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일본사(日本史) 36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しまづよしひろ)] ,

■시마즈 요시히로[일본어: 島津義弘 (しまづよしひろ)] 이순신 장군을 전사시키다. ↑시마저요시히로(島津義弘) 화상 대대로 사쓰마 국(일본어>薩摩国(さつまのくに) 사쓰마노쿠니)의 슈고 다이묘(일본어>大名) 가문 출신이며, 사쓰마 번[일본어>일본어>薩摩藩, 사쓰마 한)초대 번주 시마즈 이에히사(일본어>島津忠恒 / 島津家久 (しまづただつね / しまづいえひさ), 1576년(선조 9) 11월 27일 ~ 1638년(인조 16) 4월 7일]의 아버지이다. 전라북도 남원성에서 심당길 등 조선의 도공(陶工) 80명을 강제로 납치해 끌고 갔다 [생애]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壬辰倭亂>1592년(임진년, 선조 25)] 당시 1천여 척의 일본 전선을 총집결시켜 연합 함대를 조직하여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에서 원균(..

일본 총독부의 가공할 사적파괴령 비밀문서

총독부의 가공할 사적파괴령 비밀문서 ↑고달사지 부도 처음엔 석탑 자체에만 눈독을 들여 어떠한 어려운 운반조건도 무릅썼던 일본인 무법자들은 차차 탑 속에 들어 있는 사리장치 유물만 꺼내는 새로운 범행을 병행시키게 되었다. 이 새로운 목표물은 무거운 큰 덩어리의 탑재들을 많은 인원과 시간을 동원하여 불법 반출하는 모험에 비하면 훨씬 손쉽게 성공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탑이 깨져 나가거나 말거나 밀어서 무너뜨리고, 혹은 사리장치가 있음직한 부분의 탑재 사이에 지렛대를 넣어 들어 올린 후 유물만 꺼내는 일은 몇이서 하룻밤 사이에 간단히 해치울 수 있는데다가 잘 걸리면 작은 순금 불같은 굉장하고 진귀한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악당들의 목표물은 더욱 다양해졌다. 석탑 속의 사리장치 유물..

일본의 항복문서

■ 일본의 항복문서 1945년 9월 2일 동경만 미국 미주리호 선상에서 일본국 외무대신 시게미츠가 서명한 일본의 항복문서입니다. 시게미쓰가 떨리는 손으로 서명한 항복문서에는 첫째. 일본군과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무장 세력은 즉각 무조건 항복할 것. 둘째. 연합군 최고 사령관의 명령에 따를 것. 셋째. 일왕과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의 조항을 성실하게 이행할 것. 넷째. 일왕과 일본 정부의 권한은 연합국 최고사령관의 통제 아래에 둘 것 등의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고 시게미쓰와 일본군을 대표한 육군 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가 서명한 항복문서에 연합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맥아더 원 수가 서명한 뒤, 미국, 중국, 영국, 소련, 호주, 캐나다, 프랑스 등 승전국 대표들이 차례로 서명합니다. ↑항복문서에 조..

일본 이소노카미신궁에 보존된 “칠지도(七支刀)”

[홍윤기의 역사기행] 이소노카미신궁에 보존된 “칠지도(七支刀)” 먼 발치 매운 눈 2008.04.05. 10:47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 백제 근초고왕이 倭 후왕에 寶刀 하사 ↑한일관계 역사에서 가장 귀중한 고고학적 유물인 “칠지도”를 보관하고 있는 석상신궁 정전과 전각 내부 모습. 현재 일본 나라현 텐리(天理)시의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석상신궁)에는 ‘칠지도’(七支刀)가 보존돼 있다. 백제왕의 칼 칠지도는 한일 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귀중한 고고학적 유물이다. 길이 74.9cm인 칠지도는 중심 칼날까지 합쳐 모두 일곱 갈래로, 날이 좌우 3개씩 대칭으로 엇갈려 펼쳐져 있다. 칠지도는 백제 제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 재위)이 서기 369년 왜 나라에 살고 있던 백제인 후왕(侯王)에게 하사한..

평화를 선택한 왜장 사야가(沙也可) - 김충선

녹동서원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585 ------------------------------------------------------------------------------------------------------------------------------------ 녹동서원((鹿洞書院)은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장수 모하당(慕夏堂)김충선(金忠善, 1571~1642)을 추모하기 위해 정조 13년(1789)에 건립한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84년 훼철되었다가 1914년 중건하였으며, 1971년 이전 하였다 김해 김씨(우륵김씨) 시조 김충선 사야가(沙也可)의 일생은 우리에게 남다른 감흥을 준다. ↑녹동서원(鹿洞書院)의 충절관(忠節館) 전시관은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해 ..

교토 ''야사카신사''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신라 신의 제사 터 교토 ''야사카신사'' 세계일보 | 입력 2007.02.21. 09:16 교토는 지금도 일본 왕실 문화의 중심 터전이다. 어머니가 백제인인 50대 간무천황이 794년 처음 왕도를 개창한 곳이 교토(헤이안경) 땅이다. 그의 부왕인 49대 고닌 왕(770∼781 재위)도 백제인('대초자' 1158)이다. 이곳에는 현재도 고대 왕궁인 '교토어소'가 자리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금도 교토를 '부조(父祖)의 땅'이라며 도쿄에서 서쪽 부조의 땅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아사히신문' 1999년 11월7일). 그는 2001년 12월23일 기자회견에서 "간무 왕의 어머니 고야신립(高野新笠, 和新笠) 태후는 백제 무녕왕(501∼523 재위)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