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書. 간찰. 시(詩)

李敬一 先生 간찰

야촌(1) 2013. 6. 1. 10:41

  크기 : 가로45㎝ x 세로36㎝

 

●이경일(李敬一)

 

1734(영조 10)∼1820(순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회(元會), 호는 청헌(聽軒). 항복(恒福)의 6대손이며, 진사 종열(宗悅)의 아들로, 도사 종악(宗岳)에게 입양되었다.

 

1768년(영조 44) 음덕으로 관직에 나와 온릉참봉·덕산현감을 지내고, 1775년 문과정시에 을과로 급제, 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대사간·대사성·이조참의·황해도관찰사·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1800년(정조 24) 공조판서에 오른 다음 이어 대사헌·우참찬·형조판서·한성부판윤·좌참찬 등을 지냈다.1804년(순조 4)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 성학(聖學)에 힘쓰고 정치기강을 바로잡을 것 등 제반시책을 건의하여 받아들여졌으며, 1808년 나이 75세에 봉조하(奉朝賀)가 되고 오은군(鰲恩君)에 피봉되었다.저서에는 시문을 모은 《청헌유고》가 있다. 시호는 효정(孝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