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書. 간찰. 시(詩) 62

이집로 간찰(李集魯 簡札)/담헌 하곤의 증손

크기 : 24.5cm(세로) x 42cm(가로) ● 이집로(李集魯)/34世 [진사시] 순조(純祖) 7년(180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13위(43/100) ------------------------------------------------------------------------------------------------------------------------------------------- 1769(영조 45)-1818순조 18)때의 문신으로 자는 예재(禮在),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숙종조(肅宗朝)에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한 인엽(寅燁)의 현손(玄孫)이고,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통정대부(通政大夫) 이후원(李厚源)의 아들이다. 39세인 1807년(純祖 7..

李敬一 先生 간찰

크기 : 가로45㎝ x 세로36㎝ ●이경일(李敬一) 1734(영조 10)∼1820(순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회(元會), 호는 청헌(聽軒). 항복(恒福)의 6대손이며, 진사 종열(宗悅)의 아들로, 도사 종악(宗岳)에게 입양되었다. 1768년(영조 44) 음덕으로 관직에 나와 온릉참봉·덕산현감을 지내고, 1775년 문과정시에 을과로 급제, 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대사간·대사성·이조참의·황해도관찰사·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1800년(정조 24) 공조판서에 오른 다음 이어 대사헌·우참찬·형조판서·한성부판윤·좌참찬 등을 지냈다.1804년(순조 4)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 성학(聖學)에 힘쓰고 정치기강을 바로잡을 것 등 제반시책..

이석표선생 간찰(李錫杓先生 簡札)

↑대사간,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이석표(李錫杓) 선생의 乙丑 1745년(영조 21) 간찰 1점. 54cm × 32.5cm ● 이석표(李錫杓) - 32世 1704(숙종 30)~1751(영조 2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운원(運元), 호는 남록(南麓). 경억(慶億)의 증손으로, 祖父는 大提學 인엽(寅燁)이고, 아버지는 하곤(夏坤)이며, 어머니는 송상기(宋相琦)의 딸이다. 아버지는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학문으로 이름 있던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평판이 자자하였으며, 1729년(영조 5) 25세에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였고, 1733년 29세에 알성문과에도 장원급제하였다. 하여 6품직에 바로 올라 성균관 전적이 된 이래 사간원정언ㆍ사헌부지평 등 양사..

이회경(李晦慶) 선생의 간찰

↑크기 : 44cm x 24cm ●이회경(李晦慶) 1784년(정조 8)∼1866년(고종 3).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서구(敍九)이고, 호는 학남(鶴南)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경주(慶州)이다. 호곡(壺谷) 유범휴(柳範休)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1823년(순조 23) 스승 유범휴가 세상을 떠나자 과거 공부에 대한 뜻을 접고, 오직 정신을 수양하는 공부에 매진하였다. 문집으로 증손 이종흡(李鐘翕)이 편집하고 간행한《학남선생문집(鶴南先生文集)》이 있는데, 문집 가운데 편지글은 스승 유범휴에게 《주자대전(朱子大全)》‧《대학(大學)》‧《중용(中庸)》에 대해 의심나는 부분에 문목을 붙여가며 물은 것부터, 수정재(壽靜齋) 유정문(柳鼎文)‧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환재(瓛齋) 박규수(..

李慶億 先生 간찰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화곡(華谷) 이경억(李慶億)선생 간찰(簡札) 1620-1673(광해12-현종14) 자는 錫而, 호는 華谷으로 본관은 慶州다. 1644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충청감사, 경기감사, 이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1654년 정언벼슬로 봉사를 지어 시폐를 진언하였고 1668년 청나라 사신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華谷遺稿가 있으며 시호는 文翼이다. 출품물은 선생의 연세 53세때인 1672년에 하신 간찰로 상한글자가 있고 좌편에 짜집기한 흔적이 있으며 크기는 가로 48cm, 세로 21cm 이다.

이시발 선생 간찰

■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낸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 선생 간찰(簡札) 1569(선조 2)-1626(인조 4) 문신으로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慶州人이다. 1589년 문과를 급제하여 여러벼슬을 거치고 임진왜란때 활약하였으며 경상감사. 평양감사를 지냈다. 광해군때 폐모론에 반대하였으며 한성판윤, 형조판서를 거쳤고 이괄의 난리때 공을 세웠다. 저서로는 벽오유고(碧梧遺稿)가 있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이 간찰은 선생의 연세 36세때인 1604년에 쓰신 간찰로 서너자의 탈자가 있으며 크기는 가로 19cm, 세로 25cm 이다.

李惟謙선생의 간찰 - 초려 이유태 아우

■ 숙종때 현감을 지낸 李惟謙선생의 간찰 숙종때의 인물인 초려 이유태선생의 아우로 이유겸(李惟謙)의 자는 퇴지(退之), 호는 동가(東嘉), 사계 김장생과 신독제 김집으로 부터 학문을 배웠다. 관직은 함열현감(咸悅縣監)을 지냈고 아버지께 보낸 편지이다. ↑함열현감(咸悅縣監) 이유겸(李惟謙)선생 간찰(簡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