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족보관련문 71

고금 관직 대조표(古今官爵對照表)

작성일자 : 2013. 08. 31 ■고금 관직 대조표(古今官爵對照表) 관→ 계급↓ 입법부 정부기관 지방 행정 대학 군인 사법부 외무부 경찰계 문교부 정부 투자기관 일반 행정부 조선 품계 국회 의장 대통령 대법 원장 국무총리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정1품 부총리 좌찬성 우찬성 종1품 장관 차관 도지사광역시장 대장 대 법원판사 장관 차관 본부장 장관 차관 교육감 장관 차관 판서 좌참찬 우참찬 정2품 차관보 학장 중장 법원장검사장 차관보 차관보 참판 관찰사 종2품 1급 관리관 주임교수 소장 2호이상 관리관 관리관 관리관 관리관 참의 목사 도호 부사 (당상관) 정3품 2급 이사관 국장 교수 준장 4호 이상 판검사 이사관 치안 정감 부교 육감 이사 이사관 집의 사관 종3품 3급 부이사관(3년이상) 부교수 대령 6..

옛 관청명

■ 옛 관청명 ◇경시서(京市署) 고려와 조선 때 중앙에 있는 시장과 도량형(度量衡), 물가조절등 상업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 ◇경연청(經筵廳) 조선 때 유교경전(儒敎經典)의 강론(講論)을 맡고 임금과 함께 사상(思想)을 토론하는 일을 맡은 관청. ◇공부(工部) 고려 때 상서성(尙書省) 소속의 6부중 하나로 공업과 농업을 맡아 관장하는 기관이며 지금의 통상산업부, 농림부. ◇공조(工曹) 조선 때 6조의 하나로 공업 또는 공사(工事) 영선(營繕: 건축물을 신축하고 수리하는일)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 하는 지금의 건설교통부. ◇관상대(觀象臺) 조선 때 천문(天文), 책력, 기후, 누각(漏刻:시간 측정) 등을 맡아보는 관청 지금의 기상대. ◇교서관(校書館) 조선 때 경적(經籍) 등을 간행하고 번포하며 향축(제..

내명부 직첩(內命婦職牒)

조선시대 왕에게는 왕비 이외에 후궁들이 있었다. 후궁들은 공식적으로 내명부(內命婦)의 직첩을 받고 왕을 받들었다. 정1품: 빈(嬪) 종1품: 귀인(貴人) 정2품: 소의(昭儀) 종2품: 숙의(淑儀) 정3품: 소용(昭容) 종3품: 숙용(淑容) 정4품: 소원(昭媛) 종4품: 숙원(淑媛) 이는 조선 초기부터 ‘내관(內官)’ 또는 ‘여관(女官)’ 등으로 불리던 궁녀 조직이 성종 대에 와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내명부’라 명시되고, 조선 말기까지 수정 없이 그대로 일컬어졌다. 기능은 궁중에서 각각 맡겨진 직무에 따라 공적인 일부터 사사로운 시중까지 다양하게 국왕 및 왕실을 보필하였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왕을 모시는 내관(內官)과 궁중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궁관(宮官)이 구별되고 있는 점이다.

족보 보는 상식

■족보 상식(族譜常識) 1. 족보의 기원(起原) 족보(族譜)는 다른 말로 보첩(譜牒)이라고도 하며, 그 효시는 중국의 6조(六朝) 시대에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 처음이며, 우리나라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18대왕 의종(毅宗)때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 (王代宗錄)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체계적인 족보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선 성종(成宗)때 부터이며(1476년), 이때 안동 권씨 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 가 처음 발간되었다. 혈족(血族) 전부를 망라한 족보는 조선 명종(明宗)때 편찬된 문화 유씨보(文化柳氏譜)로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전해온다. 2. 보첩(譜牒)의 종류(種類) ●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始祖)아래 중시조 마다 각각 다른 본관(本貫)을 가지고 있는 씨족간에 종합 편찬된 족보이..

선비

■ 선비 1.선비의 참 벗 “선비의 이른바 벗은 셋으로 구분된다, 첫째, 한묵(翰墨)의 자리에서 서로 즐겨하는 문우(文友)가 있고, 둘째, 벼슬하여 친하게 지내는 관우(官友)가 있고, 셋째, 성리서(性理書)를 서로 강(講)하는 도우(道友)가 있는데, 벗이라는 이름은 비록 하나이지만 벗이 되는 까닭은 같지 않다. 문우(文友). 관우(官友)는 꼭 상에 둘러앉아 악수하고 술잔을 나누며 친하다 하고, 반드시 허물과 부끄러움을 감추는가 하면, 재능(才能)을 포창(襃彰)하여 주는 것을 미덕(美德)으로 삼고 꼭 계약(契約)을 수결(修結)하여 지천화지(指天畵地)하여 믿음을 삼는데, 이 셋이 없으면 마음속으로 혐의가 있는가 하여 들떠서 서로 만나도 마침내 길가는 사람같이 될 뿐이다. 도우(道友) 같으면 그렇지 않으니 그..

