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그때 그시절 55

해방후 일본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게양하다.

▲1945. 9. 9. 미군들이 경례하는 가운데 성조기가 조선총독부(후, 중앙청) 광장에 게양되고 있다. ⓒ NARA, 눈빛출판사 ▲1945년 9월 9일 일본군이 중앙청에서 일장기를 내리는 모습. 이후부터는 미군의 군정이 실시된다. [단독]해방초 1945년 미공개 사진자료 3차 공개 ③, 항복문서서명-중앙청 기사등록 일시 [2014-09-12 11:17:48] 【서울=뉴시스】(사)월드피스자유연합과 (사)정의실현국민연대가 지난 1,2차에 이은 카이로선언, 얄타회담, 포츠담선언 등, 한국의 독립과 관련된 자료를 포함해서, 해방 초기 1945년의 상황을 다룬 사진자료 3차를 공개했다. 이에 뉴시스는 4일에 걸쳐 정리자료를 연재하고자 한다. 중앙청에 게양되는 미국 성조기.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패망하고, 한국인의 ..

1910년대 서울의 궁궐과 평양의 성곽

1910년대 서울의 궁궐과 평양의 성곽 궁궐은 임금이 살며 나라의 정무를 맡아보던 곳이다. 서울에는 정전(正殿)인 경복궁을 비롯해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이 있었다. 궁궐에 관한 사진은 대부분 건물을 찍은 것이어서 경복궁의 강녕전과 집옥재, 건청궁 일부와 향원정을 볼 수 있다. 100년 전 창덕궁 후원의 연못과 정자·누각, 덕수궁의 원경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궁중 연회 뒤에 여악과 악사가 귀빈을 모시고 찍은 사진이다. 건물의 상당수가 수리와 복원을 통해 오늘날에 이렀지만, 110여년 전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당시의 시대상황과 건축문화를 알 수 있다. 서울 시내를 담은 사진은 크게 오래된 고적들, 110년 전의 그 시절에 지은 건물, 그리고 풍경을 포함한 생활상으로 나눌 수 있다...

첨성대

▲1930년대의 희귀한 학생들의 수학여행사진이다. 첨성대에 학생들이 기어오르고 달라붙어서 찍은 수학여행 단체사진을 보면 평소에 규모 가 작다고 생각했던 첨성대가 의외로 높고 당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hansedong ▲저 당시엔 아무도 관리하거나 돌보지 않고 완전히 버려져 있어 학생들이 수학여행 땐 기어 오르고 곁엔 수 수가 무성하였고 6.25 전쟁 때에는 탱크들이 굉음을 내며 곁을 지나다닌 보존 관리부재상황하에서도 1,400여년의 장구한 세월을 무너짐 없이 꿋꿋하게 서 있는 첨성대가 정말 자랑스럽기만 하다. 사진출처 : 루비의 정원

대한제국의 개혁정책

■ 대한제국의 행정개혁 ↑1897년 대한제국 관제개혁 ↑1898년 의회 설립(중추원 : 임명의원 25명, 민선의원 25명) ↑옛 서울시청[한성부 청사]의 모습. ↑1894년 경무청(警務廳)을 창설/근대 경찰제도의 시작. ↑1895년 근대소방시스템 도입. ↑1895년 전 국민평등법제정/반상의 차별철패. --------------------------------------------------------------------------------------------------------- ■ 교통과 통신 분야개혁 ↑1898년 전차 운행을 개통 했다. ↑1898년의 종로거리 모습 당시 종로의 전경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사진입니다.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북쪽입 니다. 육의전이 위치한 장랑 뒷쪽으로 피맛 ..

광복의 환희!

↑위의 사진은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일제로 부터 해방돼 서울 시민들이 남산 국기게양대 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은 촬영한 사람이 누구인지, 태극기를 게 양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 정부 자료 사진이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1945년 8월15일 정오,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미영중소 연합군에게 항복을 발표 하자 서울 시민들이 광화문 네거리로 나와 환호하는 모습. ↑무조건 항복한다는 일본 천황의 육성방송을 듣고 있는 서울의 일본인들(1945년 8월 15일) ↑8.15 조국 해방은 옥중의 독립투사들에게 더욱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 나와 해방 만세를 외치는 출옥 애국인사들과 이를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1945년 8월15일) ..

