필사본이고, 그나마 판본도 1종 뿐이라는 게 연구의 진전을 가로 막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원본이 일본에 있을 확율이 높지만, 일본이 공개해줄 리 만무하죠. 국내에서 원본이나 또다른 형태의 필사본이 나오지 않는 한, 결론이 나기 힘든 문제 같습니다.

 

 

[니자드님 의견]
저는 오히려 화랑세기가 충격적인 내용이기에 위서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보통 위서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최대한 덜 튀면서 자기를 위장하려고 하죠. 그런데 화랑세기는 종래의 상식을 다 깨드렸으니 말이죠^^

 

쟁쟁한 고대 사학자 한 명을 골라서 화랑세기 필사본같은 책을 한 권 창작해 보라고 하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것 같은가?. 

딴 건 다 무시하더라도 제대로 된 향가조차 하나 못 만들어 낼 것이다.

 

그 사람들이 아무리 떠들어 봐야 결국 내겐 기성 학자들의 기득권 주장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다.

신라는 고려인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신라시대의 사람이 쓴 신라의 기록으로 봐야 한다.

 

끝으로, 저자에게 고마운 것은 이렇게 딱딱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역사에 전혀 문외한인 일반인도 조금의 수고만 곁들인다면 독서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게끔 책이 쉽게 쓰여져 있다는 것이고 아쉬운 것은 현재 이 책이 품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다룬 다른 책들도 많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겐 특히 서강대 총장이신 이종욱 교수님이 쓰신 책을 권한다.

 

출처: http://moonlgt2.tistory.com/417 [소박한 독서가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