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묘갈명,묘비,묘표 92

죽유 오운선생 묘갈명 병서(竹牖吳澐先生墓碣銘幷序)

오운『吳澐, 1540년(중종 35) ~ 1617년(광해군 9)』 ■죽유(竹牖) 오운[吳澐] 선생의 묘갈명(墓碣銘) 김응조 찬(金應祖 撰) 경주부윤 죽유 오공 묘갈명 병서(慶州府尹竹牖吳公墓碣銘 幷序) 공(公)의 성(姓)은 오(吳)이고, 휘(諱)는 운(澐)이며, 자(字)는 태원(太源)이고, 호(號)는 죽유(竹牖)이며, 고창(高敞) 사람이다. 원조(遠祖) 휘 학린(學麟)은 고려에 벼슬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대대로 벼슬아치들이 배출되었다. 고조(高祖) 휘 영(榮)은 나주판관(羅州判官)을 지냈고, 증조(曾祖) 휘 석복(碩福)은 의령현감(宜寧縣監)을 지내고 좌통례(左通禮)에 추증되었으며, 할아버지 휘 언의(彦毅)는 전의현감(全義縣監)을 지내고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아버지 휘 수정(守..

墓誌銘, 墓碑文, 墓碣文, 墓表에 對하여

墓誌銘, 墓碑文, 墓碣文, 墓表에 對하여 1. 묘지명(墓誌銘) 지(誌)는 기록한다[記]는 뜻이고 명(銘)이란 이름 하는 것[名]을 말한다. 옛사람에게 덕이 있거나 선이 있거나 공렬이 있어서 세상에 이름을 알 릴 만 한 경우에는 그가 죽고 난 뒤에, 후세 사람이 그를 위해 기물(器物)을 만들고 거기에다 명을 새겨서 영원히 전해지게 하였다. 이를테면 채중랑(蔡中郞)의 문집(文集)에 수록되어있는 주공숙(朱公叔)의 정명(鼎銘)이 그것이다. 한(漢)나라 두자하(杜子夏)에 이르러 처음으로 글을 새겨 묘소의 곁에다 묻음으로써 드디어 묘지(墓誌)가 있게 되었는데, 후세사람이 이것을 따랐다. 대개 장례를 치를 때에 그 사람의 세계(世系), 이름과 자, 벼슬, 살았던 마을, 행적과 치적, 살고 간 나이, 죽은 날, 장사한..

이광연 묘갈명 병서(李光然墓碣銘幷序)

향산집(響山集) 제13권 > 묘갈명(墓碣銘)/이만도(李晩燾, 1842~1910) 著 절충장군 충무위대호군 이공 묘갈명 병서 (折衝將軍 忠武衛大護軍 李公 墓碣銘 幷序) 공의 휘는 광연(光然), 자는 실보(實甫)이다. 울산 이씨(蔚山李氏)는 고려 말 휘 춘년(椿年)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조선에 복종하지 않아 서리(胥吏)로 강등되었다. 휘 예(藝)는 포로가 되어 왜국(倭國)으로 끌려갔다가 굴복하지 않고 다시 돌아왔으며, 이후 일본과 유구국(琉球國)에 열세 차례나 사신으로 가서 명나라의 포로들을 쇄환(刷還)하였으므로 황제가 가상히 여겨 칭찬하였다. 관직은 중추원 동지사(中樞院同知事)에까지 이르렀다. 이분이 휘 종실(宗實)을 낳았으니, 경상도 수군절도사로서 대마도(對馬島)를 세 번이나 ..

