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이시백(李時白) 초상화

이시백(李時白) 1581(선조 14)~1660(현종 1) / 작자미상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돈시(敦詩), 호는 조암(釣巖). 이기(李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화(李廷華)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 이귀(延平府院君 李貴)이며, 어머니는 인동 장씨로 증 참판 장민(張旻)의 딸이다. 이시방(李時昉)의 형이다. 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초기 생애 1581년 아버지 이귀(李貴)와 어머니 장민의 딸 장씨부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을 지냈으며, 동생은 호조판서를 지낸 시방(時昉)이다. 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에게 배웠으며, 현명하고 겸손하며, 풍채가 당당했다. 1623년 인조..

이귀(李貴) 초상화

■ 이귀(李貴) 1557(명종 12)~1633(인조 11) / 작자미상 국립중앙박물관 본관은 연안. 자는 옥여, 호는 묵재.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정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이이(李珥)와 성혼에게서 배웠다. 1582년(선조 15) 생원이 되었다. 이듬해 박근원·송응개(宋應漑) 등 동인이 당쟁을 조장한다며 스승 이이와 성혼을 공격하자 상소를 올려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뒤 강릉참봉으로 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고, 평양으로 피난한 선조를 찾아가 방어대책을 올렸다. 이어 삼도소모관·삼도선유관으로 임명되어 군사·군량·군마 등의 모집과 수송을 맡았다. 특히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을 도와 모집한 군졸과 양곡을 개성으로 운반하여 한성을 탈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듬해 장성현감..

유홍(柳泓) 초상화

유홍『柳泓, 1483(성종 14)~1551(명종 6)』은 유순정의 아들로, 아버지를 꽤나 닮았습니다. 은 전신상과 반신상 각각 1점씩 남아있는데, 이모한 것이지만 고식이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유홍도 정국공신에 책봉되었지만, 공신상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라 추정됩니다. 특기할 점은 흉배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흉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해 뭐라 쓰기가 좀 그렇습니다. --------------------------------------------------------------------------------------------------------------------------------- 조선전기 정국공신 4등에 책록된 공신.무신으로.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연(子淵). 아버지는 영의정 유순..

유순정(柳順汀) 초상화

조선전기 숭정대부,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 유이(柳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자해(柳子偕)이다. 아버지는 목사 유양(柳壤)이며, 어머니는 정집(鄭楫)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고 활을 잘 쏘아서 무인 중에서도 비교할 자가 드물었다. 1487년(성종 18) 진사로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홍문관전적에 임명되었다. 그 뒤 훈련원정으로서 전라도 지방에 침투한 왜적을 수색, 포획하는 데 힘썼고, 1491년 함경도평사로서 도원수 허종(許琮)의 막료가 된 뒤 평안도평사를 역임하였다. 유순정 초상 유순정(柳順汀,1459~1512)은 연산군을 폐위한 일등공신으로 정국공신에 책봉되었rh. 위 은 그때 그려진 공신상으로,..

이포(李褒) 초산화

이포『李褒,?~1373(공민왕 22) 』 고려후기 검교시중을 역임한 관리.문신.본관은 성주(星州). 아버지는 예문관대제학 이조년(李兆年)이다. 아들로는 이인복(李仁復), 이인임(李仁任), 이인미(李仁美), 이인립(李仁立), 이인달(李仁達), 이인민(李仁敏) 등이 있다. 벼슬은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렀고 성산군(星山君)에 봉하여졌다. 성품이 순박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1372년 왕이 손수 이포의 초상화를 그려서 아들 이인임에게 내려주는 영예를 입었다. 시호는 경원(敬元)이다. 도 처럼 성주 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건데, 어딘가 모르게 비율이 어색해 보이지 않습니까? 후대에 석지 채용신(1850~1941)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있는 그대로 옛 사람을 그리게 되면 비율이 어색해..

영조(英祖) 초상화

20살 연잉군 시절 영조의 모습. 국립고궁박물관 50살 때 영조의 모습. 영조의 초상화 2점은 불 속에서 살아남았다. 국립고궁박물관 가장 운이 좋았던 왕은 영조였다. 영조는 조선 왕 가운데 유일하게 2점의 어진이 남아 있다. 2점 모두 1954년 부산 창고의 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하나는 연잉군(왕자) 시절인 1714년 20살 때의 앳된 모습이다. 아버지 숙종 이돈이 선물로 그려준 것이다. 가뭇한 수염과 매부리코, 어두운 표정이 인상적이다. 또 1점은 누구나 아는 어진으로 1744년 50살 때 모습이다. 인생의 절정기에 있던 영조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영조는 20살 때부터 거의 10년마다 7번 이상 어진을 그렸다. 1954년 부산 창고에도 6점이 있었으나, 2점만 살아남았다. 이성계..

철종 초상화

철종(죄인의 신분으로 시골에서 농사짓고 옆집 노비랑 사랑을 하던중 하루아침에 왕이됌) 일부 불에 탄 철종(哲宗)의 초상화. 국립고궁박물관 왕의 위엄이 느껴지지 않는 어진 영조 어진 2점과 함께 부산 창고의 불에서 살아남은 철종의 어진도 있다. 철종 어진은 오른쪽 3분의 1만 타서 얼굴이 크게 상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어진 중 유일하게 군복을 입고 있다. 철종 어진은 둥글고 큰 눈, 쌍꺼풀, 사시(사팔눈), 멍한 표정 등으로 인해 왕의 위엄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선 왕들의 어진은 조선 전기엔 경복궁 선원전(景福宮 璿源殿)에 모셔졌고, 건국자인 이성계 어진은 전국 5곳에도 분산돼 있었다. 임진왜란 뒤엔 창덕궁 선원전(昌德宮 璿源殿)과 영희전(永禧殿: 태조ㆍ세조ㆍ원종ㆍ숙종ㆍ영조ㆍ순조의 영정을 모셨던 전각/현..

세조 초상화

조선전기 제7대(재위:1455~1468) 왕. 생졸년 : 1417년(태종 17)~1468년(세조 14) -----------------------------------------------------------------------------------------------------------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유(李瑈). 자는 수지(粹之). 세종의 둘째 아들이고 문종의 아우 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이다. 왕비는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尹氏)이다. 세조의 모습. 초상화 초본(데생)만 남아있다. 국립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