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고려시대 인물

추적(秋適)

야촌(1) 2021. 8. 14. 23:41

■ 추적(秋適)

 

추적『秋適,1246(고종 33)~1317(충숙왕 4)』은  충렬왕 때 사람으로 성품이 활달하여 얽매임이 없었다. 그는 호(號)가 노당(露堂)이고. 본관은 추계(秋溪)로, 아버지는 추영수(秋永壽)이고 밀성[밀양]의 입향조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었다가 직사관(直史館)으로 발탁되었고 거듭 승진해 좌사간(左司諫)이 되었다. 1298년(충렬왕 24)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가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기 고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 오늘날 충남 당진시 합덕읍)을 현(縣)으로 승격시켰다. 

 

추적이 문안에 서명을 거부하자 황석량은 내수(內竪: 내시) 석천보(石天補)·김광연(金光衍)과 함께 기회를 노려 그를 참소하니 왕이 성을 노해 즉시 형구를 채워 순마소(巡馬所)에 수감하게 했다. 압송하는 사람이 추적더러, 원한다면 골목길로 갈 수도 있다고 후의를 보였으나 추적은 거절했다.

 

​“죄를 저지른 자를 모두 해당 관청으로 보낼 때 대궐에서 형구를 채운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으니 내가 큰 거리를 지나면서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

간관(諫官)으로서 형구를 차는 것 또한 영광이니 어찌 아녀자가 거리에서 얼굴 가리는 것처럼 행동하겠는가?” 나중에 민부상서(民部尙書)·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까지 지내다 벼슬을 마쳤다. 추적은 늙어서도 식사를 잘 했는데,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손님을 대접할 때에는 부드러운 흰 쌀밥에 생선을 썰어 국이나 끊이면 된다. 무엇 하러 많은 돈을 들여 산해진미를 차릴 필요가 있겠는가?”같은 시기에 이인정(李仁挺)과 채우(蔡禑)라는 사람이 있었다.

츌전자료 : 고려사 열전 권106 - 68[열전19-추적(秋適)]

 

 

2006년 권오창 화백이 그린 추적 영정. / 사진 : 대구 달성군

'■ 인물 > 고려시대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 제2대왕 혜종 왕무  (0) 2020.02.23
고려 제2대왕 혜종[왕무] 사망원인  (0) 2020.02.23
윤언이(尹彦頤)  (0) 2017.10.30
체원(體元)  (0) 2014.10.15
일연(一然)스님 - 삼국유사 저자  (0) 201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