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書. 간찰. 시(詩) 62

만부인(挽夫人) - 李時發

■ 벽오부인 덕수이씨(碧梧夫人 德水李氏) 향년 25세 1584년(선조 17)~1609년(광해 1) 옥산(玉山) 이우(李瑀, 1542∼1609)의 딸로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손녀이다. 그는 문사(文史)에 해박하고, 거문고와 바둑에 능하였으며, 자수나 서화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행실이 총명하고 단정하고 정숙한 자질이 보통 부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특히 부모를 공경하고 지아비에게 정성을 다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는 것은 모두다 천성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고 부군(夫君) 이시발(李時發)은 제문에서 술회하고 있다, 또 부인과 사별(死別)을 애도(哀悼) 하는 마음을 칠언절구 만사(輓詞)로 이렇게 나타내었다. 만부인(挽夫人) - 李時發 海誓山盟指白頭 / 해서산맹지백두 바다와 산에 맹세하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회양군수 이숭언에 대한 만사[輓 李崇彦] /

회양군수 이숭언 에 대한 만사-목재집 북관에선 돌아가는 길이 매우 바쁘기 마련인데 / 北關歸路劇?? 오랫동안 방에 누운 늙은이처럼 회양을 다스렸네 / 淹對淮陽臥閤翁 줄곧 권하는 막걸리는 취하지 않아 불만스러웠고 / 苦勸山?嫌未痛 문장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오히려 다함이 없었네 / 縱談騷苑轉難窮 뒷날의 기약은 온통 풍진에 가로막혔었는데 / 後期渾被風塵隔 지난 자취는 불현듯 이슬과 번개처럼 무상해졌네 / 往蹟俄驚露電空 선친과는 동방의 중한 인연임을 진작 알았기에 / 年誼早知先契重 백발이 되어 쓰는 만사에 두 줄기 눈물 흐르네 / 白頭題輓淚雙瞳 ----------------------------------------------------------------------------------------------..

서정리 부인 경주이씨에 대한 만사-徐豐德

동강유집 제7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서 풍덕 정리의 부인에 대한 만사[徐豐德 貞履 室內輓] 손바닥 위의 다섯 구슬은 모두 진귀해졌고 / 掌上珠均五箇珍 유순하며 법도에 맞으며 의표가 순수하였네 / 柔嘉儀協義方純 유문처럼 학업 성취 시키려 웅담환 먹이고 / 柳門業就和丸日 영모처럼 상서가 모여서 학 꿈을 꾸었네 / 齡母祥凝夢羽辰 대가가 부인에게 의지함을 오래 전 알았으니 / 久識大家資內相 남은 경사 자손에게 넘치는 것을 정녕 보겠네 / 定看餘慶溢來人 훌륭한 행실 새기자면 뛰어난 솜씨 필요하건만 / 貞珉紀媺須張筆 지친이라 만사를 쓰자니 더욱 마음 아프네 / 親懿題詞倍愴神 [각주] [주01] 서 풍덕(徐豐德)의 …… 만사 : 이 시는 1659년(현종 즉위년) 세상을 떠난, 서정리(徐貞履, 1599~1664)의..

李寅煥 先生 簡札

■ 이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한 조선후기 문신 李寅煥 선생의 간찰 1점 ◈ 1633(인조 11)∼1699(숙종 25).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생곡(生谷). 대건(大建)의 증손으로, 할아버 지는 판서 시발(時發)이고, 아버지는 경휘(慶徽)이며, 어머니는 심대복(沈大復)의 딸이다. 1660년(현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정언·수찬 등을 지냈다. 지평·부수찬을 거쳐 1675년(숙종 1) 암행어사가 되었으며, 1680년 사간· 집의, 1681년 응교·승지, 1684년 대사간이 되었다. 1685년 이이(李珥)의 신원(伸寃 : 원통함을 풀어버림)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대사성·경기도관찰사·개성부유수를 거쳐 1697년 도승지를 역임하고 이조판서에까지..

간찰 밀양박씨 경헌고택-이영우 간찰.

문서크기 : 19.7㎝ ×54.4㎝ 경신년(1920) 4월 6일 이영우(李英雨)가 수급자미상에게 문안과 가족의 생활 형편을 염려하며 보낸 간찰(簡札) 向者郵便修候。當不至洪喬浮沈耶。伏惟葽夏。本庭萱闈。筋力萬寧。阮府丈壽韻岡陵。退而棣樂湛重。僉允從穩侍否。伏溸區區。不任遠忱。重表侄省候。以冷祟數朔委褥。已極煎悶。而大姑主泄痢爲添。沈綿望餘。刀圭難效。神關盪敗。八耋湯候。不啻悶懼。不敢不告于姑主。所以討郵仰陳矣。似爲中滯未達。故玆因鄙族丈便。更告耳。餘不備。伏惟。庚申四月初六日。重表侄李英雨再拜

이집로선생 간찰(李集魯先生簡札)

▲크 기 : 42cm(가로) x 24.5cm(세로) ▲크 기 : 42cm(가로) x 24.5cm(세로) 이집로(李集魯,1769~1818)선생의 본관은 경주(慶州), 화곡 경억(慶億)의 5대손 담헌 하곤 (夏坤)의 증손, 조부는 석표(錫杓)이다. 그의 자(字)는 예재(禮在)이고. 나주진 병마첨절제사 (羅州鎭兵馬僉節制使)를 지낸 통훈대부(通訓大夫) 이후원(李厚源)의 아들로 39세 때인 1807년(純祖 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에 진사 3등에 입격 하였다.

벽오형 주근호서(碧梧兄主覲湖西) - 李時得 詩

[봉별(奉別)] ■ 벽오형 주근호서(碧梧兄主覲湖西) 지은이 : 이시득(李時得) 서원(西原)은 기이(奇異)하게 뛰어난 곳이니 山이 높고 물도 맑네! 그 사이의 정기(精氣)를 타고난 영웅(英雄), 우리兄은 참으로 출중(出衆) 하셨네. 그 옛날 익재공(益齋公)은 명성(名聲)이 天地를 진동(振動)하셨네. 지금 까지도 여운(餘韻)이 남아있어 여러 입에서 탄복(歎服)하며 칭찬하네. 百世後인 오늘날 의연(薿然)하게 우리 兄이 쌍벽(雙璧) 일세, 녹나무가 하늘을 찌를듯하고 푸른 바다 같이 호호 탕탕(浩浩蕩蕩) 하시네. 통달(通達)함이 병가(兵家)로 흘러 많은 서적(書籍) 연구(硏究) 했네.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를 어찌 족(足)히 말 하리오. 손빈(孫臏)과 오기(吳起)도 사장(師長)이 부끄럽네. 한 번에 고등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