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이조년 초상화

이조년(李兆年,1269~1343). 손에 뭘 들고 있었던 걸까? 이조년(1269~1343)은 명신이자 시인이었고, 또 훌륭한 손자(...)를 둔 덕택에 덩달아 유명하기도 합니다. 은 발립을 쓴 모습을 담았습니다. 1744년 이모한 것인데, 당시의 화풍에 따라 호피를 추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래 에서 이조년은 염주를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1559년 성주의 영봉서원을 건립할 때 이것이 문제가 되어 제향이 거절당했고, 결국 후손들이 이모하며 왼손에 든 염주를 뺀 것으로 보입니다. 아쉽게도 위 은 현재 도난당해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고, 다른 하나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 중입니다. 사실 종가에서 보관하는 조상들의 초상은 도난이 용이한 편입니다. 환수했지만, 도 무려 18년 가량 해외를 떠돌아야 했습..

경신공주(慶愼公主) 초상 - 태조 이성계의 적 장녀

■경신공주(慶愼公主) 초상 - 태조 이성계의 적 장녀 은 태조의 적장녀인 경신공주(?~1426)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거이(李居易, 1348년~1412년) 의 장남 "이애(李薆, 1363년~1414년 음력 10월 6일)" 와 혼인하였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한 은 남편인 과 한 세트로 제작된, 일종의 '부부병좌상'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외모와 몽골식 복장이 특징적인 은 원본의 박락과 훼손이 심한 편입니다. 사실, 조선 초기엔 여성의 용모를 모사한다는 것이 그렇게 터부시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후기로 들어서며 성리학적 관념이 심화하며 여성 초상화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 면에서 은 꽤나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경신공주 부부 묘 :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산40-11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초상화 - 이성계 3남

익안대군 초상. 원본을 짐작하기 어렵다 태조의 3남인 익안대군(?~1404)을 그린 도 특기할 경우입니다. 은 조선 후기에 이모한 것인데, 조선 전기의 복식을 무시하고, 화사가 임의로 사모의 양각과 시복을 삽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은 2000년 1월 도난되어 일본으로 반출되었지만, 지난 해 10월 반환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태조 이성계 초상화

태조 이성계(나이든 모습) 태조 이성계의 젊은 시절 모습. 최근 사진과 불탄 초상화를 바탕으로 복원됐다. 국립고궁박물관 몰래 찍은 사진 덕에 되살아난 ‘젊은 이성계’ 2013년 복원된 영흥 준원전(永興 濬源殿) 의 어진은 경기전 어진보다 훨씬 더 젊은 이성계의 모습이다. 수염은 검고, 얼굴은 말라 광대뼈와 턱뼈가 도드라진다. 눈빛도 매섭다. 왕이라기보단 장군의 얼굴이다. 초상화 전문가인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준원전본의 원본은 아마도 왕위에 오르기 전에 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성계는 의 기록처럼 고려의 문하시중 시절에도 초상화를 그렸다. 준원전 어진은 왕이 되기 전 초상화의 얼굴에 곤룡포(왕의 정장)를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 준원전 어진의 복원 과정은 극적이다. 이 복원된 어진의 원본은 1..

박정희대통령 독일 방문[동영상]

서독 파견 광부 & 간호사와 박정희 (박영근 논설고문 / 2020. 05 / 경상매일신문)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광부가 가기 전에 유고슬라비아, 터키, 아프리카 등지에서 많은 광부들을 데리고 왔었다. 이들은 아주 나태하여 결국 광산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지자 독일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였고, 이렇게 근면한 민족을 처음 봤다면서 한 달 급여 120달러에 보너스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 왜 간호사가 필요하였나?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3D 업종이나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특히 야간에는 일할 간호사가 없었다. 특근수당을 많이 준다 하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 간호사들에 대하여서는 "아주 후진국에서 ..

박정희대통령 재임시절 사진 167장 및 동영상 2매

우리 역사뿐 아니라 세계 대다수의 신흥국가를 세운 인물치고 무혈입성(無血入城)한 자는 그리 많지 않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고구려의 궁예와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고려를 세웠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왕조 조선을 세웠다. ​ 그런 의미에서 1961.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 또한 역사 속의 그러한 부류의 한 인물로 평가될 것이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4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총에 의한 저격으로 숨졌고, 박정희 또한 그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엔 이른 시점이지만 우리나라 경제 부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

안창호(安昌浩) 선생 존영

1878년 11월 9일, 평남 강서 ~1938년 3월 10일/향년60세 도산 안창호선생 존영(1926년)/48세때의 모습 일제강점기 이토히로부미 암살사건, 상해 훙커우공원 폭탄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교육자로. 호는 도산(島山). 평안남도 강서 출신. 안흥국(安興國)의 셋째아들이다. 부인은 이혜련이며, 자녀로는 안필립, 안필선, 안수산, 안수라, 안필영이 있다. 선대는 대대로 평양 동촌(東村)에서 살았으나 아버지 때에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으로 옮겨왔다. 8세까지 가정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9세에서 14세까지는 강서군 심정리에 머물며 김현진(金鉉鎭)에게 한학을 배웠다. 이 때 서당 선배인 필대은(畢大殷)과 알게 되어 그로부터 민족주의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 1895년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명단 및 활동사항.

■ 3.1운동[1919년] 민족대표 33인 명단 및 활동사항. 1.손병희(孫秉熙) 생졸년 : 1861년(철종 12)~1922년/61世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방정환(方定煥) 선생의 사위이다. ◇가명 : 이상헌(李祥憲) ◇호 : 의암(義菴) ◇초명 : 응구(應九),/개명 규동(奎東) ◇본관 : 밀양(密陽) ◇출생지 : 충북 청원(淸原) ◇활동분야 : 종교 ◇주요수상 :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1962) [활동사항] 호 의암(義菴). 초명 응구(應九). 후명 규동(奎東). 충북 청원(淸原) 출생. 1882년(고종 19) 22세 때 동학(東學)에 입교, 2년 후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수제자로서 연성수도(鍊性修道)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통령(統領)으로서 북접(北接)의 농민군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