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리지(地理志)

고령군(高靈郡)

야촌(1) 2010. 12. 8. 14:47

■고령군(高靈郡)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郡)으로. 동쪽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서쪽과 남쪽은 경상남도 합천군, 북쪽은 성주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10′∼128°29′, 북위 35°37′∼35°51′에 위치하며, 면적 383.97㎢, 인구 34,522 명(2004 12월말년)이다.

 

1개 읍 7개 면 96개 리(里)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717-703)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왕릉로 55 (지산리 190번지)이다. 

 

고령군(자연환경)

 

소백산맥의 일맥인 가야산이 군의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나와 문수산(文壽山, 484m)· 미숭산(美崇山, 734m) 등의 산지를 이루고, 그 곁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뻗어 있는 귀산(耳山, 311m)이 있으며 고령읍의 주산(主山)을 이룬다.

 

그리고 가야산의 일맥인 만대산(萬代山, 688m)· 노태산(魯泰山, 480m)· 소학산(巢鶴山, 489m) 등의 산지가 연결되면서 경상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군의 서남쪽은 험한 산줄기로 이어져 있고, 동쪽은 달성군과의 경계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고 있는 천연의 요새라 할 수 있다.

 

가야산에서 발원한 소가천(小伽川)· 대가천(大伽川)· 금천(錦川)· 안성천(安城川)· 회천(會川) 등의 여러 하천들이 여러 갈래로 흘러내려 고령에서 합류해 우곡면 하부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대가천은 가야산 북동쪽에서 발원해 성주군 수륜면을 거쳐 운수면을 관통해 남류하다가 고령읍에서, 가야산 동남쪽에서 발원해 덕곡면을 가로질러 남동류하는 소가천을 만나 금천이 된다.


금천은 고령읍 동부를 거쳐 우곡면 남부를 남류하다가, 가야산 남쪽에서 발원해 해인사 홍류동 계곡을 거쳐 합천군 가야면과 야로면을 지나 고령군 쌍림면을 동서로 관류하는 안성천과, 고령읍 남부와 개진면 북부에서 합류해 회천이 된다.

 

회천은 개진면 서부를 남류해 우곡면 남부에 이르러 낙동강 중류로 흘러 들어간다. 이 지역은 평지보다 구릉이 많으나, 낙동강의 서안과 지류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1월 평균기온 -2.5℃, 8월 평균기온 26.7℃, 연평균기온 13.4℃이며, 연강수량은 1,181.7㎜이다.

 

고령군(유물·유적)

 

고령은 6가야 가운데 하나인 대가야의 도읍지로서, 역사적인 유물·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선사시대 유적으로 고령읍 장기리의 고령양전동암각화(高靈良田洞巖刻怜, 보물 제605호)와 지석묘가 있으며, 또 민무늬토기와 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고령읍에는 대가야국 성지가 있고, 역대 왕이 식수로 사용하던 왕정(王井)이 남아 있다. 성지로는 고령읍 중화리의 고령주산성(高靈主山城, 사적 제61호)을 비롯해 운라산성(雲羅山城)· 만대산성·의봉산성 등 가야시대의 산성과 망산산성·풍곡산성· 노고산성지· 의병성지 등 임진왜란 당시의 성지가 남아 있다.

분묘로는 1977년에 발굴조사된 고령읍의 고령지산동고분군(사적 제79호)을 비롯해 고령고아동벽화고분(사적 제165호)· 본관동고분군· 중화동고분군, 덕곡면의 후암동고분군, 운수면의 월산동고분군, 성산면의 박곡동고분군, 쌍림면의 용동고분군 등이 전지역에 걸쳐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802년(애장왕 3)에 창건된 쌍림면 용리의 반룡사(盤龍寺) 경내에 반룡사다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반룡사동종(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8호) 등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고령읍의 고령지산동당간지주(보물 제54호), 개진면의 고령개포동석조관음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고령읍 연소리에 고령향교(高靈鄕校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9호)와 쌍림면 고곡리에 도암서원(道巖書院), 우곡면 월오리에 문연서원(文淵書院), 운수면 운산리에 영연서원(靈淵書院) 등이 있다.

 

고가(古家)로는 쌍림면 합가리에 점필재종택(償畢齋宗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2호)· 도연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평지리에 만남재(萬南齋,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신촌리에 벽송정(碧松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등이 있다.

