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족보관련문 71

팔고조도(八 高 祖圖)

■八高祖 關係 呼稱圖(팔 고조 관계 호칭도) 外外 曾外家 外外家 外曾外家 外家 陳外 曾外家 陳外家 曾外家 本家 外外曾外祖母 外外曾外高祖父 外外高祖母 外外高祖父 外曾外高祖母 外曾外高祖父 外高祖母 外高祖父 陳外曾外高祖母 陳外曾外高祖父 陳外高祖母 陳外高祖父 曾外高祖母 曾外高祖父 高祖母 高祖父 外外 曾祖母 外外 曾祖父 外曾祖母 外曾祖父 陳外 曾祖母 陳外 曾祖父 曾祖母 曾祖父 外祖母 外祖父 祖母 祖父 母 父 我 ■ 가족법에 따른 법률용어 ○直系家族(직계가족)-부모와 자녀 ○直系卑屬(직계비속)-자기로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혈족(자녀, 손, 증손) ○直系姻戚(직계인척)-배우자의 직계혈족,직계혈족의 배우자 ○直系尊屬(직계존속)-조상에서 자기에 이르는 혈족들(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直系親(직계친)-직계혈족..

성균생원(成均生員)이란?

■ 성균생원(成均生員)에 대하여 족보(族譜)나 비문(碑文)을 보면「성균생원(成均生員)」또는「성균진사(成均進士)」란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성균생원(成均生員)」이란 아마도 생원(生員)들 중에서 성균관(成均館)에 입학(入學)하여 수학(修學)한 경력(經歷)이 있는 사람들을 관습적으로 칭(稱)하는 말인 것 같다. 소과에 급제(及第)하여 진사(進士)나 생원(生員)이 되면 서울의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할 자격(資格)이 생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당, 향교, 서원 출신들도 많았기 때문에 이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한 생원들을 「성균생원」이라고 한 것 같다. 이러한 호칭은 족보나 비문과 같은 사적인 문헌에서 보이며, 실록이나 방목과 같은 공식적인 자료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즉「성균생원(成均生員..

선산(단천) 김씨와 족보에 관하여

삼척동자 님 에게! 얼마전 선조님들에대한 정보검색을 하다 귀하의글을 잃고 처음에는 남의 가문이나 선조에 대한 자기 생각과 주장이거니 하다. 한편 너무 일방적이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저의 사견의 글을 올림니다. 귀하의 조상에 대한 사랑은 이해하나 행동이 지나치고 민족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이나 세계관및 인류사회 공통의 인본주의나 ,휴머니즘에 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겄같읍니다. 자신의 선조에 관한 사랑은 그 사람의 근본이니 그것을 비난할 마음은 없읍니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귀하의 왜곡된 행동이 얼마나 귀하의삶에 도움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신분제 사회도 아니고, 일부 현대 과학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후진사회나 국가를 제외한 모든 세계의 국민이 평등한 자유와 신분을 같고..

연호(年號)

■우리나라 연호(年號) 1392(태조 원) ~ 1398(태조 7) : [명(明)] 홍무(洪武) 25년 1399(정종 원) ~1402(태종 2) : [명(明)] 건문(建文) 1403(태종 3) ~ 1424(세종 6) : [명(明)] 영락(永樂) 1425(세종 7) ~ [명(明)] 홍희(洪熙) 1426(세종 8) ~ 1435(세종 17) : [명(明)] 선덕(宣德) 1436(세종 18) ~1449(세종 31) : [명(明)] 정통(正統) 1450(세종 32) ~1456(세조 2) : [명(明)] 경태(景泰) 1457(세조 3) ~ 1464(세조 10) : [명(明)] 천순(天順) 1465(세조 11) ~1487(성종 18) : [명(明)] 성화(成化) 1488(성종 19) ~1505(연산군 11) : [명(..

조선시대 양반들의 족보

■ 조선시대 양반들의 족보 1. 조선 양반의 족보 고려시대에는 씨족(氏族) · 세계도(世系圖) · 가첩(家牒) 또는 족도(族圖)등 고문서(古文書) 형태의 족보(族譜)들이 있었다. 그러나 족보(族譜)가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은 조선시대였다. 원래 족보(族譜)는 고급 관리(官吏)의 내외자손들이 문음(門蔭)의 승계 또는 과거와 벼슬살이를 위해 자신의 가계(家系)와 신분을 증빙하는 근거로 이를 작성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가 점차 보편화되면서 족보(族譜)다운 족보(族譜)가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체계적인 족보(族譜)는 왕실(王室)에서 먼저 편찬하였는데, 태종(太宗) 임금 때 선원록(璿源錄)· 종친록(宗親錄)· 세종(世宗) 임금 때의 당대 선원록(當代璿源錄) 등이 그것이다. 민간에서는 성종(成宗) 7년(1476..

