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리지(地理志)

함양 서상 마을 유례

야촌(1) 2014. 3. 20. 12:10

■추하(楸下. 楸川, 가르네)

 

깃대 봉에서 뻗어 내려 도내까지 흐르는 계곡이 추천인데, 가르내라 하여 이 마을 이름도 옛날에는 가르내라 하였다. 가르내의 윗마을을 추상이라 하고, 서쪽은 옥산, 남쪽은 봉정, 동쪽은 구평이고,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추상, 추하로 부르게 되었다.

 

두 마을이 가르내를 끼고 아래위에 나란히 있다. 북쪽으로는 금선(琴仙)들과 흙두드기들이 펼쳐져있고, 서남쪽으로는 소말 들이 널따랗게 뻗어내려 있다. 사방에 넓은 들을 끼고 들 가운데 시내를 따라 아담하게 자리잡은 곳으로 농경지가 많아 옛날부터 가르내는 살기 좋은 마을이다.

 

마을이 생긴 것은 갈뫼 마을 대로마을 등과 더불어 거의 같은 시대에 생겨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나, 그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고 따라서 마을을 개척한 씨족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담양전씨(潭陽田氏), 김해김씨(金海金氏), 함안조씨(咸安趙氏), 진양강씨,(晉陽姜氏) 등 여러 성씨가 들어와 큰 취락을 이루며 살았으나 한때 2000년 전후 이 마을도 시대에 따라 많이 쇠락하여 빈집들이 많았으나 오늘날엔 도시인들의 귀향 또는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서 옛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

 

마을 입구 솔대지에 수령 육백여년 된 엄청 큰 느티나무가 있어 군 지정 목으로 되어 있고, 마을 위로는 불당골, 작은절골, 큰절골, 호롱골, 메산바위, 말궁구리. 여수바우골, 중산골, 갓바위. 등이 있고 그 위쪽은 백두대간으로 육십령에서 백운산, 전북 장안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마을 앞에는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의 서상 IC가 있다.

이 마을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마을들이다.

 

마을 바로 옆의 솔숲 동산에는 천상재(川上齋)가 있어 유일하게 공자(孔子)를 모시고 봄과 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교사상이 오랜 세월 동안 전례 되어온 마을이다.

 

■추상(楸上, 上村)

 

추하의 윗마을로 깃대봉에서 뻗어내린 추천의 윗마을이다.

마을 위로는 민재. 깃대봉. 오금불. 다래골. 상애골. 성지골. 장구목거리. 폭포거리 등 골짜기 이름과 거리이름이 많다.

 

일제 때 기차철로 공사를 하던 흔적으로 전북과의 터널 공사 중 해방이 되어 지금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마을 서쪽에는 대전, 통영간의 고속도로의 육십령터널(3.17km)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더 위쪽으로는 민재와 깃대봉의 정상으로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동북쪽에는 금선들과 흙두드기들의 널따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서상의 전체로 볼 때 논이 많은 편이다.

 

■구평(九坪, 구리들, 泥龜坪)

 

구평 마을은 옛날에 금선들 흙두드기들 아래에 터를 잡아 십여호가 마을을 형성하였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고 경지정리로 들판이 되었다.

 

이곳을 금구원니(金龜䖤泥)라는 명당자리가 있다고 해서 이를 찾기 위해 한때 각지에서 지사(地師)들이 몰려와서 살다가 실패하고 떠났다고 한다.

 

지금은 들 끝자락 푹 꺼진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옛날에는 니구평이라 했으며 구리들이라고도 하였다. 마을 북쪽 동호천변에 거북바위와 거북소가 있어서 거북이가 놀던 들이라 하여 구평이라 했다 한다.

 

금선(琴仙)들은 옛날에 선인이 거문고를 탓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 우락산(優樂山)이 있는데 옛날 우락산이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가는데 밥을 짓던 아낙네가 부지깽이로 솟뚜껑을 두드리며 소리를 쳤더니 산이 멈추어 섰다는 전설이 있다.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 마을 이름을 구평으로 고쳤고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가 이곳에 설치되었으나 곧 칠형정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사는 성씨는 거창유씨(居昌劉氏)가 위천 금곡에서 들어와 살면서 느티나무를 심고 마을을 가꾸었는데 지금도 소수 성씨들과 이십여 호가 살고 있다.

 

■옥산리(玉山里)

 

옥산리는 옛날 안의군 서상면에 소속된 동리였으나 1914년 일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함양군 서상면에 편입되었다.

 

덕유산에서 동남으로 월봉산, 거망산을 거쳐 우락산에서 우뚝솟은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서남으로 깃대봉을 거쳐 백운산으로 내려와 우뚝 솟은 곳을 최남단으로 하여 펼쳐져 있는 동리가 옥산리이다.

