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보재이상설선생. 158

보재 이상설의 사상

보재 이상설의 사상 이재권/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교수[논문] Ⅰ. 시작하는 말 이상설(李相卨)은 이준열사와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세계각국의 외교관들에게 일본의 조선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고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호소했던 독립운동가의 한 분이다. 이것이 필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을 통해서 배운 이상설에 대한 상식적인 지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상은 잘 모른다. 그가 충북출신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필자도 이상설에 대하여 여기까지 알고 있었다. 논문을 쓰기위해 공부를 하면서 이상설이 대단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상설에 대한 연구는 인하대학교사학과 명예교수인 제천출신 윤병석의 업적이 전부인 것 같다. 즉 윤병석의 저서..

이상설(李相卨)의 과거시권(科擧試券 - 답안지)

■ 지어지선론(止於至善論) ※이 글은 이상설이 과거시험 볼 때, 작성한 답안지(科擧試券) 중 하나로 『대학(大學)』의 「지어지선(止於至 善)」에 대한 논(論)이다. 이상설은 25세 때인 1894년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인 갑오문과(甲午文科)에 병과(丙 科)로 급제하였다. 그의 과거시권으로는 현재 과 등 2매가 전한다. 李相卨 아래와 같이 논한다. “하늘이 물(物)에 명(命)하는 조건은 반드시 한 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 때문에 사람이 사물(事物)에 응하는 조건에도 역시 한 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 어떤 사물이 있고, 그 법칙이 없는 것은 있지않으며 어떤 사물이 없는데 그 법칙이 있는 것도 있지않다. 지금 귀(耳)의 법칙은 소리가 있으면 듣는 것이 그(최선에) 그치는 것이며,..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

1. 독일 제국과의 동맹 1915년 3월, 이상설은 상해 영국 조계내의 배달학원에서 박은식·신규식·조성환·유동열·이춘일 등 독립운동가 들과 회합했다. 이들은 이 모임에서 당시 유럽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독일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에 따른 광복운동의 방략을 논의했다. 그 결론은 국내와 국외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면서 독립전쟁을 주도할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을 조직하자는 것으로 모아졌다. 외교 분야를 담당키로 한 성낙형의 주장은 이러했다. "이번 전쟁에서는 독일이 승리할 것이고, 일제의 지나친 요구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인들도 독일과 결탁해서 일제와 결전할 것이고, 러시아와 영국과 미국도 합세하면 일본이 고립될 것이므로, 이를 독립회복의 적기로 삼아야 한다. 그리하여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외세를 이용하고,..

항일 독립운동의 아버지 이상설.

▲국립 서울현충원 무후선열재단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위쪽에 있는 무후선열재단은 이상설, 이위종열사, 홍범도장군, 유관순열사 등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으나 후손이 없거나 유해마저 찾을 길이 없는 순국선열 117위 및 정인보, 조소앙 등 6.25 당시 납북된 독립유공자 16위 등 총 133위의 순국열사의 위패를 봉안해두고 있다 이 재단은 1775년 8월 15일 광복 제3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후손이 없는 선열의 재단 건립위원회(대표 이은상) ’에서 묘소도 없고 후손도 끊어진 선열의 위폐를 안치하고자 국고보조를 받아서 건립하였다.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슬래브조 단층으로 가로 19.6m, 세로 4m, 높이 4.5m, 내부면적 85.14㎡이다 위패는 3층 계단에 모셔져있으며 중앙에는 선열을 추모하기 위한..

보재 이상설선생 관련 옛 신문기사 스크랩

■보재 이상설선생 관련 옛 신문기사 스크랩 《뉴스 라이브러리》 동아일보 1946년 10월 13일 기사(뉴스) 이상설선생사자 이정희씨 별세(李相卨先生嗣子 李庭熙氏別世) 헤아(海牙) 밀사로서 이준(李儁)씨와 함께 가서 활약한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씨의 아드님인 정희(庭熙) 48歲 씨는 숙환으로 서울대학 부속의원에 입원가료 중 지난 11일 오후 2시 별세하였다. 유족으로는 미망인과 재준(在濬). 재홍(在鴻). 재철(在哲). 삼형제가 있으며, 호상소는 서울대학 부속의원 영안소이며, 영결식은 13일 오전 11시 시내 정동 성공회(聖公會) 성당에서 거행 하리라 한다. ---------------------------------------------------------------------------------..

이상설(李相卨)의 생애와 활동사항

이상설(李相卨)의 생애와 활동사항 이범세(李範世)·여규형(呂圭亨)·이시영(李始榮)·이회영(李會榮) 등과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또 헐버트(Hulbert,H.B.)와도 친교를 맺어 영어·프랑스어 등을 익혔으며, 특히 수학·물리·화학·경제학·국제법 등을 공부하였다. 1894년(고종 31) 문과에 급제해 이이(李珥)를 조술(祖述: 스승의 도를 이어받아 서술하는 일)할 학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 뒤 비서감비서랑(祕書監祕書郎)에 임명되었다. 1896년 성균관교수 겸 관장·한성사범학교교관·탁지부재무관 등을 역임하고 궁내부특진관에 승진하였다. 1904년 6월 박승봉(朴勝鳳)과 연명으로 일본인의 전국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침략성과 부당성을 폭로하는 「일인요구전국황무지개척권불가소 日人要求全國荒蕪地開拓權不可疏」를 올..

헤이그 특사 이상설, 한국 수학 선구자

“헤이그 특사 이상설, 한국 수학 선구자” 13일 수학 올림픽 개막… ‘비운의 수학 천재’ 재조명 본격화 [서울신문]2014-08-13 16면 ㅣ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상설 선생은) 이승만과 김구도 통과하지 못한 조선의 마지막 대과(과거)를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 전통 한학자이면서 자연과학에 능통한 인재였어요. 조선의 미래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달렸다고 생각했죠. 물리, 화학, 생물로 이어지는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서양 수학을 먼저 배워야 한..

세상을 지배하는 열쇠, 수학

세상을 지배하는 열쇠, 수학 문화재청 2014-07-03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실력은 매우 높다고 인정 받고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수학실력과 관심은 매우 낮고, 그것은 입시를 떠난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렵고 불필요한 지식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수학은 문명세계의 기초이자 필수과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민족이 크게 융성했을때, 빛을 발했던 수학,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할지 사회문화적인 시각으로 살펴본다.` 수학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 중 하나로, 서양의 경우 산업혁명 시기에 크게 발전해 오늘날 과학 및 산업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도 역사 상 문화적인 전성기가 있었을 때 수학이 큰 역할을 수행했는데,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인 첨성대와..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

[정부]대한광복군정부 191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勸業會)를 이끈 이상설(李相卨)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망명정부. [구분] 망명정부 [설립연도] 1914년 [설립목적] 조국의 독립 쟁취 [소재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요활동] 독립전쟁 수행, 병사 훈련 1911년 항일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조직된 권업회는 이상설을 초대 의장으로 추대하고, 광복군 사관을 양성하기 위하여 1913년 사관학교 대전학교(大甸學校)를 설립·운영하였다. 또한, 러시아의 극동지역 총독과 교섭하여 광복군이 사용할 군영지를 조차하고, 광복군 병사의 양성을 위하여 양군호(養軍號)와 해도호(海島號)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그 결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전역에서 훈련받은 무장 병력 약 3만 명을 확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