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신라사(新羅史) 34

용암이 뚫은 3km 터널속에 통일신라 유물이 가득

용암이 뚫은 3km터널속에 통일신라 유물이 가득 "2005년에 전신주 교체작업을 하기 위해 지반을 뚫다가 우연히 구멍이 뻥 뚫린 거죠. 직접 들어가 보니 길이가 3.4km나 되는 동굴이 나온 거고...4년마다 열리는 환경 올림픽이라는 세계자연보전총회(WCC) 개최 1년을 앞두고 제주를 방문한 지난 25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국내 취재진에 처음 공개됐다. 용암동굴인 용천동굴은 1200년 넘게 지하에 묻혀있다 6년전 한국전력 하청회사 직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가이드로 나선 전용문 박사(지질학자)는 "해당 전신주가 없었다면 세계 최고의 용암동굴은 아직도 8m 지하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 전신주를 '문화재급 전신주'라고 불렀다. 2차선 지방도의 한켠에 설치된 전신주를 따..

경주 표암 통일신라 암각화 발견

경주 표암 통일신라 암각화 발견 경주이씨(慶州李氏)의 근원지(根源地)이며 신라 민주정치제도인 화백제도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경주 표암에서 통일신라시대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마애암각화가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라의 화백회의가 열려 신라 건국이 의결된 역사적 장소인 경주시 동천동 표암(瓢巖)에서 명문과 불전, 삼층목탑, 당간, 불 번, 산문 등이 바위 표면에 새겨진 1,269년 전의 마애암각화가 발견됐다.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과장 박홍국)과 표암 화수회(재단 이사장 이상록)는 18일 "표암을 뒤덮고 있던 나무를 제거하던 중 지상에서 5m 높이에 있는 서향(西向) 바위에서 통일신라시대인 743년(경덕왕 2년)에 새겨진 마애 암각화를 최근 발견했다"며 "표암 마애암각화는 통일신라시대의..

장의사지 당간지주(통일신라시대)

↑서울 세검정초등학교 교정에 위치한 장의사지 당간지주 모습(보물 235호)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당간지주이다. ● 장의사지당간지주(莊義寺址幢竿支柱)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235호 ◇시재 : 통일신라시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검정로 9길 1(구 신영동 219-4) 이 지주(寺址)는 장의사(莊義寺)의 옛터에 동, 서로 마주 서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幢竿支柱)이다. 절이 있던곳으로 여겨지는 이 터에는 오늘날엔 세검정초등학교가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 깃발을 걸어 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동, 서로 마주서있는 기둥의 바깥 두 모서리에 약간의 장식이 있다. 지주의 안쪽 윗부분에 둥근 구멍을 뚫어 당간을끼..

이차돈의 목이 떨어진 곳에 자추사를 세우고

■ 이차돈의 목이 떨어진 곳에 자추사를 세우고 -소금강산 경주 벌판의 북쪽 얕으막한 산이 금강산(金剛山, 143m)이다. 남쪽에는 금오산(468m)과 고위산(494m)이 이어진 남산이 장엄하게 뻗어있고, 서쪽에는 선도산(380m)과 송화산(214m)이 솟아있다. 동쪽에는 명활산(245m)을 비롯하여 만호봉(505m), 토함산(745m)이 연이어 있다. 그러나 북쪽에는 형산강이 흘러가므로 산다운 산이 없고 모두가 나즈막 하니, 지세로 보아 가장 약하고 허(虛)한 편이다. 허약한 곳은 이름이라도 강하게 붙여야 다른 곳과 균형이 맞을 것 아닌가? 그래서 강한 이름! ‘금강(金剛)’인 것이다. 백두대간의 중허리에 자리잡은 강원도의 금강산이야 돌들이 뼈만 남은 것같이 단단하게 엉킨 모습이라 생김새 대로 표현하여 ..

선덕여왕의 "선덕(善德)"은 왕휘(王諱)인가 시호( 諡號)인가?

선덕여왕의 ‘善德’은 왕휘(王諱)인가 시호(諡號)인가? ↑대구 부인사 숭모전에 있는 선덕여왕의 영정이다. 1990년대 경북대 교수였던 유황 화백이 그린 작품이다.(조선일보 DB) 사전을 찾아보면 선덕여왕은 이름(諱)을 덕만(德曼), 시호를 선덕(善德)이라고 했다, 라고 되어있다. ‘선덕’은 과연 시호인가?. 일본학자 말송보화(末松保和)에 의하면 '선덕'은 시호가 아니라 생전의 왕명(王名)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 시호(諡號)는 지증왕때 부터 추증(追贈)하기 시작했다. 삼국사기는 지증왕 다음의 법흥왕, 진흥왕, 진평왕, 선덕여왕을 모두 시호라고 기술했다. 진흥왕의 이름은 삼맥종(三麥宗) , 시호를 진흥(眞興)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흥(眞興)은 시호가 아니다..

