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경주이씨 세록비(慶州李氏 世錄碑)

야촌(1) 2009. 10. 27. 23:34

▲족보 바위 (정면) 족보 바위 앞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었다.ⓒ 이완우

 

▲ 족보 바위 (측면) 족보 바위는 자연석 역암이고, 앞의 기둥은

     사암을 사각 기둥으로 다듬어 세웠다. ⓒ 이완우

 

5세대 족보를 자연석에 새긴 105년 된 ‘바위족보’가 임실에서 발견됐다.


지금까지 위패형식의 금석문은 이따금 발견됐지만 자연석에 가승을 적은 암각서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관심이다.


본보 도민기자팀은 지난 28일 임실읍 현곡리 연화마을 인근 산에서 돌기둥 2개를 세우고 넓적한 돌을 맞대어 지붕을 덮은 경주이씨 세록비(가로324㎝·세로 170㎝·높이 150㎝)를 확인했다.


연화마을에 살며 이씨 종중산을 관리하는 이상식씨(59)는 “32~37세손까지 5세대 44명이 기록된 세록비를 책으로 만든 족보와 맞춰보니 한 곳도 틀린 글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임실읍 현곡리 연화실 경주이씨 세록암에대하여 소개합니다. 

경주이씨 세록비(慶州李氏 世錄碑)는 임실읍 현곡리 연화마을에서 동쪽 산으로 500m쯤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세록비는 금석문으로써 아주 희귀한 자료이며, 산 중턱 약간 평지에 자연적으로 서 있는 거북바위 작은 바위(250×160cm)의 옆면을 가로 162cm 세로 135cm의 넓이로 다듬어 그 안에 세록(世錄)을 새겼다.

 

바위 위에는 넓고 얇은 지붕돌을 올려놓고 콘크리트로 보완을 하였으며, 앞에는 두 개의 돌기둥을 세워 지붕돌 앞쪽을 바치고 있다. 세록은 경주이씨 익재공파 후손으로 연화마을에 입향 한 재사당공파 16대부터 00 대까지 배위(配位)를 합하여 44위가 기록되어있고, 말미에 세 기유 삼월 후손 종악 근식(歲 己酉三月後孫鍾岳謹識)이라고 새겨져 있어 국난을 예상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구한말인 1909년 3월에 조상들의 위패를 새긴 것으로 본다.

 

자연석 바위를 좌대로 삼아 옆에는 103×39×11cm 작은 비석을 세워 앞면에는 경주이씨세록비(慶州李氏世錄碑)라고 적혀있고, 뒷면에는 임실신안면연화곡사장동(任實新安面蓮花谷士長洞) 융희삼년기유삼월일(隆熙三年己酉三月日)이라고 적혀 있어 세록과 함께 같은 해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앞에는 병자년(1996)에 상석을 세웠는데 매년 묘전에서 100여명의 후손들이 모여 시제를 모신다고 한다.

 

족보에는 지금부터 105년 전 경주이씨 이종악씨가 나라가 어수선하여 난(亂)중에 책으로 엮은 족보는 자손들의 보관 소홀로 소실될 염려가 있어 암벽을 다듬어 족보를 새겼다고 적혀 있었다.

 

이날 본보 도민기자팀과 동행한 최성미 임실문화원장은 “해서체로 새긴 암각서가 지표에 드러나게 되면 공기와 물과 동식물에 의한 화학적, 물리적 풍화작용으로 훼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돌기둥에 덮개석까지 만든 것 같다”며 “이러한 세록비는 희귀한 자료여서 탁본을 떠 정확한 가치를 따져 보겠다”고 말했다.


현재 경주이씨 종친회는 매년 한식 때면 전국에 살고 있는 자손 20여명이 모여 이곳에서 시제를 지내고 있다.