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옛 사람들의 초상화 117

조선후기 문인 초상 「주인공 미상」

■조선후기 문인 초상 (朝鮮後期 文人 肖像) ◈문화재지정번호 : 보물 제1498호 ◈문화재지정일 : 2006년 12월 29일 ◈규격 : 122.8 x 84.6cm(화면), 201.3 x 100.9cm(전체) ◈재질 : 비단에 채색 ◈제작시기 : 18세기 末 ◈소장자 : 개인소장[부산 남구 고려산업(주) 부회장 신성수] ---------------------------------------------------------------------------------------------------------------- 보물 제1498호. 이 초상화는 그림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화가가 누구인지 미상이다. 오사모(烏紗帽)에 담홍색 시복(時服=입시할 때나 공무를 볼 때 관원들이 입던 흉배가 없는 단령)을 입..

근암 윤급 초상화(近菴 尹汲 肖像畵)

■ 근암 윤급 [생졸년] 1697년(숙종 23)~1770년(영조 46) [문 과] 영조(英祖) 13년(1737) 정사(丁巳) 중시(重試) 을과(乙科) 2[探花郞]위(3/8) [문 과] 영조(英祖) 1년(1725) 을사(乙巳) 정시2(庭試2) 을과(乙科) 1[亞元]위(2/20) [진 사] 영조(英祖) 1년(1725)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진사] 1등(一等) 1[壯元] 위(1/100) ●초상화(肖像畵) [지정번호] 보물 제1496호 윤급초상(尹汲肖像) [크기] 152.3 x 82.6cm(화면), 220.2 x 105.2cm(전체)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 6가 168-6) ---------------------------------------------------..

대원군 이하응 초상화

보물 제1499호 이하응 초상 일괄(李昰應 肖像 一括) 초상6점, 함5점, 향낭8점, 표제3점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2-1번지, 이하응초상일괄(흑단령포본) 131.9 x 67.7cm(화면), 170.2 x 77.1cm(전체)/ 서울역사박물관 이하응초상일괄(흑건청포본) 126.0 x 64.9cm(화면), 170.5 x 75.0cm(전체) /서울역사박물관 이하응초상일괄(와룡관학창의본) 133.7 x 67.7 cm(화면), 169.9 x 77.4 cm(전체) /서울역사박물관 이하응초상일괄(복건심의본) 113.7 x 66.2cm(화면), 153.2 x 75.7cm(전체) /서울역사박물관 이하응초상일괄(금관조복본) 130.8 x 66.2cm(화면), 172.0 x 75.9cm(전체) /서울역사박물관 국립중앙박..

서계 박세당 초상

백성을 위한 제도개혁을 주장했던 박세당도 마찬가지로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 서계 박세당 박세당(1629~1703)은 현종 1년(1660)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반주자학적 입장을 견지해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았다. 1703년 주자학과 송시열을 비판하고 독자적 견해를 밝힌 사변록(思辨錄)을 출간하자마자 사문난적으로 낙인찍혔다. 유배형까지 받았지만 이인엽(李寅燁)의 상소로 집행되지는 않았다. 그는 사대부들의 무위도식을 질타했고 실리적 외교정책, 백성을 위한 법률의 혁신, 정치·사회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윤휴의 초상화는 대구의 후손가에서 전해오는 것이다. 초상화는 40·50대의 중장년 얼굴이며 2품의 운안흉배(雲雁胸背)와 삽금대(鈒金帶)를 착용하고 있다. 허목의 초상화(보물 1509호, 국립중앙박물..

윤증 초상화

윤증 초상 -조세걸 작/개인 소장 윤증(1629~1714)은 애초 서인이었지만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될 때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면서 송시열과 맞섰다. 송시열에게 주자대전을 배웠지만 스승 송시열이 부친(윤선거)의 묘지명을 써주지 않자 사제지간을 끊었다. 송시열의 주자학적 종본주의와 그에 근거한 존화대의(尊華大義) 및 숭명벌청(崇明伐淸)의 북벌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사문난적에 포함됐다. 노론 측에서는 어진 스승을 배반한 패륜이라고 그를 비난했다.

윤휴 초상화

[생졸년] 1617년(광해군 9)~1680년(숙종 6 ↑주자를 부정하다가 사형당한 윤휴 1617년(광해군 9)~1680년(숙종 6), 조선후기 성균관사업, 대사헌,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초명은 윤갱(尹鍞). 자는 희중(希仲), 호는 백호(白湖)·하헌(夏軒). 이조참판 윤호(尹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희손(尹喜孫)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윤효전(尹孝全)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김덕민(金德民)의 딸이다. 아버지의 임지인 경주부의 관사에서 만득자(晩得子)로 태어났으며, 6년 위의 서형(庶兄) 윤영(尹鍈)이 있었다. 두 돌 못 미쳐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돌아와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여주의 옛집으로, 두 차례의 정묘·병자호란 때에는 보은 삼산(三山..

감고당 권희학 초상화

■ 권희학(權喜學) 생졸년 : 1672년(현종 13)~1742년(영조 18) 조선후기 분무공신「奮武功臣 :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내린 훈호」 3등에 책록된 공신 및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중(文仲), 호는 감고당(感顧堂). 안동부 향리「鄕吏=아전(衙前)」권명형(權命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697년(숙종 23)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 최석정(崔錫鼎)의 군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교련관(敎鍊官)이 되고, 그 뒤 여러 고을의 첨사를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금위영교련관으로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을 따라 안성·죽산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난을 평정,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에 책록 되고 ..

백사 이항복 진영(白沙李恒福眞影)

작성일 : 2004. 03. 03 서울대 박물관 소장 이항복 위성공신상 후모본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항복 후손들이 기증한 초상화는 모두 2점이다. 호성공신과 위성공신이 됐을 때 받은 초상화를 18세기에 베껴 그린 후모본(後模本)이다. 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이항복 초상화에는 원본 특징이 남았으나, 얼굴과 복식에 명암을 넣은 점은 18세기 특색"이라며 "위성공신상 후모본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이항복 초상화 초본'과 얼굴 표현이 유사해 서울대 작품이 이항복 57세 때인 1613년 초상화 초본(밑그림)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물 기증에 기여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두 초상화는 후모본이지만, 국난을 극복한 기개와 영웅적 면모가 잘 드러난 수작"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