이외에 우륵(于勒)의 기념탑과 충효의 상징인 쌍림면 고곡리에 김면장군유적(金沔將軍遺蹟, 경상북도 기념물 제76호) 등의 사적지가 있다. 도요지로는 고령읍 내곡리의 가야토기도요지, 고려 말과 조선 전기의 것으로 보이는 성산면의 성산사부동도요지(사적 제71호)와 성산기산동도요지(사적 제72호) 등이 있다.

고령읍 고아리에는 중요민속자료 제30호로 지정된 보부상유품(褓負商遺品)이 있으며, 쌍림면 합가리에 점필재문적유품 및 종가문서(償畢齋文籍遺品―宗家文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9호)와 송림리에 죽유오운종손가소장문적(竹蓬吳澐宗孫家所藏文籍, 보물 제1203호)이 있다.  

 

고령군(교육.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임진왜란 후 1701년(숙종 27) 고령군 서쪽 2리(소재 불명)에서 고령읍 연소리 고대(高臺)에 옮겨 중수한 고령향교가 있다. 서원으로는 김면과 이기춘(李起春)을 향사하기 위해 1666년(현종 7)에 설립된 쌍림면 고곡리의 도암서원(道巖書院)과 1695년(숙종 21) 박정번(朴廷韜)의 강학지소로 건립해 박윤(朴潤)·박택(朴澤)·윤규(尹奎)·박정번·최여설(崔汝楔) 등 5현을 향사했던 우곡면 월오리의 문연서원(文淵書院) 등이 있었다.

또 우곡면 사촌리에는 1711년에 건립해 신덕린(申德隣)· 박은(朴誾)· 정사현(鄭師賢) 등 3현을 향사하다가, 운수면 운산리의 운천서원을 이 곳으로 옮기면서 홍익한(洪翼漢)과  김수옹(金守雍)을 배향한 영연서원(靈淵書院)이 있었는데, 1868년(고종 5)에 모두 훼철되었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7년 개포교회가 중심이 되어 민족 교육기관으로서 개포학교를 설립할 예정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20년 우곡에 처음으로 소학교가 세워지면서 우곡초등학교가 고령군 교육의 중심이 되어왔다.

광복 후 교육기관은 많은 성장을 하였다. 1997년 현재 초등학교 16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3개교와 가야대학교가 있다. 사회단체로는 이 지역 농촌청년들로 구성된 고령군청소년회가 있어 영농후계자 양성과 함께 농사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대가야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는 고령군박물관에는 138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대가야고분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고령군문화원에서는 가야문화권 개발을 위해, 매년 10월 대가야 문화예술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행사는 가야시대 우륵의 추모행사를 중심으로, 가야금병창·합창경연·시화전·한글백일장 등의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사찰 20개, 천주교 성당 6개, 개신교 교회 38개가 있다.


고령군(민속) 

 

[민속놀이]

 

이 지방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는 장승제와 씨름이다. 장승제는 7월백중에 개진면 양전리에서 행해지는데, 풍동이라는 주인공이 장승의 도움으로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장승제는 논매기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 때 세벌 논을 맨다. 백중날 아침에 마을사람들은 논으로 모여 농요를 부르면서 논매기를 한다. 논매기가 끝나면 손발을 씻고 대농가에서 준비한 술과 음식을 먹는다.


이렇게 휴식을 취한 다음에 장승제를 지내는데, 숫총각으로 제관을 삼고 마을의 상머슴을 선두로 해 장승이 있는 곳으로 행진한다. 상머슴이 장승 앞에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농기를 세우면 제관이 제를 지내고, 상머슴이 풍년과 총각·처녀들의 혼사가 이루어지기를 비는 축문을 읽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절을 함으로써 장승제는 끝난다.

 

행사를 마치고 나면 제물과 술을 나누어 먹고 농악놀이를 벌인다. 고령씨름은 100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해 많은 장사를 배출했으나, 최근에 들어서면서 빛을 잃어가고 있다. 고령씨름은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엄격한 총각씨름판이 별도로 있었다. 씨름의 최종승부를 판막음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이긴 사람을 장사라고 하며 장사에게는 황소를 상으로 주었다.

[동 제]

 

동제는 대개 정월대보름에 지내고 더러는 날을 받아서 지내기도 한다. 제관은 가족 가운데 출산이나 사망, 그 밖의 부정이 없는 남자 중에서 선택하는데, 대개는 한 명이다. 제관은 미리 목욕재계를 하며 제를 지내는 날에는 전주민이 육식과 오락을 금한다. 그리고 신역과 제관집 앞에는 황토를 깔아서 부정을 피한다.


제물은 제관이 준비하는데, 경비는 동민이 공동으로 부담하고 제를 지낸 다음 날은 전동민이 음복을 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이 때 동회를 겸하기도 한다. 
 