 

현재 절정을 이루고 있는 상하부전동마을과 넓은 들로 펼쳐진 봉정마을 그리고 갈뫼(옥산)마을을 합하여 옥산리라고 한다.

 

■옥산(玉山,갈뫼)

 

갈뫼 마을은 멀리 우락산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합미봉 깃대봉, 백운산에 이르는 능선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마을이다.

 

말 궁 구리 재에서 동으로 응봉을 이루고 여기에서 얕은 들판을 거쳐 불쑥 솟은 당산의 품속에서 자리 잡은 마을을 갈뫼(갈산)라 하였다.

 

갈뫼 마을을 개척한 시기는 자세히 알수 없으나 신라이후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이 고을의 중심지였던 것이 각종 문헌과 전설에서 알 수 있다. 그 후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시에 옥산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그 당시만 해도 변형되어 갈뫼, 갈묘, 갈미로도 불려졌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백제와의 국경지역 중심으로서 갈산소(乫山所)라는 관청과 갈산창고 삼고(三庫)가 있었다.

 

십리 골목이라하여 지금의 옥산마을에서 봉정마을까지 이어진 큰 마을이었으며 지금도 당시의 담장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또 하나의 전설은 신라시대에 어느 귀족이 피난을 왔엇다는 말이 잇는데 그 무덤으로 추정되는 큰 무덤이 있다.

 

마을 서쪽 극락산 기암괴석도 돋보이지만 옛 극락암 흔적은 더욱 절경이라 하겠으나 지금은 靈鷲山밑에 그 흔적만 남아있다. 상서운암 옛터에는 육십년대에 중건하여 상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그 아래 부도가 있다.

 

마을 근처에는 하서운암 흔적으로 추측되는 곳을 미륵정이라 하며 신라 소지왕때의 미륵불이 지금도 있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입구 창 터에는 수백년 된 노송 세그루가 있어 이 마을의 흥망성쇠를 말해주기도 한다. 마을 가운데 작은 시내가 있어 그 북쪽을 양지땀이라 하고 남쪽을 음지땀이라 하며 집을 지을 때 그 방향을 양지 땀에서는 임좌, 음지땀에서는 경자로 하는 것이 이 마을의 불문율이다.

 

이 마을에는 각시소,너더렁골,도치전골,사당몰,쇠망생이골,쏘베기,이엉골,작은 산박골, 조포골, 질마소, 짐뗏거리 등의 지명이 있다. 마을의 중심을 이루는 성씨는 밀양박씨가 목천에서 그리고 운봉에서 이주해 왔으며 그 후손들이 70여호의 대성을 이루었으며 수원백씨, 함안조씨의 소수 씨족이 살아왔으나 백여호 되던 마을이 지금은 육십여호만 남아 있다.

 

■봉정(鳳亭. 봉지)

 

봉정마을은 국도에서 옥당교(玉塘橋)를 건너 옥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이 생긴 유래는 구구하다.

 

첫째는 옛날 이곳에 벌이 많이 있었는데 벌을 잡아먹기 위해서 많은 새가 모여들어 봉정이라 했다고 한다.

 

둘째 설은 학이 알을 품고 있었다고 해서 새 봉자를 써서 봉정이라고 했다고 하는 설이다.

 

세 번째 설은 이 마을 앞에 봉두라는 산봉우리가 있는데 그 봉자를 따서 봉정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봉정에서 하 부전으로 넘어가는 재를 꼬부랑재라고 한다. 봉정마을과 부전동으로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이 생긴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옥산 마을이 생긴 유래를 볼 때 오랜세월의 연륜을 가진마을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부전(扶田)

 

부전마을은 옥산리 창남(倉南)에 있는데 남으로 백운산 줄기 북으로 극락산 지류 옥산 앞 능선사이에 삼십리를 뻗어있는 협곡에 자리 잡은 마을로 상부전과 하 부전을 합해서 부전동이라 한다.

 

정유재란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골짜기에서 피난하여 은신하였다고 한다. 심산유곡의 골짜기 위쪽에는 옛 영원암 흔적이 있으며 명소로는 재야(在野)의 노론성리학자(老論性理學者) 부계(扶溪) 전병순(田秉淳, 1816~1890)선생의 강학소인 부계정사(扶溪精舍)가 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용소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소와 계곡을 흐르는 태고의 맑은 물은 아직도 현대화에 오염되지 않은 이 골짜기의 자랑이다.

 

오십여 호나 되던 이 마을이 지금은 도시 이주민에 따라 지금은 이십 여 호만 남아있는데 담양전씨와 밀양박씨 기타 일부성씨가 골짜기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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