정익린 묘갈명 병서(鄭翼麟墓碣銘 幷序) - 정기룡 아들

정익린『鄭翼麟, 1596년(선조 28) ~ 1649년(인조 27)』 僉樞鄭公墓碣銘 幷序 三道水軍統制使鄭公起龍。籍晉陽。以忠勇致功業。嗣曰翼麟。字聖瑞。戊午武科出身。以軍功。陞階折衝。辛酉。拜僉知中樞府事。己丑四月二十八日。終于家。得年五十有四。葬于沙伐午向之原。初配花山權氏。不字。繼室順天金氏。男夏韺,善韺,舜韺,美韺,禹韺,元韺。女金世鼎,權志妻。孫純,緡,縉,全世耈,張彩明,金億齡,金華鍵妻。夏韺出。綸,糾,緝,李聖一,朴奎亨妻。善韺出。維,緯,尹商佐妻。舜韺出。安命天妻。禹韺出。績,紝,紀,縵。元韺出。內外孫曾五十餘人。權氏葬在咸昌栗谷丙向之原。祔公墓右金氏之葬。是也。綸以其伯父夏韺命。來曰。公旣銘吾祖墓石矣。吾父葬次祖兆。不可以無表。幸卒以惠。夫以不得辭於前。奚重辭焉。葢公器度恢偉。武藝竗絶。丙子。赴國難。在元帥票下。能以弓劍殲賊頗多。至創傷而無懼焉。講和成。公慷慨..

이경절 묘갈명(李景節墓碣銘) - 옥산 이우 아들

■증 승정원 좌승지 덕수 이공 묘갈명 우암 송시열 지음 공의 휘(諱)는 경절(景節,1571~1640)이요. 자(字)는 길보(吉甫) 인데 덕수(德水) 사람이다. 시조 이돈수(李敦守)는 고려의 중랑장(中郎將)이며, 우리 조선에 들어와 이명신(李明晨)은 대관(大官)에 이르렀고, 시호(諡號)는 강평(康平)이다. 증조 이천(李蕆)은 증 참찬(參贊)이요, 할아버지 이원수(李元秀)는 감찰(監察)로 찬성(贊成)에 추증되었으며, 아버지 이우(李瑀)는 군자감 정(軍資監正)인데 율곡(栗谷) 문성공(文成公)의 동생이다. 배위는 는 덕산황씨(德山黃氏)인데, 그의 아버지 진사 황기로(黃耆老)는 필법(筆法)으로 세상에 유명하였다. 공은 융경(隆慶) 신미년(辛未年, 1571년 선조 4년) 11월 20일에 외가(外家)에서 출생하였다...

우의정 정순붕 묘갈명(右議政 鄭順朋 墓碣銘)

↑정순붕 묘(鄭順朋 墓) /사진ⓒ개미실사랑방 ■ 정순붕(鄭順朋) 정순붕『鄭順朋, 1484년(성종 15) ∼ 1548년(명종 3)』은 자는 이령(耳齡), 호는 성재(省齋), 본관은 온양(溫陽), 증조는 정포(鄭袍), 조부는 지평 정충기(鄭忠基), 아버지는 헌납 정탁(鄭鐸), 어머니는 도진손(都震孫)의 따님 성주도씨(星州 都氏), 배위는 봉양수(鳳陽守) 이종남(李終南)의 딸 전주이씨이다. 연산군 10년(150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중종 11년(1516) 조광조(趙光祖)· 박상(朴祥)· 김정(金淨) 등과 더불어 사유(師儒)로 선발되고, 이조판서 송천희(宋千喜)의 천거로 장령에 임명되었다. 이어 좌부승지(左副承旨-正三品) ·충청도관찰사(忠淸道 觀察使-從二品)· 형조참의(刑曹參議-正三品)에 이르렀으나, 기..

북창 정렴 묘갈명(北窓 鄭磏 墓碣銘)

■ 장혜공 북창 정렴 묘갈명(章惠公 北窓 鄭磏 墓碣銘) [생졸년] 정렴『鄭?, 1506년(중종 1)~1549년(명종 4)』 부군(府君)은 이름이 렴(磏)이요, 자는 사결(士潔), 성은 정씨, 본관은 온양(溫陽), 호는 북창(北窓)이다. 시조는 이름이 보천(普天)인데 고려시대 벼슬이 호부상서(戶部尙書)을 지냈고 시호는 정희(貞僖)이다. 아조에 들어와서 득량(得良)이란분이 있어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를 지냈고, 이 분이 포(袍)를 낳으니 고성군사(高城郡事)였다. 이분께서 충기(忠基)를 낳으니 교리(校理)였고, 또 이분이 탁(鐸)을 낳으니 헌납(獻納)이었고, 이 분이 순붕(順朋)을 낳으니 돌아가셨을 때의 벼슬이 우의정(右議政)이었다. 이분께서 완산이씨(完山李氏) 양녕대군(讓寧大君) 제(提)의 증손 봉양도정(鳳..

