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정권의 패륜을 본 인재들, 목숨은 줘도 마음은 안 줘.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87호] 20081108 입력] ■ 정권의 패륜을 본 인재들, 목숨은 줘도 마음은 안 줘. 악역을 자청한 두 임금 세조 ③ 사육신· 생육신 가치관은 그 어떤 물질보다 중요하다. 세조는 세종이 집현전을 통해 확립한 유교적 가치관을 뒤집었다. 유학자들은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권은 잡았지만 온갖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세조를 축출하려는 시도가 잇따랐고, 유학자들이 출사를 거부하는 등 숱한 사회적 자산이 낭비되었다. 세조 2년(1456) 6월 1일 아침. 호조참판이자 외삼촌인 권자신(權自愼:현덕왕후의 동생)의 절을 받는 상왕 단종의 가슴은 뛰었다. 『세조실록』은 이때 단종이 권자신에게 ‘긴 칼을 내려주었다’고 전한다. 상왕과 세조가 창덕궁 광연전(廣延殿)에..

역사의 시계 거꾸로 돌린 명분 없는 쿠데타.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86호] 20081101 입력 ■ 역사의 시계 거꾸로 돌린 명분 없는 쿠데타 악역을 자청한 두 임금 세조 ② 헌정질서 파괴 명분은 때로 실용보다 중요하다.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힘이 명분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리더가 많을수록 사회는 혼란스럽게 마련이다. 수양은 명분이 없어도 힘만 있으면 국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세종 시절 김종서는 여진족을 정벌하고 두만강 하류에 6진을 설치했으나 수양에게 살해됐다.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답게 그는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중략)...긴 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는 시를 남겼다. 김종서에게 고삐를 잡힌 말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는지 달(단종을..

리더의 오판이 국가의 비극을 잉태하다.

■ 리더의 오판이 국가의 비극을 잉태하다. 악역을 자청한 두 임금 세조 ① 시대를 잘못 읽다 리더에게는 시대를 읽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시대를 읽지 못하면 사회를 이끌어갈 수도, 통합할 수도 없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인물이 권좌에 오르면 그 사회는 큰 불행에 처하게 된다. ↑단종이 즉위한 해(1452년) 수양대군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 훗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명의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의 오문(정문에 해당) 쪽에서 바라본 태화전(太和殿)의 모습. 1452년 5월 14일 조선의 제5대 임금 문종이 승하했다. 재위 2년, 한창 때인 39세였다. 『문종실록』은 “신하가 모두 통곡하여 목이 쉬니 소리가 궁정(宮庭)에 진동하여 그치지..

왕에게 동지는 없다, 신하만 있을 뿐.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82호] 20081005 입력 ■ 왕에게 동지는 없다, 신하만 있을 뿐.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민무질 묘. 태종의 처남 4형제 중 유일하게 묘가 전한다. 민무구· 민무휼· 민무회의 묘들은 실전이라고 한다. 민무질은 제주도에서 자진하여 문종 때 이곳으로 이장 하였 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민무질 묘 앞에 있는 민무질 신도비. 악역을 자청한 두 임금 태종 ③ 외척과 공신 숙청 1402년(태종 2년) 3월 7일. 태종은 성균악정(成均樂正) 권홍(權弘)의 딸 권씨를 ‘어진 행위가 있다는 이유로’ 후궁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혼인을 주관하는 가례색(嘉禮色)까지 설치했으나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원경왕후 민씨가 태종의 옷을 잡으며 “제가 상감과 어려움과 화란(禍亂)..

‘집안’에 갇힌 아버지, 칼로 맞선 아들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81호] 20080927 입력 ■ ‘집안’에 갇힌 아버지, 칼로 맞선 아들 악역을 자청한 두 임금 태종 ②골육상쟁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살곶이다리(箭串橋·전곶교)이다. 1420년(세종 3년) 세종이 태종을 위하여 다리를 놓을 것을 명하고, 영의정 유정현(柳廷顯)과 당대 일류 건축가인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으로 하여금 직접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길이 78m로 당시 가장 긴 다리였다. 개국은 했으나 불안한 신생 왕조였다. ‘조선이 과연 얼마나 갈까?’라는 의구심이 짙게 깔려 있었다. 개국 초 감찰 (監察) 김부(金扶)가 좌정승 조준(趙浚)의 집 앞을 지나다가 “비록 큰 집을 지었지만 어찌 오래 살게 되겠는가? 뒤에 반드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것이다”고 ..