신라 건국의 비밀-나정 발굴

작성일 : 2010. 11. 30 신라 건국의 비밀. 나정 발굴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조금 떨어진 곳. 경주시 외곽에서 이루어진 한 발굴은 역사학계를 놀라게 했다. 신화로만 여겨왔던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탄생지 나정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정은 과연 베일에 가려진 신라 건국의 비밀을 풀어줄것인가? "안녕하십니까 HD 역사스페셜의 고두심입니다. 오늘은 신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신라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먼저 경주가 생각나구요, 불국사나 첨성대 같은 뛰어난 문화재가 떠오르는데요,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금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 놓여 있는 이것은 신라 금관입니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참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순금으로 만들어진 고대 금관은 전 세계 ..

신라가 처음으로 병부령(兵部令)을 두었다./서기 518년

■ 신라가 처음으로 병부령(兵部令)을 두었다. 정유년 신라 법흥왕 4년, 고구려 문자왕 26년, 백제 무령왕 17년(북위 효명제 희평 2, 517)/서기 518년 ------------------------------------------------------------------------------------------------------------------------- 하4월신라가 병부령(兵部令)을 두었다. [안]신라에는 처음 17위(位)가 있었으나, 관부(官府) 제도는 없었다. 처음에 태보(大輔)가 국정을 주관하였고, 그 뒤에 이벌찬(伊伐飡)ㆍ이찬(伊飡) 등의 벼슬로써 혹 국정에 참여케 하고, 병마(兵馬)의 일을 겸하게 하였다. 조분왕(助賁王) 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석우로(昔于老)를 대장군으로..

신라육부(六部)의 명칭을 고치고 성(姓)을 내렸다[賜姓].서기 32년

■ 육부(六部)의 명칭을 고치고 성(姓)을 내렸다[賜姓]. 임진년 신라 유리왕 9년, 고구려 대무신왕 15년, 백제 다루왕 5년(한 광무 건무 8, A.D. 32) ◈봄사로가 육부(六部)의 명칭을 고치고 성을 내렸다[賜姓]. ◇신라가 육부의 명칭을 모두 고쳤다. ◇양산부(楊山部)를 고쳐 급량(及梁)이라 하고 성(姓) 이(李)를 내렸으며, ◇고허부(高墟部)는 사량(沙梁)이라 하고 성은 최(崔), ◇대수부(大樹部)는 점량(漸梁) 일설에는 모량(牟梁) 이라 하고 성은 손(孫), ◇간진부(干珍部)는 본피(本彼)라 하고 성은 정(鄭), ◇가리부(加利部)는 한지(韓祗)라 하고 성은 배(裵), ◇명활부(明活部)는 습비(習比)라 하고 성은 설(薛)이라 하였다. 육부를 중분하여 둘로 만들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신라 계림의 한지부에서 한 번에 4남 1녀를 출산하다(서기 193년)

■ 계림의 한지부(漢祗部) 여자가 한 번에 4남 1녀를 낳았다. ◇계유년 신라 벌휴왕 10년, 고구려 고국천왕 15년, 백제 초고왕 28년(후한 헌재 초평 4, 193) ○춘정월 초하루(갑인)에 일식이 있었다. ○3월 계림의 한지부(漢祗部) 여자가 한 번에 4남 1녀를 낳았다. ○하6월 왜국(倭國)에 큰 흉년이 들었다. 신라로 얻어 먹으러 온 자가 1천여 명이었다. [자료문헌] ◇동사강목 제2상

신라의 건국(新羅의建國)

■ 갑자년 마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 원년 ○ 이해에 신국(新國)이 하나이다. ○ 신라는 처음에 사로(斯盧)라 칭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뒤에 정한 이름을 쓴다. [한 선제 오봉(五鳳) 원년, B.C. 57] 하4월 진한(辰韓)의 육부(六部)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군(君)으로 세우고 거서간(居西干)이라 칭하였으며, 국호를 사로라하였다. 이에 앞서 조선의 유민(遺民)들이 동해(東海)가 산골짜기에 나뉘어 살며 여섯 마을을 이루었는데, 알천양산(閼川楊山)ㆍ돌산고허(突山高墟)ㆍ자산진지(觜山珍支) 간진(干珍)이라고도 한다ㆍ무산대수(茂山大樹)ㆍ금산가리(金山加利)ㆍ명활산고야(明活山高耶)이며 이것이 이른바 진한의 육부이다. 육부의 기로(耆老)가 알천에 모여 다음과 같이 의논하였다. “우리의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