해주오씨족도 [海州吳氏族圖]

■ 해주오씨족도(海州吳氏族圖) ▲1401년(태종 1) 오선경(吳先敬)이 작성한 해주오씨의 족도. 크기는 가로 112cm×세로 115cm 이며, 장지(壯紙), 필사본이다. 현재 오광정(吳光廷)의 19세손 오경환(吳璟煥)씨가 소장하고 있다. 족도는 특별한 체제에 구애되지 않고 대수에 따라 종으로 후손들을 도식(圖式)한 족보의 초기 형태이다. 15세기 이전에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가계를 기록했으며, 15세기 중반 경에 보도(譜圖)를 기본으로 하여 자표(字標), 범례(凡例), 부록(附錄), 서발문(序跋文) 등이 추가되면서 정식의 족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족도의 체제는 표제(表題), 족도(族圖), 발문(跋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인 해주오씨족도는 원래의 명칭은 아니고 후대에 첨부된 것이며, 그 하단에는..

족보의 위조

백승종 서강대 교수. 사학 ● 족보를 공부합시다. 이 종표씨(이하 가명)는 제법 잘 나가는 건설회사 사장이다. 남도의 어느 시골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그는 일찌감치 혈혈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6·25전쟁이 훑고 지나간 폐허의 도시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그는 인고의 세월을 딛고 1970년대 중반에는 이미 국내 중소 건설업계에서 이름있는 인물로 성장했다. 그런 이사장에게 뜻밖의 고민이 생겼다. 87년 가을 그의 맏아들 승복의 혼사와 관련해 벌어진 일이다. 집안에 재력이 있는데다 미국 명문대 박사학위를 가진 장남의 배필감을 구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매쟁이를 놓아 최종으로 낙점된 후보는 국내 명문여대를 나온 김수선이라는 아가씨였다. 며느리감인 김수선은 충청도에서 대대로 세(勢)를 누려온 이..

조선시대 양반계급의 인구수

■조선시대 양반계급의 인구수 조선시대 양반계급의 인구 통계는 1910년의 전국 호구조사에서 확인이 되는데, 조선의 총 가구(家口) 수 289만 4,777호 가운데 양반이 5만 4,217호로 전 인구의 겨우 1.9%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 충청남도가 충남 전체 가구 수의 10.3%로 가장 양반이 많았고, 충북(4.5%), 경북(3.8%), 서울인 한성(2.1%) 그리고, 전북(1%) 순이었다. 여타 도는 모두 1% 미만이고 양반이 많았던 고을은 경북 경주군(2,599호), 충남 목천군, 경북 풍기군(지금의 영주), 충남 공주군 순이었다. 경상북도와 충청도, 한성(서울)에 양반들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전 인구의 5%를 넘지 못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나라 전 인구의 대부분은 중인, 상민(상놈)이나 천..

족보의 종류와 구분

■ 족보의 종류와 구분 1.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 아래에 각각 다른 계파와 본관을 가지고있는 씨족을 함께 수록하여 만든 족보책이다. 2.족보(族譜),종보(宗譜) 종보(宗譜) - 본관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를 수록한 족보책으로, 한 가문의 역사와 집안의 계통을 수록한 책이다. 3.세보(世譜),세지(世誌) 한 종파 또는 그 이상이 같이 수록되어 있거나, 한 종파만 수록된것을 말하며 동보(同譜), 합보(合譜)라고도 한다. 4.파보(派譜),지보(支譜) 시조로 부터 시작하여 한 종파만의 이름과 벼슬, 업적 등을 수록한 책이다. 이들 파보에는 그 권수가 많아 종보를 능가하는 것도 적지 않다. 파보는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증가되어가고, 그 표제에 연안김씨파보, 경주이씨 좌랑공파보, 순창설씨 함경파세보 등과 같..

족보에 얽힌 문중 이야기.

■족보에 얽힌 문중 이야기 남명 조식 종가, 絶孫으로 대 끊겨. 안동 임청각 이명 종가는 면면히 이어지며 옛 명성 그대로 일부 문중은 신분 상승에 이용하기 위해 족보 조작하기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척화(斥和)를 주장하며 항쟁했던 두 충신이 있었다.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선생이 그들이다. 이들 종가는 모두 후대에 이르러 종손이 나라의 죄를 입어 종 통(宗統) 계승에 일대 위기를 맞았다. 청음 종가는 현재 13대를 내려와 있는데 5번의 양자가 있었다. 청음의 7대 종손에 김건순(金建淳)이라는 이가 있었다. 이 사람은 6대 종손이 세상을 뜬 뒤 입후되었다. 이를 ‘계후사손(繼後嗣孫)’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사람이 사학(邪學, 天主學)의 죄를 입었다. 이 사건은 문중 뿐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