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리지(地理志)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

야촌(1) 2011. 3. 22. 19:20

■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

 

대구광역시 만촌동 영남 제일 관문 앞에 있는 조선시대의 영영축성비(대구광역시 기념물 제4호)는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민응수(閔應洙)가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대구읍성을 쌓은 뒤, 그 규모와 공사과정을 기록하여 1737년(영조 13) 2월에 세운 것이다.

 

비문에 따르면, 공사기간은 1736년 1월부터 시작하여 6개월 정도 걸렸으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이른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총 2,124보(步) 성 위에서 몸을 숨기고 적에게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한 담인 여첩(女堞)이 819첩, 성 높이는 서남이 18척, 남북이 17척, 뒤 축대의 넓이가 7보, 높이가 3급(級)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구읍성은 원래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이 때 비로소 돌로 쌓아 석성(石城)으로 만들었다 한다.

이 비는 원래 남문(嶺南第一關)밖에 세웠는데 1906년(광무 10) 당시 대구군수인 박중양(朴重陽)이 성을 헐고, 옛 달성군청(현 대구백화점)에 옮겼다가. 이를 다시 1932년에 대구향교에 이전 보관되어 오다가 1980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비문은 민응수가 짓고, 글씨는 백상휘(白常輝)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