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103호] 20090228 입력 ■ 국란을 겪은 임금들 인조 ③ 外患 부른 쿠데타 인조와 서인이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몰라서 친명반청(親明反淸) 정책을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친명 사대는 정권 획득과 유지의 명분이었다. 군사는 없지만 전쟁불사론이 횡행했고 현실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입을 열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국제 정세는 국내 정세에 파묻혀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되었다. 이 양자 사이 모순의 충돌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었다. ↑남한산성(55Χ42㎝) : 주화론과 척화론의 대립 속에 남한산성에 갇혀 있던 인조는 이불조차 없는 한겨울을 보내 야만 했다. 인조반정은 혼돈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광해군 폐출에 대한 반발이 계속되었다. 인조 1년(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