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보재이상설선생. 158

보재 이상설선생 관련 옛 신문기사 스크랩

《뉴스 라이브러리》 동아일보 1946년 10월 13일 기사(뉴스) 이상설선생사자 이정희씨 별세(李相卨先生嗣子 李庭熙氏別世) 헤아(海牙) 밀사로서 이준(李儁)씨와 함께 가서 활약한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씨의 아드님인 정희(庭熙) 48歲 씨는 숙환으로 서울대학 부속의원에 입원가료 중 지난 11일 오후 2시 별세하였다. 유족으로는 미망인과 재준(在濬). 재홍(在鴻). 재철(在哲). 삼형제가 있으며, 호상소는 서울대학 부속의원 영안소이며, 영결식은 13일 오전 11시 시내 정동 성공회(聖公會) 성당에서 거행 하리라 한다. ---------------------------------------------------------------------------------------------------------..

(사)이상설선생 기념사업회 '국치 100년 의미와 과제" 강연회 개최

이재정 대표, '국치 100년 의미와 과제" 강연회 개최 입력 2010.12.15 (수) 11:15 사단법인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는 15일 오후 2시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항일독립운동의 선구자인 보재(溥齋) 이상설선생의 탄신 제140주년을 맞아 “국치 100년, 헤이그특사의 의미와 오늘 우리의 과제”라는 주제로 학술강연회를 개최했다. 이상설선생은 ‘선구자’의 모델이 된 대표적 항일독립운동가다. 이 선생은 1870(고종7년) 충북 진천 출생으로 1907년 헤이그 세계만국평화회의에 고종황제의 특사(정사 이상설, 부사 이위종, 이준)로 파견돼 일제의 조선강점 만행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학술강연회는 기념사업회장인 이재정 회장의 사회로 윤병석교수(인하대 명예교수, 기념사..

근대수학의 아버지 이상설선생.

헤이그특사 이상설선생이 쓴 '數理'에 현대수학 등장 '수학 독립' 한국의 근대수학 자생적 연구 밝혀져… 日 "한국에 수학전수" 주장 근거 잃어 한국의 근대수학은 구한말 이후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일본수학계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조선의 근대지식인들이 자생적으로 수학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1899년 완성된 수학서 '수리(數理)'이다. 이 책에는 '正弦(정현·현재의 sin)', '餘弦(여현·cos)', '正切(정절·tan)'처럼 표현만 다를 뿐 그 의미는 오늘날과 똑같은 삼각함수 공식이 등장한다. 또 ³√182284263 = 567 같은 세제곱근 문제,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2차 방정..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이 쓴 수리에 현대수학 등장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이 쓴 수리에 현대수학 등장 이재원 조선경제기자 2010/11/02 10:29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1/2010110101908.html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이 쓴 '數理'에 현대수학 등장 자생적 연구 밝혀져… 日 "한국에 전수" 주장 근거 잃어 한국의 근대수학은 구한말 이후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일본 수학계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조선의 근대 지식인들이 자생적으로 수학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1899년 완성된 수학서 '수리(數理)'이다. 이 책에는 '正弦(정현·현재의 sin)', '餘弦(여현·cos)', '正切(정절·tan)'처럼 표현만 다를 뿐 그..

이상설(李相卨)

■ 이상설(李相卨) /경주이씨 39世 [생졸년] 1870년(고종 7)∼1917년. [문과] 고종(高宗) 31년 (189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위 [가계]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후손인 벽오 시발(碧梧 時發)의 11대손으로, 생가(生家)는 춘전 경휘(春田 慶徵)의 후손이고, 양가(養家)는 춘전(春田 慶徵)의 아우인 화곡 경억(華谷 慶億)의 10대손이다. --------------------------------------------------------------------------------------------------------------------------------------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 충북 진천 출..

보재 이상설선생 제93주기 추모식

보재 이상설선생 제93주기 추모식 기념촬영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재정.국민참여당 대표)는 22일 오전 11시 이수진 국가보훈처청주지청장 신창섭 진천군의회의장을 비롯해 각급기관단체장 회원 가족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천군 숭렬사에서 보재 이상설 선생의 항일구국독립운동의 뜻을 기리는 순국 제93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제 1부 제례, 2부 추모식으로 이어 졌고 추모식은 이수진 국가보훈처 청주지청장 등 내빈들의 추모사와 기념사 특송, 기념사업회의 주요사업계획 발표 등으로 진행됐다. 이재정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 올해 국치 100년을 맞아 이상설 선생이 벌이신 민족 독립운동의 핵심적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선생께서 남겨준 국가와 민족의 개념을..

이상설의 생애와 민족운동

■ 이상설의 생애와 민족운동 2009206012 이 용철 I. 머리말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 : 1870~1917)은 한말(韓末)~일제강점초기(日帝强占初期)의 대표적 민족운동가이다. 그는 일생을 민족의 자주권 확보와 독립운동에 바친 인물로 1904년 6월「황무지개척권요구계약안(荒蕪地開拓權要求契約案)」에 반대하는 상소를 시작으로 1905년의 을사조약 파기를 위한 상소, 1906년의 서전서숙(瑞甸書塾) 창설, 1907년의 헤이그 특사 이후 191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가 행한 일련의 활동은 자체로 민족운동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이 시기 한국인의 자주민족운동의 양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중요성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미 정인보(鄭..

이상설에 대한 인물평

■ 이상설의 인물평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 1879년(고종 16) ~ 1910년 「이사람(李相卨)의 포부는 매우 크며 세계대세에 밝고 동양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이범윤(李範允과 같은 인물 만인(萬人)을 모아도 이상설(李相卨) 한사람에 못 미칠 것이다.(중략) 수차 만나서 그 인물을 보니 기량(器量)이 크고 사리(事理)통하는 대인물(大人物)로서 대신(大臣)의 그릇됨이 부족함이 없더라.(중략) 세계대세에 통하고 애국심이 강하여 교육발달을 기도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세우는 사람은 이 사람일 것이다. 또한 동양평화주의를 가진 점에 있어서 이 사람과 같이 초절한 마음과 뜻을 갖춘 사람은 참으로 희귀할 것이다. --------------------------------------------------------..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서 - 白松 손순자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서 詩/白松 손순자 (2015. 08. 01(토) /우스리스크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바람을 가르며 ‘우골리나야’ 역을 막 떠나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한 시간 ‘우스리스크’까지 버스로 또 한 시간 건너편으로 발해의 옛터가 보이는 수이푼강 연해주의 독립운동가 그 중심에 계셨던 이상설 선생의 발자취 따라 이곳에 왔다 1910년 8월 27일 성명회를 조직하여 침략세력에 항거하고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당신! 마흔여덟에 멈춰버린 안타까운 젊음이여 독립운동사에 빛이나는데도 기억하는 후손은 많지 않고 소련인들이 세웠다는 조선계 소련인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오늘도 세월을 안고 말없이 흐르는 수이푼 강가에 비바람 맞고 외롭게 서 있는 선구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