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168

경주이씨 세록비(慶州李氏 世錄碑)

▲족보 바위 (정면) 족보 바위 앞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었다.ⓒ 이완우 ▲ 족보 바위 (측면) 족보 바위는 자연석 역암이고, 앞의 기둥은 사암을 사각 기둥으로 다듬어 세웠다. ⓒ 이완우 5세대 족보를 자연석에 새긴 105년 된 ‘바위족보’가 임실에서 발견됐다. 지금까지 위패형식의 금석문은 이따금 발견됐지만 자연석에 가승을 적은 암각서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관심이다. 본보 도민기자팀은 지난 28일 임실읍 현곡리 연화마을 인근 산에서 돌기둥 2개를 세우고 넓적한 돌을 맞대어 지붕을 덮은 경주이씨 세록비(가로324㎝·세로 170㎝·높이 150㎝)를 확인했다. 연화마을에 살며 이씨 종중산을 관리하는 이상식씨(59)는 “32~37세손까지 5세대 44명이 기록된 세록비를 책으로 만든 족보와 맞춰보..

부정공 삼세 전(副正公三世 傳) ※17世

■ 부정공삼세 전(副正公三世 傳) 외사씨 찬(外史氏 撰) 고려충렬왕(高麗 忠烈王) 조정에 명신 송암 이세기(名臣 松巖 李世基)가 문장(文章)으로 크게 세상에 더 날리 어, 여러 번 문형(文衡 : 大提學)을 맡았다. 그 둘째 아들이 매(邁)요. 벼슬은 부정(副正)이니 국당 천(菊堂 蒨)과 상서 과(尙書 薖)와 사인 조(舍人)로, 더불어 동복형제(同腹兄弟)가 되고, 익재 제현(益齋 齊賢)은 종형제(從兄第)가 된다. 일찍이 문사(文詞)로서 서로 화답하여 당세에 대가(大家)로 일컬었다. 그 아들은 경지(敬之)와 경원(敬元)이니, 경지(敬之)는 판서(判書)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오성군(鰲城君)이요, 경원(敬元)은 수찬(修撰)이요 경지(敬之)의 아들 당(堂)은 집의(執義)로서 정포은(鄭圃隱)의 당(黨)이라 해..

경주이씨 지역별 인구수

■ 경주이씨 지역별 인구수 구분\년도 1985년(통계청조사) 2000년(통계청조사) 가 구 수 인 구 수 가 구 수 인 구 수 서울특별시 60,907호 251,167명 84,665호 268,847명 부산광역시 31,424 129,326 43,586 140,187 대구광역시 21,416 85,758 34,232 109,637 인천광역시 8,139 32,967 19,262 64,085 대전광역시 충남합산 충남합산 13,042 42,778 울산광역시 경남합산 경남합산 15,994 51,473 광주광역시 전남합산 전남합산 6,969 23,060 경 기 도 31,045 128,823 75,098 250,609 강 원 도 11,670 50,152 14,423 43,718 충청북도 13,350 56,999 18,71..

판전공파 파조 강(派祖 康+羽)에 대한 고찰(考察) |

■ 판전공파 파조 강(派祖 康+羽)에 대한 고찰(考察) | 공의 휘는 강(康+羽)으로 중조 소판공(蘇判公)의 14세손으로서 정순대부(正順大夫) 판전객시사(判典客侍事)의 벼슬을 하셨으나 난중(亂中)의 화를 피하여 산중촌락에서 독서만 즐기셨다. 공의 백형은 휘 핵(翮)으로 자(字)가 만리요, 호는 열헌(悅軒)으로 문하평리의 벼슬을 하셨고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증직 받으셨다. 열헌공이 슬하에 세아드님을 두셨으니 첫째가 성암공(誠庵公) 휘 인정, 둘째가 동암공(東菴公) 휘 진, 셋째가 송암공(松巖公) 휘 세기이며, 공의 중형인 휘 翩(편)은 아들이 직간(直幹)으로 장수이씨로 분적 되었다. 공의 아드님은 휘 신유(臣裕)로 봉익대부예의판서를 지내셨다. 공은 14개 대파중에서 아홉번째 대종으로 첫손자가 낭장 휘 ..

이유승의 둘째 아들 이석영을 후사로 세우게 해 주기를 청하는 봉조하 이유원의 상소

국역승정원일기 >고종 22년 을유(1885, 광서 11) >1월 10일(경술) 1월 10일(경술) 맑음 ■ 이유승의 둘째 아들 이석영을 후사로 세우게 해 주기를 청하는 봉조하 이유원의 상소 봉조하(奉朝賀) 이유원(李裕元)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타고난 명이 박하여 자주 상을 당해 제사를 맡길 자식조차 없이 어느덧 죽음을 눈앞에 둔 80의 노인이 되었으니, 외롭고 쓸쓸하여 몹시 마음이 아픔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2촌 동생인 전 참판 이유승(李裕承,1835 헌종 1~1907 순조 1/융희 1)의 둘째 아들 이석영(李石榮)을 데려다 자식으로 삼아 후사를 맡길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인륜의 대사입니다. 우리나라 진신(搢紳)들 간에 행해 왔던 예를 상고해 보건대, 양자를 골라 정해서 후..