고령군(설화·민요) 

 

[설 화]

 

고령에는 대가야 건국설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정견모주설화 正見母主說話〉와 〈난생설화 卵生說話〉가 있다. 〈정견모주설화〉는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와 천신 이비가(夷毗訶)가 서로 감응해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腦窒朱日)과 금관국(金官國)의 왕 뇌질청예(腦窒靑裔) 두 아들을 낳았는데, 주일은 이진아시왕(伊珍阿脈王)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라고 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최치원(崔致遠)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 자세히 나온다. 〈난생설화〉는 지금의 김해인 가락국의 고도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 아홉 촌락을 이루던 이 지방이 점점 발전하자 유능한 군왕이 필요하게 되었다.

삼월삼짇날에 구간(九干)들이 시냇가에 모여 수계놀이를 하고 있는데, 북쪽 구지봉(龜旨峰)에서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구간들이 구지봉에 올라가서 들으니 “여기 사람이 있느냐?”, “예 저희가 여기 있사옵니다.”, “여기가 어디인가?”, “예, 구지봉이로소이다.”,

 

“나는 황천의 분부로 이 땅의 임금이 되었으니 너희는 ‘거북아 거북아 네 목을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이렇게 노래부르면서 춤을 추어라. 이것이 곧 즐거이 임금을 맞이하는 것이니라.”고 해, 구간들은 그 말대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니 하늘에서 분홍색 보에 싸인 금함이 내려왔다.

거기에는 여섯 개의 황금알이 들어 있었는데, 이튿날 여섯 개의 알에서 여섯 왕자가 탄생하였다. 그 달 보름에 맨 처음 탄생한 왕자를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김수로왕이다. 왕은 국호를 ‘대가락’이라 해 금관성에 도읍을 정했으며, 다섯 아우를 5가야의 왕으로 각각 봉하였다.

아라가야국은 지금의 함안, 고령가야국은 지금의 상주 함창, 대가야국은 지금의 고령, 성산가야국은 지금의 성주, 소가야국은 지금의 고성이다.

이 밖에도 고령지방의 전설로는 〈박부자와 용마등 이야기〉·〈효자를 도운 황새 이야기〉·〈봉화산처녀곰이야기〉·〈미숭장군과 애마 이야기〉·〈신동의 비녀이야기〉·〈뒤남곡에 얽힌 이야기〉·〈마검담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민 요]

 

이 지방에 전승되는 민요로서는 〈모심기노래〉·〈김매기노래〉·〈보리타작노래〉등 노동요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개진면 일대에서 전승되는 〈모심기노래〉는 허튼모를 심을 때 남성교환창으로 부르던 농업노동요이다.

농부들이 두 패로 나누어져, 한쪽 패가 선창하면 다른 패가 이를 받아 회답한다. 사설은 낙동강 중류 연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이나, 간간이 이 지방의 지명이나 특수한 흥미거리들이 섞여 있어 짙은 향토성을 풍기고 있다.

노래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모야모야 노랑모야 언제커서 열매열래.

이달크고 저달커서 칠팔월에 열매맺지······

 

산아산아 미숭산아 얼굴고와 미숭이냐.

우리마을 아가씨들 네닮아서 예쁘다네·

 

물아물아 가야물아 이논뱀이 채워다오.

우리에미 젖줄같은 비은공에 모자란다······

 

산아산아 가야산아 이비가라 가야산아.

산아산아 가야산아 정견모주 가야산아······.”

〈김매기노래〉도 남성들의 교환창이다. 이웃의 농부들이 품앗이로 모여 각기 목청을 돋우어 번갈아 이어부르는데, 선창꾼과 후창꾼의 수를 인위적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저절로 같은 수로 나누어지게 마련이다.

 

“장장춘하 긴긴해에 장창한 긴이랑을 언제나 다매고 쉬어나볼까·

목화야 곱게곱게 잘피어다고 시부모수발이 늦어간다······.”

〈보리타작노래〉는 사설도 재미있거니와 가락도 흥겨워서, 도리깨타작이 아닐 때라도 흔히 불린다. 목도리깨꾼이 사설로 메기면 종도리깨꾼이 여음으로 받는데, 목도리깨꾼은 노래를 부르면서 도리깨로 두드릴 곳을 지시하거나 뒤집거나 흩뜨리라는 뜻을 행동으로 나타낸다.

이 〈보리타작노래〉는 부녀자들도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전승되고 있다.

 

“시작한다. 응헤야.

잘때린다. 응헤야.

