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명당 - 이문호 전 영남대 교수

권력과 부의 운명은 따로 있다. 풍수에 대한 속설을 과학적으로 접근, 자연과학자 이문호 교수가 밝히는 풍수와 과학에 대해 들어보자. 2014. 4. 16 이문호, 영남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 / YTN 사이언스 -------------------------------------------------------------------------------------------------------------------------------------- 국제신문사 "명당의 형상-누가 재벌이 되는가" 이문호 영남대 교수(국제부울경아카데미) 2015, 5. 21

CJ 함께 키워낸 손복남 고문 별세

■ 손복남(孫福南) [생졸년] 1933년 4월 5일 ~ 2022년 11월 5일 / 壽90歲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 학사 ▲고(故) 손복남 CJ 고문. 사진=CJ그룹 지난 1987년 이병철 창업주가 별세한 후 시어머니 박두을 여사를 2001년 1월 타계할 때까지 장충동 본가에서 모셨다. 이병철 창업주는 손 고문을 아껴 손영기 사장 사망 후 안국화재(현재 삼성화재)의 지분을 상속해줬다. 이 지분은 CJ가 삼성그룹에서 독립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3년 이재현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제일제당을 계열분리 해 나올 때 손 고문 등이 보유한 안국화재 지분과 제일제당 지분을 맞바꿔 현재 CJ그룹의 근간을 마련했다. 이후 장남인 이재현 회장에게 제일제당 주식 전부를 증여해 현재 CJ그룹 지분 구조의 토대를..

길옥윤(吉屋潤) - 음악가

■길옥윤(吉屋潤) [생졸년] 1927년 2월 22일 ~ 1995년 3월 17일 /향년 69세 본명은 최치정(崔致禎),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 1941년 평양 종로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8년 월남하여 1949년 2월 서울에서 치과전문학교(후에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하였고, 대학생 신분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군예단원이 되기도 했다. 곧바로 치과대학 선배인 김영순(金榮淳)이 조직한 악단 멤버가 되어 재즈 음악에 접하게 된다. 1950년 초 동경으로 건너가 오자와[小澤秀夫]에게서 재즈 음악과 색소폰연주법을 배웠다. 1952년 일본에서 주일미군캠프촌을 순회하는 악단을 조직, 본격적인 재즈맨이 되었다. 이 때 일본 문인들의 이름을 본 따서 요시야 쥰[吉屋潤]으로 행세..

이화중선(李花仲仙)

■이화중선(李花仲仙) - 여류명창 [생졸년] 1898년~1943년 / 46歲 일제강점기 김초향과 더불어 여류 창악계의 쌍벽을 이룬 판소리의 명창. 부산 출생으로. 김초향(金楚香)과 더불어 당시 여류 창악계의 쌍벽이었다. 본명은 이봉학(李鳳鶴)이다. 판소리 명창인 이중선(李中仙, 1903-1935)과 판소리 고수인 이화성(李化成)과는 남매간이다. 13세(1911)에 남원으로 이주하면서 남원권번(기생조합)에 기적(妓籍)을 두고 판소리를 배웠다. 14-15세 무렵 권번(기생조합) 소리선생의 소개로 장득진(張得眞, 1884-1928)을 만났고, 17세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소리 공부를 하고자 장득진의 고향인 순창군 적성면으로 이사해 약 5년간 수련했다. 장자백(張子伯, ?-1907)에게 소리를 배운 장씨 일가에..

이화중선. 이중선 명창 자매

전라북도 부안 명창 이중선(李仲仙)의 묘. [소재지]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566(매창공원 내) 민족수난기 명창을 통해 울분을 퇘내다. 이중선은 가선 (아름다운 신선)의 칭호를 받은 여류명창이며, 그의 언니 이화중선(李花仲仙)은 일제 강점기에 가장 많은 레코드판을 냈던 유명한 명창 이었다. 그는(李花仲仙) 100여장의 음반을 취입하는데 그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의 음반시장은 황금기를 맞게 된다. 일본의 콜롬비아 음반사는 이화중선(李花仲仙)의 등장으로 돈방석에 앉게되며 판소리의 대중화를 이끌게 된다. ​한편 1927년의 경성방송국(JODK) 개국과 함께 전통음악이 정기적으로 라디오 전파를 통하여 방송되었다. ​ 이 때 활약했던 명인들로는 김죽파(金竹坡), 지용구(池龍九), 이화중선, 신쾌동(申快童), 강..

홍직필(洪直弼)

■ 홍직필(洪直弼) [생년] 1776년(영조 52) [졸년] 1852년(철종 3) / 壽87歲 [자(字)] 백응(伯應), 백림(伯臨), [본관] 남양(南陽) [호(號)] 매산(梅山), 문경(文敬) [저서] 『매산집(梅山集)』 52권이 있다. 매산 홍직필(梅山 洪直弼)은 많은 수량의 전장(傳狀)과 비지(碑誌)를 창작하였다. 본고는 이들 작품의 양상을 살핀 후에 그 의의를 검토 하였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선비로서, 그는 당대의 세상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응하여, 이로써 현실을 바르게 개선하기 위해 노력 하였다. 매산이 살고 있던 19세기 전반은 시대의 상황이 다른 시대와는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말세를 치유하는 처방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라고 생각 하였다. 그는 이런 시기에 충(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