한산이씨 족보 서(韓山李氏族譜序)-신익성 (申翊聖)

한산이씨 족보 서(韓山李氏族譜序) 신익성 (申翊聖) 撰/ 영의정 신흠(申欽)의 아들 「1588년(선조 21) ~ 1644년(인조 22)」 사람들이 자신을 낳은 조상을 명칭하지 못하다가 천대, 백대를 지나는 동안 세상에 공덕이 있는 한 사람을 얻어 그를 존숭하여 비조(鼻祖)라 하고 씨족을 구별하여 족보를 찬수하면 이는 자손들이 어진 선조를 가려서 존숭하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라고 나는 매번 의심하였다. 세상에 공덕이 있으면 종조를 높이고 종족을 비호할 수 있다. 종조를 높이면 천대, 백대 위 조상이 모두 그 영예를 누리고 종족을 비호하면 천대, 백대 위 조상의 후손이 모두 그 복을 받으니 그를 존숭하여 비조로 삼는 것을 또 어찌 의심하겠는가. 한산 이씨(韓山李氏)의 족보를 보고나서 예전에 의심하던 것이 더욱..

미산 소씨 족보서(眉山蘇氏族譜序)

■ 미산 소씨 족보서(眉山蘇氏族譜序) 소씨 족보는 소씨 일족의 계보(系譜)이다. 소씨는 고양씨「황제(黃帝)의 손자고, 창의(昌意)의 아들이며, 우왕(禹王)의 할아버지라고도 하는 전욱(顓頊), 처음 고양에 도읍을 정하여 고양씨라 한다.」에서 나와 천하에 만연(蔓延: 널리 퍼지어 번짐)하였다. 당나라 신요(神堯=당나라 고조 이연) 초기에 장사(長史)를 지낸 소미도(蘇味道)가 미주자사(眉州刺史)로 벼슬하다 졸하였는데, 그의 아들 한 명이 미주에 남았다. 미주에 소씨가 있게 된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족보로서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친족관계가 다해서다. 친족관계가 다한다면 어째서 이르지 못하는가? 족보는 친족을 위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자식들에 관해서 기록하면서 손자는 쓰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

만가보(萬家譜).

만가보(萬家譜). 19세기 해남(海南)의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종가에서 필사한 종합보이다. 백성보(百姓譜) ·천성보(千姓譜) ·만성보(萬姓譜)라고 할 때 이들은 모두 조선시대 각 가문의 족보를 알기 쉽게 간추려 엮은 것을 말한다. 만가보 또한 이러한 형태의 족보 류 로서 270여 가문의 족보를 모아 각 계파별로 분류(分類) 도시화(圖示化)한 일종의 종합보(綜合譜)이다. 필사로 된 유일본으로 모두 14권으로 구성 되어있다. 소장 처는 해남윤씨(海南尹氏) 가문의 종택인 녹우당(綠雨堂)이다. 이 책의 편찬자는 소장 처로 보아 해남윤씨 문중의 한사람일 것으로 보이지만 서문·발문 등 여타의 기록이 없어 편찬자 및 편찬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소장지가 해남윤씨 가문인 것을 보면 편찬자는 같은 문중의..

행장(行狀)이란?

■ 행장(行狀) 고려와 조선시대에 「죽은 자의 이력과 행적을 기록한 글」로서, 연보(年譜)라고도 한다. 행장이 언제부터 작성되기 시작했는가는 불 분명하다. 오늘날 전하는 행장 중 가장 연대가 앞선 것은 1265년(원종 6)에 작성된 민적(閔頔)의 행장이다. 행장은 시호·비명·묘지명 작성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고려에서 시호를 내리는 일을 관장하던 전의시(典儀寺)가 목종대에 그 기능과 직제가 정립된 것으로 보아, 행장은 늦어도 목종대 이전부터 작성되었다고 추측된다. 이후 행장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었고, 유학의 발전 및 유교문화의 융성과 함께 보편화되었다. 행장의 내용은 작성시대와 작성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려·조선 시대의 행장을 보면 대개 ①행장인의 관직, ②성명,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