있는힘을. 응헤야.

다하여서. 응헤야.

얼씨구나. 응헤야.

잘때린다. 응헤야.

넘어간다. 응헤야.

또때린다. 응헤야······.”

이 밖에 이 지방의 〈지신밟기노래〉도 특수하다. 사설은 이 지방의 성악(聖岳) 가야산의 여신인 정견모주가 천신인 이비가와 짝이 되어 감생(感生)한 왕자에 의해 대가야의 건국이 이루어지고, 이 두 천신·산신이 힘을 합해 천지 정기를 모아 이 고장 산천을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고령군(산업·교통)   <成炳禧> 

 

이 군의 총경지면적은 7,492㏊로, 경지율은 20.2%이다. 이 가운데 논이 5,352㏊로 약 71%를 차지하고 밭이 2,140㏊로 약 29%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령읍에 있는 중화저수지는 이 지역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농가수는 6,358가구로서 총가구수의 52%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콩·땅콩·수박·참외·딸기 등의 생산이 많다.

 

특히 다산면 일대에서는 예로부터 당귀·적작약·백작약·목단·토천군 등의 약초재배도 활발하다. 낙동강의 풍부한 용수확보로 공업입지가 성숙되어 있으며 근교농업이 발달했고 시설원예작물의 생산량이 많다.

 

딸기 5,296톤, 향부자 1,556톤으로 도내(道內) 1위, 참외 1만285톤으로 도내 2위, 수박 1만9967톤으로 도내 3위, 돼지는 5만9000두로서 도내 4위를 차지한다.

 

특산품으로 전통도자기·고령기와· 고령딸기· 메론· 참외와 은은하고 순한 민속주인 국청, 고령읍 본관리의 향토주인 본관동스무주(本館洞二十日酒)가 유명하다.

 

고령에는 질 좋은 고령토가 많이 나기 때문에 도예가들의 작업실이 많이 있고, 예로부터 고령도자기는 정교한 문양을 자랑했다. 특히 우리 나라 최초로 가야토기를 재현해내어 더욱 유명해졌다.


개진면에는 기와공장이 있어 고령토를 이용해 우리 나라 전통기와를 생산하고 있다. 고령딸기는 당도가 높고 모양과 빛깔이 아름다워 전국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으며, 일본·러시아·홍콩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또한 메론과 참외도 향이 독특하고 당도가 뛰어나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그 외 운수면 대평리에서는 자·녹·흑색 등의 우아한 색깔과 견고성을 가진 캔 원석(原石)을 사용해 만든 운수벼루〔雲水硯〕를 일본·대만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1994년 현재 임야면적은 전체면적의 약 65%를 차지하고 입목축적은 675,119㎥, 임산물생산량은 91만6633㎏으로 밤·호두·대추·도토리·버섯 등의 임산물이 많이 난다.


광구수는 27개로 가행광구는 1개이고 그 외 26개는 미가행광구이다. 광산물로는 고령토가 많이 산출된다. 농공단지는 다산·개진·쌍림에 3개의 단지가 소재하고 총면적은 106만0690㎡이고 108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상업활동을 보면《임원경제지》에 의하면 1830년경 군내에는 개시일을 알 수 없는 고령읍내장과 안림장(安林場)이 열려, 주로 농산물이 거래되었다고 한다. 1922년에는 군내에 고령장과 득성장(得成場)이 열렸으며, 특히 고령장에서는 소가 많이 거래되었다고 한다.


1957년에는 11개로 늘어났으나, 1960년대 이후 대구와의 교통이 편해지고, 상설점포가 증가하면서 정기시장의 기능이 점차 쇠퇴해 1970년대에는 고령·득성·다산·가륜·백산 등의 5일장만 열렸고, 1986년 현재 그 중에서 득성·다산 2개의 장만이 개설되고 있다.

 

특히 다산장에는 참외와 수박, 득성장에는 참외가 많이 반출되고 있다. 1994년 현재 고령·다산에 2개의 정기시장이 분포하고 있다.


교통은 대구∼거창, 김천∼합천간의 국도와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지방도 등이 있으며, 88올림픽고속도로가 군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고 있어 편리하다.

 

고령군(관광) 

 

가야산국립공원이 있는 명승 관광지인 동시에 가야국의 유적지로서 많은 문화재가 산재하는 사적관광지이기도 하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고령읍 지산리의 가야고분군·대가야유물전시관·고령향교와 주산성, 그리고 대가야 왕궁의 우물터였다는 왕정, 팔만대장경을 날랐던 옛 포구인 개진면의 개경포(開經浦), 다산면의 사문(沙門)나루터,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동식물의 분포가 다양해 군 자연관찰원으로 지정된 덕곡면의 노리, 반룡산의 반룡사, 그령읍의 8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보물 당간지주와 높이 3m, 폭 6m가량의 알터암각화, 성산면 사부리도요지, 기산리도요지 등이 있다.

