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141

약산복부(藥山覆瓿)-이계두(李啓斗)

↑약산복부(藥山覆瓿)>크기 : 가로 17cm × 세로 23.5cm ■ 이계두(李啓斗) 1819년(순조 19) ~? 본관은 경주(慶州), 백사 이항복의 8대손, 청풍부사(淸風府使) 이종엽(李宗燁)의 증손, 목사(牧使) 이경로(李敬魯)의 손자, 음관으로 관직은 경오년(庚午年) 12월에 광릉참봉(光陵參奉), 계유년(癸酉年)에 사용(司勇), 동년 12월에 묘부봉(廟副奉), 갑술년(甲戌年) 7월에 묘직(廟直), 병자년(丙子年) 1월에 활별시주(活別市主), 아들 이유훈(李裕薰), 이유근(李裕瑾), 이유선(李裕璇), 이유찬(李裕璨), 庶子 이유곤(李裕琨), 이유련(李裕璉)이 있다. 도승지를 지낸 창녕(昌寧). 조석원(曺錫元)의 처남이 되기도 하다. ●세계도(世界圖) 27世 이시술(李時術)-28世 구천공(龜川公) 세필..

도곡유고(陶谷遺稿)-이양원(李養源)의 시문집

↑춘전 이경휘(春田 李慶徽)의 玄孫으로,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역임 하였다.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李養源의 시문집 『도곡유고(陶谷遺稿)』 木活字本 4권 2책 完結本으로 詩 68수, 疏 8편, 收議 8편, 紀蹟 1편, 書 72편, 雜著 2편, 祭文 6편, 墓碣冥 4편, 行狀 1편, 附錄으로 墓碣銘 1편, 祭文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20×30.5cm이다. [참고 1] 李養源(1708∼1764)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도계(陶溪) 또는 도곡(陶谷). 아버지는 석조(錫祚)이고,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 득범(得範)의 딸이다. 公은 윤동원(尹東源)의 문인이다. 1738년(영조 14) 유일(遺逸 : 등용되지 않은 유능한 사람)로 천거되어 세마(洗..

榮江院誌(全) - 나주영강사(羅州榮江祠)

1947년 간행본 ■ 榮江院誌(全) 『영강원지』는 2권 1책 활자본으로 1947년에 간행되었다. 구성은 서(序), 본문, 발(跋) 순으로 되어 있다. 서는 이병수(李炳壽), 발은 이규봉(李圭逢), 이종석(李鍾奭)이 작성하였다. 서와 발에서는 배향인물의 배향 이유, 사우 건립에서 훼철까지의 과정, 사우지(祠宇誌) 간행의 필요성에 대해 기록하였다. 본문은 배향인물의 행적과 사우 훼철 내용을 기록하였다. 사우 연혁, 건물 규모, 면적, 용도를 알 수 있는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다. 권1의 사선생행적(四先生行蹟)에서는 배향인물의 충절과 도의를 지킨 행적을 기록하였다. 향사축문(享祀祝文)을 통해서는 배향인물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을 정리하였다. 권2의 집사록(執事錄)은 봉안 때 영강사(榮江祠) 임원의 직무를 기록하였..

方山集-이운정(李運楨) 著

1. 품명 : 방산집 6권3책(완) 2. 판본 : 소화11년(1936) 간행본 3. 크기 : 약 가로 19cm x 세로 30cm 4. 저자 : 이운정(李運楨/경주이씨 35世), 19世교감공(校勘公)후 23世 도원공(桃源公) 말동(末仝)의 후손.휘경 (彙慶)의 아들, 경주출신이다. 《방산집(方山集)》은 조선 말기의 학자 이운정(李運楨 ; 1819∼1893)의 시문집이다. 이운정의 자는 주언(周彦), 호는 방산(方山),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 책은 1936년 그의 재종손인 종현(鍾炫)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문집 가운데 서(書)는 학문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별지와 문목에서는 『중용』과 『근사록(近思錄)』 등 경전에 관한 질의응답과 상례(喪禮)와 혼례 등 예설에 관한 해설로..

도원선생문집(桃源先生文集) - 李末仝 著

[저자] 23世 이말동 李末仝 [판본] 목활자본 [책수] 2권 1책(全) [판식] 광곽크기(반곽기준) 15.2 센티 [행자수(반엽기준)] 10행 18자 [간행연도] 1924년 간행 /1999년 간행-景仁文化社 [기타] 內向2葉魚尾 [주기] 右桃源集詩什九什四附後人之文幷一篇也夫人之有文字猶天之有日星……尙可槩其性情之正學術之 正而亦可見其淸標實德交遊於大賢之世也……上章大淵獻(?) 鞠有華節仁州張錫英謹跋. ■ 도원선생문집(桃源先生文集) [생졸년] 1443년~1518년 1480년(성종 11) 司馬榜目 전체가 수록된 조선중기의 학자 이말동(李末仝/경주이씨 교감공 존사의 현손) 저(著) 목판본 1책 單券. 1443년(세종 25)∼1518년(중종 13). 조선 전기 유학자. 자는 자원(子源)이고, 호는 도원(桃源)이다. 본관은..

