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제(金日磾, 기원전 134년~기원전 86년 음력 8월)
김일제의 후손 알지(閼智)의 탄생
[고대사]2014.08.13. 10:08
永平三年庚申[一云 中元六年 誤矣 中元盡二年而已]
八月四日 瓠公夜行月城西里 見大光明於始林中[一作鳩林]
有紫雲從天垂地 雲中有黃金櫃 掛於樹枝 光自櫃出 亦有白鷄鳴於樹下 以狀聞於王 駕幸其林 開櫃有童男 臥而卽起 如赫居世之故事故 因其言 以閼智名之 閼智卽鄕言小兒之稱也 抱載還闕 鳥獸相隨 喜躍蹌蹌
王擇吉日 冊位立太子 後讓故於婆娑 不卽王位 因金櫃而出 乃姓金氏 閼智生熱漢 漢生阿都 都生首留 留生郁部 部生俱道[一作仇刀] 道生未鄒 鄒卽王位 新羅金氏自閼智始
<삼국유사>
영평(永平) 3년 경신(서기 60년)
[혹자는 중원(中元) 6년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중원은 모두 2년뿐이다.]
8월 4일 밤에, 호공(瓠公)이 월성(月城) 서쪽 마을로 가다가, 시림(始林)[혹은 구림(鳩林)이라고도 한다.] 속에서 매우 커다란 빛을 보았다.
자주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속에는 황금 상자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그 빛은 바로 그 상자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흰 닭이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이를 왕에게 아뢰자 왕이 그 숲으로 가서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상자 안에는 남자 아이가 누워 있다가 곧바로 일어났으니 <혁거세赫居世>의 옛 일과 같았다.
그래서 <혁거세>가 자신을 알지(閼智)라고 한 일에 따라, 그 아이를 알지라고 이름 붙였다.
알지는 우리말로 어린 아이를 뜻한다.
왕이 그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왔는데,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오면서 기뻐 뛰어놀고 춤을 추었다.
왕이 길일을 택하여 태자로 삼았지만, 후에 파사(婆娑)에게 사양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 상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金氏)라고 하였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혹은 구도(仇刀)라고도 한다.]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올랐다.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삼국유사에서 영평3년(60년)에 <알지>가 태어났다는 것은 잘 못된 기록이다.
<알지閼智94-155>는<호공(瓠公)>과<월지(月知)>사이에서유리왕11년(94년)에 태어났다.
신화에서는 김알지의 금궤를 발견한 이를 <호공(瓠公)>이라 한다. 그 <호공>을 남당유고 <상장돈장>에서 김알지의 아버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상장돈장(上章敦牂)>에 의하면, 김알지의 아버지는 <호공(瓠公)>이고 어머니는 <월지(月知)>이다.
호공의 아버지는 <포공(匏公)>이고 호공의 어머니는 <표암(瓢岩)>이다.
<포공>은 투후 <김일제>의 후손이다.
<김일제>의 후손중 <알지>는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되고 <수로>는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된다.
김알지의 어머니 <월지>는 <일광(日光)>과 <월광(月光)>사이의 딸이다.
<일광>인 박혁거세에게는 <알영(閼英)>이라는 부인이 있었다.
<알영>의 후손들이 초기신라 잇금들의 대를 잇지만 미추왕 이후에는 <월광>의 후손인 김알지계가 대를 잇는다.
경주에는 경북기념물 54호로 지정된 <표암(瓢岩)>이라는 바위가 있다.
그리고 그 바위 밑에는 경주이씨(慶州李氏) 시조 <알평(謁平)>의 비각과 재실이 있다.
사로육촌(斯盧六村)의 하나인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이다.
김알지의 할머니가 <표암(瓢岩)>이고 표암의 또 다른 남편의 이름이 <알평(謁平)>이다.
<알평>의 손자가 <양산(楊山)>이고 <양산>의 손자가 <알천(閼川)>이다.
신라 6촌의 지명이 곧 인명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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