 

그 중 고령의 진산 주산에는 200여기의 대가야시대 무덤들이 남쪽 능선을 따라 모여 있으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주산 입구에 순장제도의 특수성과 대가야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순장묘 모형관을 건립중이다. 그리고 대가야의 왕궁이 있었던 궁궐터에 대가야유물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지산리 가야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개경포는 고령읍에서 동쪽으로 약 6㎞ 떨어진 개진면 개포리의 옛 포구를 말하며, 개산포(開山浦)·개포(開浦) 또는 개진포(開津浦)라고도 한다. 낙동강이 크게 곡류하는 곳에 있는 나루터로서 원래는 개산포라 불렀으나, 이 포구를 통해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운반되었다는 뜻으로 ‘산(山)’자 대신 ‘경(經)’자를 넣어 개경포라 부른다.


이 곳은 기암절벽 아래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며, 강물에는 잉어·붕어·숭어·뱀장어·메기 등 많은 고기가 떼지어 살고 있다. 주말이 되면 대구와 영남 일대의 낚시꾼뿐만 아니라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모여들고, 뱃놀이와 매운탕의 일미를 즐긴다.

 

그 외 가야금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우륵의 유적과 가야금 모양의 우륵비가 서 있는 고령읍 금곡(琴谷), 고령읍 중화리에 있는 관개용 저수지로 일명 낫질못이라 하는 중화저수지(中化貯水池)가 있다.


중화저수지는 도내에서 이름난 낚시터로 주종은 잉어와 붕어이며 대어가 잡히기로 유명하고 주변경관이 수려해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리고 매년 가을에 대가야문화예술제가 열린다.


이 군은 대구에서 근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개설된 대구∼해인사간 도로의 중간지점이고 88올림픽고속도로가 군내를 관통하고 있어 관광객의 유치가 용이하고 대가야국시대의 많은 유물들이 집중 분포해 관광지로서의 개발 전망이 밝다. 
 

고령군(읍· 면) 

 

[고령읍(高靈邑)]

 

군의 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47.37㎢, 인구 1만1344명(1999년 현재). 읍소재지는 쾌빈동이다. 본래 고령군 소재지이므로 읍내면이라 해 쾌빈·정동(亭洞)·헌문(軒門)·장기(場基)·고아(古衙) 등 14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곡면의 내상·동촌 등 7개 이이다. 고양군의 ‘고(高)’와 영천현의 ‘영(靈)’을 따서 고령면이 되었다.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서북쪽의 가야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큰 산줄기가 읍의 서쪽에서 미숭산(美崇山, 734m)을 이루고, 그 곁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뻗어 읍의 중심부인 지산리에서 주산(主山 또는 耳山, 311m)을 이룬다.

읍의 동쪽에는 금산(286m)이 있으며, 주산과 금산 사이에는 가야산 북동쪽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과 동남쪽에서 발원한 소가천(小伽川)이 읍내 본관리에서 합류하여 금천(錦川)이 되고 읍의 남쪽에서는 이 금천과 안림천(安林川)이 합류해 회천(會川)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 연안에는 평야가 발달했는데, 땅이 기름지고 수리가 대단히 좋아 농작물이 대량 생산된다. 총경지면적 9.62㎢로 20.5%, 임야면적 29.83㎢로 63.6%, 기타 15.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2.23㎢로 23.2%를 차지하고 밭이 7.39㎢로 76.8%를 차지해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대구의 근교 농촌지역으로서 원예작물을 재배해 농가소득을 증대시키고 있다. 호두·대추·도토리·송이버섯·산수유 등 임산물이 생산되고 있으며 돼지·닭·소의 사육도 행하여진다. 본관리의 향토주인 스무주와 지산리의 수시감〔水煤〕이 유명하다. 88올림픽고속도로의 입체교차로가 읍 가까이에 있어 큰 발전이 기대된다.

