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이사공(李士恭)

↑경양군 이사공(慶陽君 李士恭) 초상화 ■ 경양군 이사공(慶陽君 李士恭)/ 25世 [세 계] 경주이씨 부정공 매(副正公 邁)의 8세손. [생졸년] 1554년(명종 9) ~ 1631년(인조 9) 음 12월 11일. [무 과] 선조(宣祖) 16년(1583) 계미(癸未)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57위/합격연령 : 30세 [거주지] 용인(龍仁) -----------------------------------------------------------------------------------------------------------------------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중경(仲敬), 본관은 경주(慶州). 부정공(副正公) 매(邁)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진용교위(進勇校尉) 충순위(忠順衛) 이장경(..

최무선 장군 초상화

발명가 최무선 장군 초상화(發明家崔茂宣將軍肖像畵) 생졸년 : 1325년(충숙왕 12) ~ 1395년(태조 4) 고려후기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화기들을 제조한 발명가로 본관 영주『永州: 지금의 영천(永川)』이다. 우리나라에서 화약과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처음 제작, 사용하였다. 무관인 그는 고려 말기에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화약과 총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연구에 임하였다. 그 결과, 화약을 만드는 세 가지 재료, 즉 초석·유황·분탄 중에서 유황과 분탄은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초석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화약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중국에서 배우기로 하고, 중국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무역항 벽란도에 가서 중국으로부터 오는 상객들 중에서 초석(염..

충무공 이수일장군 영정

▲충무공 이수일장군 영정(忠武公 李守一將軍 影幀) [문화재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제178호 [명 칭] 이수일진무공신록권및영정(李守一振武功臣錄券 및 影幀) [지정일] 1995.06.30 [소재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47-5 [소유자] 경주이씨국당공파 ●충무공 이수일(忠武公 李守一) [무과] 선조(宣祖) 16년(1583) 계미(癸未) 별시(別試) 병과(丙科) 338위. ------------------------------------------------------------------------------------------------------------------------- 1554(명종 9) - 1632(인조 10)때인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추적(秋適) 초상화

2006년 권오창 화백이 그린 추적 영정. / 사진 : 대구 달성군 추계추씨(秋溪秋氏)의 입향시조이다. 호는 노당(露堂). 충렬왕 초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왕 24)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를 이용, 자신의 고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을 현(縣)으로 승격시키려고 할 때, 그 서명을 거부하자 황석량의 참소로 순마소(巡馬所)에 투옥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시랑으로서 북계 용주(龍州)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말년 안향(安珦)에 의하여 발탁되어 이성(李晟)·최원충(崔元冲) 등과 함께 7품 이하의 관리, 혹은 생원들에 대한 유학교육을 담당하였으며, 한문교양서인 『명심보감』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민부상서(民部尙書)·예문관제학에 이르..

추적(秋適)

■ 추적(秋適) 추적『秋適,1246(고종 33)~1317(충숙왕 4)』은 충렬왕 때 사람으로 성품이 활달하여 얽매임이 없었다. 그는 호(號)가 노당(露堂)이고. 본관은 추계(秋溪)로, 아버지는 추영수(秋永壽)이고 밀성[밀양]의 입향조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었다가 직사관(直史館)으로 발탁되었고 거듭 승진해 좌사간(左司諫)이 되었다. 1298년(충렬왕 24)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가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기 고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 오늘날 충남 당진시 합덕읍)을 현(縣)으로 승격시켰다. 추적이 문안에 서명을 거부하자 황석량은 내수(內竪: 내시) 석천보(石天補)·김광연(金光衍)과 함께 기회를 노려 그를 참소하니 왕이 성을 노해 즉시 형구를 채워 순마소(巡馬所)에 수감..

지녹연(智祿延) 영정

지녹연(智祿延, 1069년 ~ 1126년) 지녹연(智祿延, 1069년 ~ 1126년)은 고려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봉주(鳳州). 상장군(上將軍)·우복야(右僕射) 지채문(智蔡文)의 증손자이다. 1086년(선종 3년)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음서로 내알자(內謁者)에 보임되었고, 동북면병마판관(東北面兵馬判官)으로 나가서는 빼어난 재간으로 칭송을 받았다. 1104년(숙종 9년)에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고, 1105년(혜종 즉위년)에 내시지후(內侍祗候)로서 주부동정(注簿同正)인 은원충(殷元忠) 등과 함께 여진 정벌을 위하여 동계(東界)의 산천을 순시하였다. 1107년에는 시어사(侍御史)로서 경상진주도안무사(慶尙晉州道安撫使)가 되어 백성들의 질고를 묻고 수령의 치적을 살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