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조선사(朝鮮史)

전라좌수영 5관 5포(임진왜란 )

야촌(1) 2020. 3. 15. 13:38

전라좌수영 5관 5포(임진왜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휘하 각 군 편제(이순신 장군)

 

구분 지역 지휘관 관할구역(현재 지명)
5관(육지행정구역) 순천도호부 부사(종3품) 여수시, 순천시 일원
광양현 현감(종6품) 광양시 일원
낙안군 군수(종4품) 보성군 벌교읍, 순천시 낙안면
보성군 군수(종4품) 보성군 일원
흥양현 현감(종6품) 고흥군 일원, 여수시 삼산면
5포(수군행정구역) 방답진 첨사(종3품)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사도진 첨사(종3품)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여도진 만호(종4품) 고흥군 점암면 여호리
녹도진 만호(종4품)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발포진 만호(종4품)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여도진 현재의 모습

    임진왜란 때 수군기지(지휘관 정4품의 만호의 장수가 지휘함)

 

↑다리건너 쪽이 여도 진 만호 성(오늘날의 모습)

 

↑가까이서 본 여도진 만호성 전경

 

 

 

↑발포 만호 성(이순신 36세 때, 만호로 부임 근무 한 곳) 

 

↑이순신 장군이 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한성에 재직 중 자신의 친구를 훈련원 참군으로 추천하는 병조

    정랑 서익(徐益)의 요청을 거절했다.

 

↑발포 만호성 성곽

    그 뒤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9개월 복무 그 뒤 36세가 되던 1580년 7월에 전라도 발포(鉢浦)의 수군만

    호(水軍萬戶-종4품)로 전근되었다. 발포(鉢浦)는 현재의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이다.

 

↑이순신 장군의 발포 수군 만호 재직 중 전라좌수영의 오동나무를 베기를 거부하다가 전라좌수사 성박(成博)

    미움을 받았다.

 

성박은 군관을 시켜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오게 했지만,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나라의 재산인 나무를 벨 수 없다 하여 이를 거절했다.

 

그후 성박(成博)은 후임자 이용(李庸)에게 이순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남겼고, 후임 전라좌수사 이용(李庸)은 일단 이순신을 밉게 보았다. 이용은 좌수영 관하의 다섯 포구인 발포, 여도, 사도, 녹도, 방 답 진을 점검하였다. 이때 다른 4개의 포구 이탈자는 문제 삼지 않았고

 

이순신은 이를 알고 다른 4개포구의 결과를 조사하여 보고하려 하자, 이용의 부관들은 이 사실을 알려서 이용(李庸)은 즉시 장계를 회수하였다.

 

 

↑이용은 그의 근무성적을 최하로 매겼는데, 전라도 도사(都事)로 재직 중이던 조헌(趙憲)은 고과내용을 보자

    당한 처사라며 항의하여 수정하게 했다.

 

↑나중에 이순신의 인물됨을 알아본 이용은 생각을 바꾸어, 함경남도 남병사로 전근한 뒤, 1583년 이순신

    을 자신의 군관으로 추천하여 같이 동행하기도 했고, 건원 보 권관으로 천거하기도 하였다.

 

↑1582년 1월 발포만호로 재직 중일 때 서익이 군기 경차관으로 고흥군에 왔다. 이때 서익은 발포진을 찾아가

    기보수불량이라는 이유로 이순신을 파직시켰다.

 

↑그러나 5월에 전라감사 이광의 부관 및 조방장이 되었다. 1583년 함경남도병사 이용의 추천을 받아 남병사의 군

    관이 되었다가, 1583년 8월 건원보 권관으로 천거되어 나갔다.

 

↑그 후 북방 국경 지대인 함경도로 가서 여진족 방어를 맡았으며, 1586년(선조 19년)에 사복시 주부가 되었고, 

    어 조산만호(造山萬戶) 겸 녹도 둔전사의(鹿島 屯田事宜)가 되었다. 녹둔 도 전투,  첫 번째 백의종군.

 

 

 

 

 

 

 

 

 

 

 

 

 

↑근년에 새로 심은 오동나무

 

↑흥양현 읍성

 

이순신을 비방하는 터무니없는 말들이 전라감사 손식(孫軾)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전라도관찰사 손식(孫軾)은 발포만호 이순신을 혼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흥양현 동헌(예전 고흥군청자리) 에 들려 발포에 있는 이순신을 불러올린다.

 

도착한 이순신에게 발포진의 진서(陣書)에 대해 강독(브리핑)을 하게 한다.

그러자 이순신은 막힘없이 발포진의 방어배치와 주변지형, 방어 계획까지 상세히 설명을 하자,  다음은 진도(陣圖)를 그리게 한다.

 

붓을 들고 종이 위에 발포진(鉢浦陣)의 지형과 물길, 그리고 진의 배치 등의 진도를 상세히 그려낸다.(鉢浦萬戶城 진도)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전라도관찰사 손식은 “어쩌면 이렇게 정밀하게 그리는가?” 하면서 이순신의 조상을 물어 보고는 “내가 처음에 알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오.” 말한 뒤 그 뒤로는 정중하게 대우했다고 한다.

 

 

↑여기 발포만호성에서 근무한 것이 훗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전라 좌수사)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출처 : 전통의명문 경주이씨종친회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