옛 대가야의 중심지로서 많은 유적이 남아 있으며, 문화유적은 지산리에 고령향교·당간지주·고분군·주산성, 고아리에 벽화고분 등이 있으며, 연소리에는 대가야유물전시관과 대고령향교, 그리고 우륵기념비가 있다. 또한 고아리에는 고령좌사유품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3개교와 가야대학교가 있다. 쾌빈(快賓)·고아(古衙)·헌문(軒門)·장기(場基)·연소(延訴)·지산(池山)·본관(本館)·저전(楮田)·내상(內上)·신(新)·중화(中化)·내곡(內谷)·외(外) 등 13개 이가 있다.


[개진면(開津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51㎢, 인구 2,942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개포리이다. 본래 고령군 지역으로 구곡마을의 이름을 따서 구곡면이라 go, 개포·시례·한제(漢制)·오사·광도(廣道)·구곡·봉동(鳳洞) 등 7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천면의 신안·직·송천(松泉)·반운·양전·내동(內洞) 등의 6개 이와 현풍군 진촌면의 인안·치산(稚山)·백산(栢山)·적산(笛山)·옥동(玉洞)·성·부·창동(倉洞) 등 8개 이를 병합하였다.

개포(開浦)와 진촌(津村)의 이름을 따서 개진면이 되었다. 이 면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좁다. 동쪽으로 낙동강이 곡류하고, 서쪽으로는 회천(會川)이 남류하며, 그 연안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양하천의 평야를 제외한 면의 대부분은 구릉성 산지가 차지하고, 북부에 최고봉인 제석산(帝釋山, 387m)이 솟아 있다.

총경지면적 10.47㎢로 26.6%, 임야면적 22.81㎢로 57.8%, 기타 15.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00㎢로 38.2%를 차지하고 밭이 6.47㎢로 61.8%를 차지go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쌀과 보리를 생산하며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땅콩·수박·참외·무·배추 등을 생산한다. 그리고 밤·표고버섯·토석류 등의 임산물과 돼지·닭 등의 사육이 활발하다. 예로부터 옥산·구곡 등지를 중심으로 기와를 많이 구웠고, 마을의 이름도 와나루(와진) 또는 기왓골(와촌)로 불렸으며, 땅을 파면 옛 기왓골의 흔적이 나온다.

 

현재는 기와공장이 있어 고령기와를 생산하고 있다. 반운리는 농사 외에 축산업이 활발하다.
교통은 면내에 구지∼고령, 개진∼화원간의 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양전리의 암각화, 개포리의 관음보살좌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개포(開浦)· 양전(良田)· 반운(盤雲)· 신안(新安)· 직(直)· 오사(吾士)·구곡(九谷)· 옥산(玉山)· 부(釜)· 성(省)· 인안(仁安) 등 11개 이가 있다.



[다산면(茶山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5.90㎢, 인구 7,483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리리이다. 본래 다사지현(多斯只縣) 또는 답지현(沓只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하빈현(河濱縣)으로 고쳐지고 수창군(壽昌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 경산부에 소속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대구부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성주군에 소속되어, 다기방(茶基坊) 또는 다산방(茶山坊)과 벌지방(伐知坊)이 되었다. 1906년에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산면이 되어 10개 이를 관할하였다.

면의 서부와 서남부는 100m 전후의 구릉성 산지이나 북부·동부 및 동남부는 낙동강 본류가 둘러싸고 곡류하면서 넓은 충적평야와 사지(砂地)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12.29㎢로 26.8%, 임야면적 23.40㎢로 50.9%, 기타 22.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15㎢로 33.8%를 차지하고 밭이 8.14㎢로 66.2%를 차지go 밭농사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의 생산이 많으며, 가지·고추·시금치 등의 소채류와 당귀·적작약·목단·천궁 등의 약용작물, 황색잎담배·수박·참외·배·감의 생산도 많다. 또한 대추·도토리·산수유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돼지·닭·소 등의 가축사육도 활발하다.

면의 남동경계를 따라 개진∼화원간의 도로가 통과하며, 위천∼김천간의 도로가 남서부를 지나 고령·성주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나정리에 용수암(龍首巖), 곽촌리에 집동방구, 노곡리에 조선 숙종이 경치가 좋아 그네를 매고 놀았다는 말구리덤이라는 바위가 있다.

상곡리는 전의이씨(全義李氏)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평리(平理)· 호촌(湖村)· 곽촌(藿村)· 상곡(上谷)· 좌학(座鶴)· 월성(月城)· 노곡(蘆谷)· 나정(羅亭)· 벌지(伐知)· 송곡(松谷) 등 10개 이가 있다.