구한말의 평양 모습

구 한말 평양의 인구는 약 6만명이고, 개성은 3만명쯤 되었다고 한다. ↑구 한말의 옛 평양시가 모습이다. 멀리 대동강(大同江)이 보이고 오른쪽에 대동문과 왼쪽의 련광정(練光亭)이 보인다. ↑련광정(練光亭)과 종각, 련광정은 평안감사가 기생들과 연회를 벌이던 곳이다. ↑모란대(牡丹臺)와 대동강, 평양에서 경치가 가장 좋다는 곳이다. 모란봉정상에 최승대(最勝臺)가 보이고 아래 강 변 쪽의 건물이 부벽루(浮碧樓)다. ↑부벽루(浮碧樓)와 평양기생(平壤妓生)들.... ↑강을 건너 시집가는 행렬, 멀리 모란대(牡丹臺)가 보인다. ↑모란대(牡丹臺) 입구, 전금문(轉錦門)이다. ↑대동강(大同江)을 건너는 나룻배 ↑대동강(大同江) 물을 기러는 물장수 모습 ↑대동강(大同江)에서 빨래하는 아낙네 모습 ↑대동강 보통문(普通..

1900년 초기의 평양 모습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나 12살까지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보낸 미국인 미스터 핑씨의 아버지 더글러스 폴웰이 의료선교사로 활동할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1900년 초 평양시민들의 모습. ↑1900년 초 평양 모습 ↑1900년 초 평양시민들의 모습. ↑1900년 초 평양시민들의 모습. ↑1900년대 초 환자 진료 및 수술장면. ↑1900년대 초 환자 진료 및 수술 장면.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나 12살까지 어린시절을 평양에서 보낸 미국인 미스터 핑씨가 어 린시절 평양에서 누나, 형제들과 함께 눈싸움을 하고 있다. ↑1900년대 초 평양시 모습. ↑1900년대 초 기홀병원 전경. ↑1900년대 초 평양에서 열린 한 군중집회.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나 12살까지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보낸 미국인 미스..

196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

196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 누더기 옷에 헐벗고 굶주림에 살았지만, 따뜻한 온정이 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추운겨울 냉기가 감도는 방에서 나와 따듯한 햇볕에서 늘 언몸을 녹이곤 했지요. 헤진 옷을 입고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사니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 추운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려도 어머니 등에 업히 면 엄마 품의 따듯하고 포금함은 지금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투방집=나무로 얼기설기 쌓아서 흙으로 빈 공간을 막아서 지은 집입니다.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니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뜻하게 쇠 죽을 끓여서 주곤 했지요. 물론 소 없는 집이대다수였습니다. ▲두메산골에서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

일본 패망 직전의 생생한 사진모음

일본 패망직전의 사진 모음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일본인들이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다. 이들은 기록을 위해서도 찍었고, 격려차 찍은 사진, 선전에 사용할 목적이 다분히 있는 사진들이기도 하다. ↑1945 년 8 월 6 일 이 히로시마에 최초로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고 그로인하여 일본은 무장 해제되었다. 그러나 그로인하여 핵무기 경쟁은 시작되었고 드디어 밥은 굶더라도 핵무기는 보유 해야겠다는 북한 정권도 생겨나게 되었다. 지금 북한이 걷고 있는 길이 일본이 패망으로 빠저 들때와 흡사 한것 같아서 되돌 아 보게 된다. ↑1945 년 폭격으로 페허가 된 오사까. ↑일본의 전통 스포츠 ' 수모 ' 씨름 꾼들이 훈련을 받고있다. ↑1945년 주부들을 모아 놓고 죽창으로 대항하는 훈련을 시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