하늘이 시킨일 오명(汚名)을 마다하리.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80호] 20080920 입력 ■ 하늘이 시킨 일 오명(汚名)을 마다하리. 악역을 자청한 두 임금 - 태종 ① 정몽주 제거 ↑명제: 태종우(太宗雨), 규격: 95x64cm, 그림: 우승우(한국화가) 모든 군왕(君王)은 성군(聖君)으로 기억되고 싶어한다. 누가 폭군(暴君)·용군(庸君·어리석은 임금)으로 기억되고 싶겠는가? 그러나 원한다고 모두가 성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군주 개인의 노력만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대가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 시대는 악역과 가시밭길을 요구한다. 이때 악역과 가시밭길을 거부하다 용군이 된 지도자는 많다. 반면 묵묵히 악역과 가시밭길을 걸음으로써 후대에 평가받았던 군주는 소수이다. 스물일곱 조선 군주 중 악역을 자청했던 두 ..

공자는 우리와 한핏줄인가?

■ 동의족(東夷族)과 공자 고대 한민족은 중국에 의해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리어 젔 다. 오랑캐(夷)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변방에 살던 미개한 부족들"이라고 나와 있다. 우리는 "오랑캐"라고 배웠으며, 또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다. 아래는 중국의 사서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1. "이(夷=오랑개 이)는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며, 활궁(弓)자와 큰 대(大)에서 따온 글자로, 그 사람들은 어질고 오 래 살며,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 2.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순리(順理)를 따르는 성향이 있으나, 오직 동이(東夷)만이 큰 것을 따르니 대인이다. (惟東夷從大大人也) 이(夷)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살기 마련이기 때문에(그곳은), 죽지 않는 군자 가 있는 나라이다. (夷俗仁仁者壽故..

역관 이화종이 요동에서 보고 들은 얘기를 말함 - 역관의 첩보활동

역관(譯官) 이화종(李和宗)이 요동에서[압해(押解)하는 일 때문에 갔었다.] 돌아와 아뢰기를, “신이 지난 3월 4일 강을 건너서 6일에 탕참(湯站)에 들어갔더니 수보관(守堡官) 한승경(韓承慶)이 ‘무슨 일로 왔는가?’ 하고 묻기에, 신이 야인들에게 잡혔다가 우리에게로 탈출해온 중국 사람 때문에 왔다고 답했습니다. 승경이 또 ‘그대 나라 사람들은 이치를 따르지 않는 자가 많아 내가 공문(公文)을 발송했는데 그대는 알고 있는가?’ 하므로 신이 안다고 대답하고 이어 자문(咨文)의 내용에 따라 공손히 ‘우리 나라의 주리(州吏)가 실례한【바로 의주(義州)의 김철(金鐵)의 일임.】 것인데 전하께서 듣고 매우 미안하게 여겼다. 전에 중국에 들어가는 사신은 으레 통사를 보내어 예로써 문후를 했고, 본보의 대인(大人)..

석작(石碏)과 유하혜(柳下惠)

■ 석작(石碏) 위(衛) 나라 환공(桓公) 때의 충신(BC 734~719) ↑중화 석성시조 석작 상 춘추시대 위(魏)나라 임금 환공(桓公)은 이복동생으로, 서자(庶子)였던 주우(州旴)에게 살해당했다. 장공(莊公)은 주우(州旴)를 사랑한 나머지 방탕하게 길렀고 석작대신(石碏大臣)은 이를 염려하였다. 석작(石碏)의 아들 석후((石厚)는 주우를 도왔다. 임금이 된 주우는 지위를 굳히기 위해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등의 힘을 과시해 보았으나 백성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벼슬에 물러나 있는 석작에게 아들 석후가 인심 획득 방법을 물었다. 석작은 . 그러기 위해서는 왕실과 사이가 좋은 진(陳) 나라에 중계를 부탁해 보라'고 했다. 석작은 미리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렇게 전했다. '주우(州旴)와 석후((石厚)는 임금..

진목공(秦穆公)

■ 진목공(秦穆公) BC760-510 춘추5패의 한사람 백리해(百里亥)와 그의 의형 건숙(蹇叔) 등을 등용해서 국정을 정비(整備)하고 동으로는 하서(河西)를 빼앗고 서로는 서성(西戎)을 쳐서 패자(覇者)가 되었다.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현군(賢君)으로 전한다. 백리해(百里亥) 같은 명신(名臣)을 얻었으며 망명(亡命)중인 진(晋)의 공자 중이(重耳)를 후(厚)하게 대접했으며 진혜공(晉惠公) 이오가 두 번이나 속였어도 흉년이든 진(晋)나라 백성을 위해 곡식을 빌려준 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