 

[덕곡면(德谷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55㎢, 인구 1,863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예리이다. 본래 성주군 지역으로 산악이 많아 악곡면이라 했는데 인조 때 신율·기동·가륜 등 15개 이를 관할하다가 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군면통폐합에 따라 원덕곡방(元德谷坊)의 15개 이, 인곡방(仁谷坊)의 13개 이, 관동방(館洞坊)의 2개 이를 병합해 11개 이의 덕곡면으로 개편되었다.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동(聖洞)이 성주군 수륜면으로 편입되어, 현재 10개 이로 구성되어 있다. 면의 서북부·서남부 및 남부에는 가야산맥이 뻗어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가야산 동남쪽에서 발원해 남동류하는 소가천(小伽川)의 유역과 모로현(毛老峴)에서 발원해 동류하는 소가천의 지류가 본리동 부근에서 합류하고 있으며, 하천 유역에 곡저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6.61㎢로 17.1%, 임야면적 28.39㎢로 73.6%, 기타 9.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27㎢로 19.2%를 차지하고 밭이 5.34㎢로 80.8%를 차지해 밭농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를 비롯한 감 등이며 밤·도토리·표고버섯 등의 임산물도 생산된다. 특히 덕곡쌀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반성리의 만하촌에서는 마늘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도로의 해인사∼고령간의 도로가 면을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반성리에 반암서원(盤巖書院)이 있었으나 1868년(고종 5)에 헐리었고, 신도비가 있다. 만하촌에는 1704년(숙종 3)에 정운계(鄭雲溪)의 공을 기리어 지은 형산사(荊山祠)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예(禮)·가륜(加倫)·원송(元松)·노(老)·옥계(玉溪)·백(白)·용흥(龍興)·본리(本里)·반성(盤城)·후암(後巖) 등 10개 이가 있다.


[성산면(星山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8.45㎢, 인구 3,783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어곡리이다. 본래 신라시대에는 일리현(一利縣)에 속했다가 경덕왕 때 성산향(星山鄕)이 되었고, 고려 초에는 가리현(伽利縣)이라 했으며, 현종 때에는 성주목(星州牧)에 소속되었다.

조선 중기 후에 가현면(加縣面)이 되어 13개 이를 관할하다가, 1906년에 고령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과거에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11개 이와 도장면의 3개 이, 고령군 구암면의 4개 이를 병합해, 신라시대 성산향의 이름을 따서 성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면 경계를 따라 북서쪽에 의봉산(儀鳳山, 535m), 남서쪽에 금산(286m), 남쪽에 제석산(帝釋山, 387m)이 솟아 있고, 그 밖에는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의 본류가 남으로 흐르며, 연안에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되고 그 지류를 따라서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8.02㎢로 30.2%, 임야면적 34.23㎢로 70.7%, 기타 12.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8.02㎢로 16.6%를 차지하고 밭이 5.60㎢로 69.8%를 차지해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하고 참외재배도 성하며 도토리·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이 면의 참외는 성주수박과 함께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고탄리에서 양잠, 대흥리에서 양축업과 특용작물, 상룡리에서 감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도로의 군산∼대구간의 국도와 88올림픽고속도로가 면의 중앙부를 통과하고 있어 교통은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사부리와 기산리의 도요지가 각각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용소리에 월산사(月山寺)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어곡(於谷)· 득성(得成)· 삼대(三大)· 오곡(午谷)· 강정(江亭)· 무계(茂溪)· 박곡(朴谷)· 대흥(大興)· 용소(龍沼)·상룡(上龍)·고탄(高呑)·기족(旗足)·기산(箕山)·사부(沙鳧) 등 14개 이가 있다.

 

[쌍림면(雙林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1.36㎢, 인구 5,534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귀원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쌍동면과 임천면으로 개편하였다. 그뒤 1930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쌍동면과 임천면을 병합해 쌍림면이라 하였다.

