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신라사(新羅史)

신라의 건국(新羅의建國)

야촌(1) 2010. 8. 9. 17:14

■ 갑자년 마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 원년

   ○ 이해에 신국(新國)이 하나이다.

   ○ 신라는 처음에 사로(斯盧)라 칭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뒤에 정한 이름을 쓴다.

        [한 선제 오봉(五鳳) 원년, B.C. 57]

 

하4월 진한(辰韓)의 육부(六部)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군(君)으로 세우고 거서간(居西干)이라 칭하였으며, 국호를 사로라하였다. 

 

이에 앞서 조선의 유민(遺民)들이 동해(東海)가 산골짜기에 나뉘어 살며 여섯 마을을 이루었는데, 알천양산(閼川楊山)ㆍ돌산고허(突山高墟)ㆍ자산진지(觜山珍支) 간진(干珍)이라고도 한다ㆍ무산대수(茂山大樹)ㆍ금산가리(金山加利)ㆍ명활산고야(明活山高耶)이며 이것이 이른바 진한의 육부이다.

 

육부의 기로(耆老)가 알천에 모여 다음과 같이 의논하였다. “우리의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방일(放逸)하니, 어찌 덕있는 이를 구하여 임금을 삼지 않을 수 있으랴!” 이때에 양산부에 지덕이 뛰어나고 조숙하여 신성한 자질이 있는 박혁거세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허촌장인 소벌공(蘇伐公)이 육부 사람들과 함께 그를 추대하였다. 

 

이해 4월 병진(丙辰)에 그를 임금으로 세웠는데, 그때 나이는 13세이고 거서간이라 불렀으며, 국호를 사로라 하였다. 거서간은 진한 말로 왕을 뜻하는데, 귀인의 호칭이라고도 한다. 김씨(金氏) 부식(富軾)는 이르기를,“해동(海東)에 나라가 있은 지 오래다.

 

기자(箕子)가 주(周)에 봉(封)함을 받고 한(漢) 초기에 위만(衛滿)이 참호(僣號)하기까지는 연대가 멀고 글이 소략(踈畧)하여 그 상세한 것을 알 수 없고, 삼국이 정립(鼎立)한 때에 이르러는 그 시종을 상고할 수 있다.”하였고, 권씨(權氏) 근(近)는 이르기를,“공자가 시서(詩書)를 정리할 적에 당(唐)ㆍ우(虞)에서 끊어서 시작하였으니, 당ㆍ우 이후에는 이미 괴이한 일이 없거니와, 삼국의 시조는 한과 같은 시대인데, 어찌 괴이한 일이 있을 수 있으랴!

 

알영과 탈해가 날 적에 또한 괴이한 것은, 어찌 그 처음 해동의 사람들이 순박하고 무지하여 혹 괴이한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모두 믿어 신성하게 여겨서, 후세에 전할 것이 아니랴!”하였고, 유씨(柳氏) 형원(馨遠)는 이르기를,“동사(東史)에 삼국에 관한 괴이한 말이 제일 많다.

 

풍기(風氣)와 인사(人事)는 늘 서로 밀접히 관계되므로, 기자가 동래(東來)하고 한 무제가 동정(東征)한 뒤로는 한사(漢史)의 기록에 괴이함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다. 삼국에 있어서는 도리어 허황한 것이 많으니, 아마도 이때는 고증할 문헌이 없고 습속이 미개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야기로 전하여 온 것을 도리어 사실로 기록하였으니, 사관(史官)이 사적 없음에 답답하여 이런 말들을 취한 것이다. 뒤에 역사를 엮는 자는 일체 제거해야 한다.”하였다.

 

【안】삼국의 시조는 반드시 그 사람 됨이 보통 사람보다는 뛰어났고, 해동의 풍속이 무지하여 신기한 것으로 움직

             이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므로 가탁하여 말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성(姓)이 박씨이면 큰 달걀[大卵]로, 성이 김씨이면 금궤(金櫃)로, 탈해이면 궤를 여는 것[解櫝]으로 가탁하였으니, 말에 따라 뜻을 붙여서 거짓말을 만들어서 어리석은 백성을 충동시켰으니, 이것은 미륵불(彌勒佛)이 여우 소리를 낸다는 따위와 같은 것이다. 

 

지금의 속담과 고담에 국초의 사적이나 근세 명인(名人)의 행적으로 말하면, 부연하여 그 자취를 특이하게 만든 것을, 장차 사실로 여겨 역사에 전할 수 있으랴! 중국의 역사에도 신기한 말이 해동 사람들처럼 고루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혹 있었다.

 

그러나 사마온공(司馬溫公)이 《통감》에서 일체 취하지 않았고 올바른 사실과 법받을 만한 것만 기록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정당한 법이다. 이제 이 글에서도 유씨(柳氏)의 설을 따라 모두 삭제하고 따로 고이(考異)를 적어서 동인의 괴이함을 좋아하는 습속을 밝힌다.

--------------------------------------------------------------------------------------------------------------------------------------

 

■ 춘정월 사로(斯盧)가 알영(閼英)을 비(妃)로 세웠다.  

 

무진년 마한 신라 시조 5년(한 선제 감로(甘露) 원년, B.C. 53) 알영은 왕과 같은 해에 태어났고 자라서는 덕용(德容)이 있었는데, 왕이 듣고서 맞아다가 비로 삼았더니, 어진 행실이 있어 능히 내조(內助)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그들을 두 성인[二聖]이라고 하였다.

 

[자료문헌]

◇동사강목> 동사강목 제1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