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보재이상설선생. 158

이상설의 봉밀산(蜂蜜山) 독립기지 개척

이상설의 봉밀산(蜂蜜山, 펑미산) 기지 개척 독립운동기지의 이전 거주 전에 우수리강 및 흑룡강 양안 남북 일대로 옮길 것을 결정하고 중아(中俄)한 양국 정부에 양해와 지원을 얻어 교포들의 이주를 장려하여 일대 독립기지를 형성하여 놓았다. ....(중략).... 이리하여 항카호 연안의 이류가(伊柳街)와 그 대안 쾌상별백포자(快常別 白泡子)의 일대에 각각 수 백호를 이주시켰으며, 다시 흑룡강과 송화강이 합류되는 양강구(兩江口) 서북쪽 조운현(鳥雲縣) 전역에 亘(뻗칠 긍)하여 鳥拉까河를 중심으로 수백호를 정착시켜 개간케 하였으니....지리적 조건이 독립운동 기지로 적(適)한 곳이다. (姜相遠 「李溥齋先生略史草案」중에서) --------------------------------------------------..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1870년(고종 7년). 1월 27일(음력12월 7일) ~ 1917년. 3월. 2일(음력 2월 9일 금요일)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선생은 1870년 1월 27일(음력 12월 7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경주 이씨 이행우(李行雨) 선생과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7세때 이조(吏曹)와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낸 동부승지(同副承旨) 이용우(李龍雨)선생의 양자로 출계(出系)되어 서울로 상경한 그는 한학을 공부하는 한편, 독학으로 신학문을 깨우치는 등 두뇌가 명석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였다. 25세 때인 1894년에는 조선의 마지막 과거인 갑오문과에 급제하여 27세에 성균관 관장, 한성사범학교 교관 등을 역임하였다. 선생은 일제의 황무..

12월은 보재(溥齋) 이상설 선생 독립운동가의 달

12월은 보재 이상설 선생의 독립운동가 달입니다. 보재 이상설 선생의 공훈선양 학술 강연회를 아래와같이 개최 합니다. --------------------아 래-------------------------------------------------- 일 시 : 2005년.12월16일(금) 오후2시. 장 소 : 독립관 세미나실(독립공원) ◇지하철 3호선의 독립문 4번출구. 제1부 : 기념식 ◇개회 ◇국민의례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기념패 봉정(국가보훈처) ◇영구 보존용 태극기 증정 : 3.1운동 기념사업회 ◇인사말씀 : 이흥종 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장 ◇축 사 : 김국주 광복회장. ◇축 사 : 이재정 보재선생 기념사업회장. 제2부 : 강연회 ◇주 제 : 이상설의 독립운동(윤병석인하대명예교수) ◇추모가 합창..

이상설선생 선양강연회[을사오조약 규탄]

을사오조약을 규탄하는 이상설선생 선양강연회 2005-11-19 오전 22 : 55 ↑지난 11월18일 보재이상설선생선양강연회가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재정-사진) 주최로 250여명이 모인가운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성대히 열렸다. ↑이날 이재정기념사업회장은 개회인사를 통해 매국노 이완용 등, 을사5인을 앞세워 11월 18일 새벽에 고종황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약을 발표한지 100년이 되는 바로 오늘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릇된 을사5조약(乙巳五條約)을 끝까지 반대하다가 갖은 고초를 겪으며 12년의 해외광복운동으로 건강을 잃게 되어 연해주에서 48세의 젊은 나이에 서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보재 이상설선생의 애국정신이 뒤안길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체 오늘을 맞이하게 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며, 우리민..

우리역사 바로 알고 삽시다(9) - 서전서숙

우리역사 바로 알고 삽시다(9) 서전서숙(瑞甸書塾 - 현 중국 용정 실험소학교) ↑서전서숙 옛터에서 기자의 취재를 접수한 김재권선생 룡정(龍井)에 뿌리내린 반일교육의 불씨 일제의 문화침략을 반대하는 불길로 ■ 서전서숙옛터 룡정시실험소학교 운동장 동쪽구석에 두 아름되는 비술나무 한그루가 름름히 서있다. 비술나무에는 “서전서숙기념나무”라는 패쪽이 걸려있는데 패쪽에는 이런 패문이 씌여져있다. 반일민족지사 리상설(李相卨)은 조선족의 후대교육을 위하여 1906년에 자기 재산을 내놓아 이곳에 서전서숙을 세웠다. 서전서숙은 조선족의 재래의 구학서당 교육으로부터 신식학교교육에로 첫걸음을 떼였는바 반일민족교육의 선봉이였다. 조선족신학교의 시작과 함께 이곳에 뿌리내린 이 나무는 력사의 견증으로 리상설의 업적을 후세에 길이..

수학자 이상설은 어디에 - 박성래

[과학에세이] 수학자 이상설은 어디에 - 박성래 지난주에 중국 동북지역의 우리 역사 관련 유적답사를 다녀왔다. 내가 근무하는 사학과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이 답사 행사는 자연히 고구려 유적에서 시작하여 백두산 그리고 독립운동 유적으로 이어졌다. 심양~집안~환인~통화로 이어지는 고구려 유적들은 이미 대규모로 정비되어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지난 7월초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자랑스런 현수막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안박물관 같은 곳에는 입구 설명에 아예 고구려 문화가 중국 지방민족의 문화라면서 고구려를 중국 변방 역사의 일부로 밝히고 있었다.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을 비롯한 수많은 고구려 무덤들, 그리고 여러 고구려 때의 산성을 돌아보면서 이들 모두를 묶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