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안동지방에 수령의 선정비가 없는 이유

야촌(1) 2021. 6. 3. 01:56

대가들은 조선왕조가 선량하고 현명한 관료들이 이끄는 도덕적인 국가라고 생각하였다.

일례를 들면 그들은 퇴계의 조언에 따라서 지방 수령들의 선정을 기념하는 송덕비를 세우지 않기로 하였다.

 

임내신이 1543~1549년 사이에 예안의 수령으로 선정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선정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우고자 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퇴계는 모든 수령이 선정을 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므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불필요하고 낭비가 디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윤리적인 정부와 윤리적인 지역사회에 대한 퇴계의 유교사상에 따라서 안동의 대가들은 자신의 마을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안동 지역에서 가장 번화하고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부내에 있는 수령의 아문(衙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았다.

 

마을에서는 대가들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질서있고 조화로운 관계에 근거하여 도덕적 이상 사회를 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역사회규범인 향약을 제정했으며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향규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양반, 서얼, 향리, 상인, 천민, 노비 등)이 유교 윤리를 실천하게 함으로써 위계적 사회질서를 권장하려는 것이었다. 일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안동학연구 제1집>, 안동의 대가 세족 : 문화 귀족의 정립을 중심으로, 川島蕂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