반석평 묘갈명(潘碩枰墓碣銘)

■ 판서 반공(潘公) 묘비명 유명조선국 자헌대부 형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 반공 묘갈명 병서(서문을 아울러 쓰다). 가선대부 행 장례원판결사 정사룡(鄭士龍)이 글을 짓고, 통덕랑 수(守)의정부사인 겸 춘추관편수관 세자시강원필선 김로(金魯)가 글씨를 쓰고 아울러 전액 한다. 나의 벗 형조판서 반공보(潘公父-남자미칭보)씨가 병에 걸리자 처음에는 내가 문병한 것에 하루에 한번 갔고 위독해짐에 두 번, 세 번도 갔었는데, 필경은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내가 슬피 곡하였다. 해를 넘겨 신축년(1541, 중종 36)에 소상이 끝나고 며칠 뒤 그의 서자(庶子) 사혼(士渾)이 조부인(趙夫人)의 명을 받고, 명(銘)을 청해 묘에 표식을 하고자 하였다. 아아! 내가 차마 변변치 못한 글을 아껴서 공의 행적을 후세..

有明朝鮮國 貞敬大夫人 李氏之墓碑銘

有明朝鮮國貞敬大夫人李氏之墓碑銘. 1475년에 세운 오래된 진주의 진주강씨묘역에 있는 정경대부인은 세조때 영의정을 지낸 姜孟卿의 모친의 묘비입니다. 5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글자 판독이 가능한 문화재급인데, 강씨, 이씨, 문헌에 그 원문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족보에 기록이 없는 내용이 있으며, 진양지에 그 원문의 일부가 인용 되 있을 뿐입니다. 특히 부인의 어머니 영덕정씨의 기록은 진양하씨족보에 진주정씨라고 한 내용과 같은 분(書雲副正 鄭公富의 女)인데 이 비는 盈德鄭氏라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훈(야촌)2014.05.14. 12:26 이 묘비는 1453년 수양대군의 계유정란을 도와 세조 4년에 영의정에 오른 강맹경(姜孟卿)의 어머니 증 정경대부인 재령이씨(載寧李氏)는 지보주사(知甫州事)를 지낸 이..

강우덕 묘비문(姜友德墓碑文) - 영의정 강맹경의 아버지

회헌일고(檜軒逸稿)/全州人 柳義孫 著 지창령현사강공비명(知昌寧縣事姜公碑銘-姜友德) 공(公)의 성(姓)은 강(姜)씨요, 이름은 우덕(友德)이며, 자는 자보(子輔)로서 진주(晋州)의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이다. 고려(高麗)의 감찰어사(監察御使) 휘(諱) 사첨(師瞻)의 5세손이며, 4세조인 증문하시중 진원부원군 판도정랑(贈門下侍中晉原府院君版圖正郞) 휘 창귀(昌貴)가 합문지후(閤門祗候) 윤보(允保)의 따님 영가군부인 권씨(永嘉郡夫人權氏)를 맞이하여 봉산군(鳳山君) 휘(諱) 군보(君寶)를 낳았다. 봉산군(鳳山君)은 계림군부인김씨(鷄林郡夫人金氏)를 맞이하니 전객령(典客令) 휘(諱) 여진(呂珍)의 따님이다. 추충보조공신 대광상의 찬성사 동판도평의 동판선공시사 좌우위상호군(推忠補祚功臣大匡商議贊成事同判都評議同判繕工寺事左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