청비록(淸脾錄)에 익재공을 칭송한 글.

■ 이 익재(李益齋) 지은이 : 이덕무(李德懋) 시문학(詩文學)의 대가(大家)로는 언제나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의 호)을 추앙(推仰)하여 시가(詩家)의 종주로 삼고 소급하여 올라가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호)를 추대하여 제일로 삼는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익재집(益齋集)》을 읽고 나서는 단연코 익재 이제현(益齋 李齋賢)의 시를 2천년 이래 우리나라의 명가(名家)로 여긴다. 그의 시(詩)는 화려하고 우아하여 우리나라의 침체된 습관을 시원스럽게 탈피하였는데, 그는 비록 중국(中國)에 있었다 하더라도 우집(虞集)ㆍ양재(楊載)ㆍ범팽(范梈)ㆍ게혜사(揭傒斯)의 수준에 충분히 이르렀을 것이다. 성용재[成慵齋=용재는 성현(成俔)]의 호)가, “익재는 노련하고 건강하나 화려하지는 못하다.” 한 것은 확고..

이항복과 이원익

■ 조선의 청백리로부터 치세를 배우다. - 이항복과 이원익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의 곧고 바른 치세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국민을 태평하게 하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고 이치다.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는 청백리라는 말은 과거 특별히 국가에 의해 선발된 깨끗하고 유능한 관리를 뜻한다. 정확히 말하면 청백리는 작고한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염근리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청백리나 염근리로 선발되면 당사자는 진급이나 보직에 특전을 받았고, 후손들에게도 벼슬을 주는 등 많은 혜택이 있었다. 문치를 바탕으로 관료제가 통치제도의 핵심이었던 조선시대에는 모두 217명의 청백리가 배출되었다.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였던 이항복과 이원익을 통해 오늘날, 청백리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백사집(白沙集) ↑오리집..

선조 세거지 및 선산 위치

■ 경주이씨 선조 세거지 및 선산 위치 옛 지명임으로 현재의 지명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기도(京畿道) 01.한성남문 한림동-청백리공 정보파 세거지. 02.필운동-백사공 항복파 세거. 03.철동-지퇴당공파 세거지. 04.개성성내-평리공파 세거지. 05.죽림당-익재공파 제현 유처. 06.양성 원당리-평리공파. 07.형촌-정순공 성중파. 08.마전 분석리-재사당공파. 09.죽산 수산곡-익재공파. 10.파주 양곡-청호공 희파. 11.이천-양희공 흥적파. 12.풍덕 소해리-청호공파. 13.옥산-사유재공 정암파. 14.용산-지퇴당공파. 15.풍천-석천공파. 16.죽동-제정공 달충파. 17.동강-양희공파. 18.진위-오제공 탕종파. 19.평택시 진위면 동천동-백사공파. 20.장단-오제공파. 21.오목천-오천공 ..

경주이씨 화수회 유례.

경주이씨 화수회 유례. 조선말 무진(戊辰)1868년(고종 5)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귤산공(橘山公) 유원(裕元)의 제청으로 상서공파에서, 유원(裕元), 유승(裕承), 유응(裕膺), 국당공파(菊堂公派)에서 교영(喬榮), 규창(圭昌), 익재공파(益齋公派)에서 규정(圭正), 규선(圭善), 규철(圭哲), 용우(龍雨) 등 구(九)인이모여, 처음으로 경주이씨 화수회(慶州李氏花樹會)를 창립하고 항렬(行列)도 정(定)하였다 長派인[원래 평리공파(平理公派)이나, 당시 불참] 익재공파(益齋公派)가 주류를 이루는 오촌공파(梧村公派) 세거지인 충북 진천군 연촌[오늘날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모여서 화수회(花樹會)를 창립하고 항렬(行列)도 정하였는데 때는 가을이었다 당시 항렬자를 정함에 있어, 진천문중(鎭川門中)에..

경주이씨 가승보 전문(慶州李氏家乘寶傳文)

경주이씨 가승보 전문(慶州李氏家乘寶傳文) 경주이씨 十五世 열헌공의 아드님 三형제분과 손자(孫子) 다섯 분이 차례로 장원급제함을 보고 당시 고려의 재상인 민지 선생과 조간 선생이 칭찬한 글로 가문의 영광을 기리며 오늘날 까지 전해오는 보배로운 글이다 문인공 묵헌 민지 선생 찬 (文仁公 默軒 閔漬 先生 撰) 華萼三家 五 榜 魁 / 화악삼가 오방 괴 이 같은 삼형제와 다섯 손자가 수석급제를 하니 人 言 皆是 謫仙 才 / 인언개시 적선 재 세상 사람들은 신선 같은 재주가 마치 이태백 같다고 칭찬하였다. 知 公 積善 眞 無 敵 / 지공적선 진무 적) 공이 평소에 적선한 덕행으로 어느 누구와도 적이 없으며 獨見年年 慶 席 開 / 독견 년 년 경석 개) 혼자서 해마다 경사스러운 자리를 갖는 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