성서문집(城西文集) - 李尙彦(제정공후손)

필자소장본 성서문집(城西文集) ◈저자 : 28世 이상언(李尙彦) ◈간행연도 : 金晦鎭(1882~1965)이 跋文을 쓴 것이 1955년 정월이므로 이해에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 판 종 : 석인본 ◈ 크 기 : 20㎝(가로) x 30.5cm(세로) ◈ 권차 및 발행사항 : 6권 3책 ◈ 내용 6권 3책. 석인본. 10대손 운호(雲護)· 진호(進護)와 12대손 명직(明職) 등이 편집, 간행하였고, 간행연도는 미상이다. 권두에 정종호(鄭宗鎬)의 서문과 권말에 김회진(金晦鎭)·운호·진호의 발문이 있다. 필자 소장본이다. 권1∼3에 詩 340여수, 부(賦) 1편, 서(書) 5편, 잡저 3편, 권4에 정문(呈文) 3편, 상량문 1편, 축문 11편, 제문 14편, 묘갈명 1편, 권5에 행장 2편, 권6에 가장 2편..

동각잡기(東閣雜記)-이정형(李廷馨)

■동각잡기(東閣雜記) 조선 명종·선조 때의 문신 이정형(李廷馨)이 찬술한 야사 책으로 조선의 건국 배경부터 선조 때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내용] 2책. 필사본.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배경으로부터 선조 때까지 정치와 명신(名臣)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본조선원보록(本朝璿源寶錄)’이라고도 하며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조선의 건국 배경으로부터 중종 연간의 기묘사화까지, 하권은 중종 말년의 정치적 사건으로부터 선조 때의 임진왜란까지를 취급하고 있다. 현재 『대동야승』 제53·54권에 상·하 두 권이 모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그런데 『대동야승』 중에서도 야사로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동각잡기』라고 평가받고 있다. 필자는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어디까지나..

회와시고(晦窩詩稿)-이인엽(李寅燁)

■회와시고(晦窩詩稿) ■ 형태서지 ◈간종 : 사본(寫本) ◈간행년도 : 筆寫年未詳 ◈권책 : 不分卷 1책 ◈행자 : 10행 20자 ◈규격 : 25㎝ × 17.5㎝ ◈소장처 : 서울대학교규장각. 진천완위각 ◈총간집수 : 한국문집총간 172 ■ 저자 ◈성명 : 이인엽(李寅燁) ◈자 : 계장(季章), ◈호 : 회와(晦窩). ◈본관 : 경주(慶州) ■ 행력 왕력 서기 간지 연호 연령 기사 효종 7 1656 병신 順治 13 1 3월 1일, 태어나다. 현종 14 1673 계축 康熙 12 19 부친상을 당하다. 鎭川에 장사 지내다. 숙종 10 1684 갑자 康熙 23 30 사마시에 합격하다. ○ 先親을 淸安 茅山으로 移葬하다. 숙종 12 1686 병인 康熙 25 32 文科에 乙科로 급제하다. 숙종 14 1688 무진..

항은일고(巷隱逸稿)-이응협(李膺協) 著

■항은일고(巷隱逸稿) 항은일고(巷隱逸稿)는 1904년 木板本 4卷 2冊으로 간행된 이응협(李膺協) 선생의 시문집으로 권두에 甲辰(1904) 黃花節情友聞韶金道和書가 있다. 21.3×31.3cm 이다. 저자 이응협(李膺協)은 충무공 이수일의 조카인 간옹 이익 후손으로 1826년(순조 26) 9월 24일∼1894년(고종 31) 6월 21일. 조선 말기 유학자로. 자는 계약(啓若)이고, 호는 항은(巷隱),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안덕면(安德面) 사람이다. 본 항은일고는 1904년 아들 만영(晩榮)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이, 권말에 유정호(柳廷鎬)의 발문이 있다. 권1·2에 시 140수, 권2에 서(書) 18편, 권3에 서(書) 22편, 기(記) 2..

가전문방(家傳文榜) - 이정혐(李廷馦)

↑가전문방(家傳文榜)/크기> 31.0 cm × 19.5cm 1940년 경주이씨 집안의 과거방목을 필사한 [家傳文榜] 필사본 1책의 單책이고, 발(跋)은 石泉公十世孫 圭廈謹書(규하근서)이다. [저자소개] 이정혐(李廷馦) 1562년(명종 17)∼미상. 본관은 경주(慶州). 국당공후 문정공 휘 경중(敬中)의 후손으로 8정집의 일곱번째이다. 자는 사훈(士薰), 호는 석천(石泉)으로. 증조부는 이거(李筥)이고, 조부는 이달준(李達遵),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사직서령(行社稷署令) 이탕(李宕)이다. 1588년(선조 21)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3위로 합격하였고, 1594년(선조 27) 갑오(甲午) 별시(別試) 병과(丙科) 6위로 합격하였다. 벼슬은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