면의 북부에는 고령읍과 경계가 되고 있는 미숭산(美崇山, 134m), 서남부에는 경상남도 합천군과의 경계가 되는 녹대산(298m)· 만대산(萬代山, 688m)· 노태산(魯泰山, 480m)· 시리봉(408m) 등이 높이 솟아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그 밖에는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이들 산지간을 안림천(安林川)이 동서로 관류하고, 유역 일대에 상당히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1.02㎢로 15.5%, 임야면적 52.05㎢로 73.0%, 기타 11.5%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2.79㎢로 25.3%를 차지하고 밭이 8.23㎢로 74.7%를 차지해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를 중심으로 오이·딸기·고추·마늘·황색잎담배·사과·배·복숭아·자두 등이 있으며, 밤·송이버섯·산나물·토석류 등의 임산물도 생산된다. 안림리 안림들과 평지리의 개방(介坊)마을은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딸기재배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은 도로가 면의 북부를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며, 군산∼대구간의 국도와 고성∼선산간의 국도, 율지∼반룡사간의 도로, 적중∼해평간의 도로 등이 면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용리에 반룡사, 신촌리에 벽송정, 김면장군유적, 귀원리에 사우재(四友齋)라고 부르는 재실이 있는데 이 안에 있는 비각이 유명하다. 합가리에 점필재 김종직의 고택과 도연재, 안화리 안림장터에 암각화가 있다. 합가리는 일선김씨(一善金氏)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리(里)로는 귀원(貴院)· 송림(松林)· 산당(山塘)· 백산(栢山)· 하차(下車)· 신촌(新村)· 산주(山州)· 매촌(梅村)· 합가(合伽)· 신곡(新谷)· 평지(平地)· 안화(安和)· 안림(安林)· 고곡(高谷)· 월막(月幕)·용(龍) 등 16개 이가 있다.


[우곡면(牛谷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03㎢, 인구 2,682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진리이다. 본래는 고령군 하미면 지역으로 도진(桃津) 등 11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촌면·답곡면·왕지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해 우촌과 답곡의 이름을 따서 우곡면이 되었다.

면의 대부분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회천(會川)이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류하고 그 지류를 따라 약간의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면의 동부는 달성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이 회류하고 있어, 곡류부에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총경지면적 10.87㎢로 23.1%, 임야면적 26.17㎢로 55.6%, 기타 21.3%로 이루어져 있다. 논이 4.60㎢로 42.3%를 차지해 밭이 6.27㎢로 57.7%를 차지하여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 등이 있고, 양파·우엉·토란·고추·참깨·들깨 등의 생산도 많다. 월오리 반포(半浦) 개펄에는 수박·감자의 재배가 활발하다.

교통은 지방도가 있으나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도진리에 문연서원터와 유허비·청룡사, 사촌리에 영연서원터와 묘전비, 답곡리 희정골에 곽씨문중의 효자·효부·열녀의 정각들이 있다. 도진리에는 고령박씨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도진(挑津)·예곡(禮谷)·답곡(沓谷)·봉산(鳳山)·월오(月塢)·대곡(大谷)·객기(客基)·연(蓮)·사전(沙田)·야정(野亭)·속(涑)·사촌(沙村)·포(浦) 등 13개 이가 있다.


[운수면(雲水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5.80㎢, 인구 2,620명(1999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평리이다. 본래는 성주군 지역으로 운라산의 이름을 따서 운라면이라 해 운산·월성·법안 등 6개 이를 관할했는데 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 역 개편에 따라 구름면·흑수면·도장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해 운라와 흑수의 이름을 따서 운수면이 되었다.

 

면의 북부 및 동부는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동부경계상에 최고봉인 의봉산(儀鳳山, 535m)이 있다. 가야산 북서쪽에서 발원한 대가천이 관류하고, 하천 유역을 따라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 8.58㎢로 18.7%, 임야면적 32.34㎢로 70.6%, 기타 10.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65㎢로 19.2%를 차지하고 밭이 6.93㎢로 80.8%를 차지해 밭농사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를 비롯한 고추·양파·딸기·배·감 등이다. 대평리에서 캔 원석을 사용한 운수벼루가 이름이 높다. 먹이 잘 갈리고 먹물이 잘 마르지 않으며 글을 쓸 때 붓이 잘 나가고 서예작품을 오랫동안 보존해도 색이 잘 변하지 않는 우수한 벼루이다.

 

교통은 고성∼선산간의 국도가 면의 서부를 통과하며, 적중∼해평간의 도로가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다른 지방과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신간리의 의봉산에 옛날의 봉수지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월산리와 화암리 경계의 귀산에는 운라산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봉평(鳳坪)·대평(大坪)·신간(新間)·(法)·유(柳)·팔산(八山)·운산(雲山)·월산(月山)·화암(花巖) 등 9개 이가 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地理志, 林園經濟志, 新增東國輿地勝覽, 慶尙道邑誌(1832), 嶺南邑誌(1895), 韓國民謠集 Ⅰ(任東權, 集文堂, 1961), 慶北鄕土資料誌(慶尙北道敎育委員會, 1972),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8), 大伽倻의 얼(高靈郡, 1982), 韓國地名要覽(建設部國立地理院, 1982), 慶尙北道史(慶尙北道史編纂委員會, 1983), 慶尙北道地名由來總覽(慶尙北道敎育委員會, 1984), 地方行政區域要覽(行政自治部,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